사춘기 ing
긴 인생길에서
나는 종종 길을 잃는다.
괜찮다.
늘 있는 일이니까.
잠깐 주저앉아있으면 된다.
땅에 슥슥 낙서도 하고
멍 때리기도 하면서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어본다.
그러다 다시 문득 길을 보면
보이지 않던 길이 새롭게 보인다.
그때 다시 걸어가면 된다.
내 속도로,
내가 가고 싶은 길로.
시간은 흘렀고, 강산이 두 번 넘게 바뀌었다.
방황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나는 길 위에서 습관처럼 두리번거리며 보물찾기 하듯 걸어갔다.
때로는 길가에 놓인 상자를 보물이라 믿으며
냉큼 집어 들고 돌아오기도 했다.
상자를 열어보고 깨닫는다.
이번에도 내 보물이 아니었다는 걸.
몇 번째일까.
나를 스쳐간 상자는 도대체 몇 개나 될까.
헛웃음이 난다.
이쯤 되면 손에 쥔 걸 다 내려놔야 할 텐데, 참 미련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거의 다 왔다"는 착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곧 보일 거야.
진짜 나만의 보물상자가.
셀 수 없는 좌절과 실패가 나를 점점 신중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상자를 발견해도 쉽게 집어 들지 않는다.
이리저리 살피고 한두 번 흔들어본다.
아닌 것 같으면 돌아선다.
미련 없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이것도 나름 발전이라면 발전이다.
이 이야기가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천직을 찾고 싶다며 긴 시간을 흘려보낸 어리석은 사람의 방황기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될까?
실패 속에서 돈과 시간은 흘러갔고,
놓친 것이 아까워 때론 가슴을 치고,
때론 허탈한 웃음이 났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말도 안 되는 보물 찾기를 포기하지 못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던 어느 날,
마음 한구석에 새로운 감각이 일었다.
비록 리본이 묶인 예쁜 상자에 담겨 있지 않았고,
불완전하고 어설프지만, 나만의 보물이 점점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이건가? 내 보물이.
참 오래 걸렸구나. 그래.
이제는 알 것 같다.
길을 잃고 방황한 시간들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음을.
남은 것은 이 조각들을 온전히 맞추는 일.
아직 흐릿하고 어딘가 2% 부족하지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까지 왔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제 그 길로 걸어가면 된다.
또 길을 잃을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늘 그랬듯 0은 아니니까.
다시 길을 잃어도
놓친 그 지점부터 다시 가면 된다.
나만의 길로,
나만의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