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리뷰

글쓰기 6번째 책

by 감정 PD 푸른뮤즈

글쓰기 책 6번째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출처: 알라딘

앞서 언급한 글쓰기 5번째 책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는 에세이와 작법서, 두 갈래로 나뉜 책이었다.


책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는 한 가지가 추가됐다. ’ 작가가 주인공인 소설’

물론, 작가는 에세이 성격을 담아 썼겠지만 독자입장에선 소설을 읽는 기분을 느꼈다. 소설과 에세이 중간쯤이랄까.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쓰기와 작가의 삶을 이야기하고, 소설처럼 자세히 묘사하고 설명하는 방식이 그렇게 느끼게 만든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말투를 그대로 담은 문체도 한몫한 것 같다.


번역이 다소 부드럽지 않을 때도 있어서 읽는 중간 중도포기를 할까 고민도 살짝 했지만 묘한 매력에 빠져 완독 할 수 있었다.

"아직도 글을 쓰시나요?"

나는 보통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고는 재빨리 주제를 바꾼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요 당연하죠. 나는 내가 죽는 날까지, 혹은 사고 능력을 빼앗기기 전까지 글을 쓸 거예요. 손가락이 굽고 약해지더라도, 귀가 들리지 않거나 앞이 보이지 않게 되더라도, 한쪽눈을 깜빡이는 것 말고는 내 몸의 근육 하나 움직일 수 없게 되더라도 나는 계속 글을 쓸 거예요.
글쓰기는 나를 구원했습니다.

(....) 글쓰기는 나를 아늑함과 안전함 너머로, 자기 인식의 한계 너머로 몰아붙여 내 이해 능력을 확장시켜 주었습니다. 내 마음을 누그러뜨렸고, 지성을 강화했어요. 글쓰기는 특권이었지요. (...) 글쓰기는 나의 병이자 약입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그래요.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있습니다.

완독 후 포스트잇을 하나하나 떼가며 필사했다. 한참 걸렸다. 꽤 많은 포스트잇을 뗐다. 한 줄로 충분한 설명도 그녀는 길게 묘사하고 설명하는 방법을 택했다.

소설가라 그런가. 다행히 나는 그 표현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가독성이 뛰어난 책이 아니라 추천은 어렵지만 나는 이 책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글쓰기 책을 연달아 읽다 보니 비슷한 내용이 중복됐고, 이 책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작가 특유의 표현방식 덕분인지 지루하지 않았다.


대니 샤피로가 말한 글쓰기 방법 중 기억나는 5가지를 정리해 봤다.


첫째, 검열관과 공생하자.


[나는 검열관과 공생하는 법을 익혀왔다. 검열관에게 대들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검열관을 알아본다. ' 아, 안녕, 또 왔네' 그리고 우리의 공존을 받아들인다. (...) 작가와 작가 내면의 검열관은 같이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면의 검열관을 '내관'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면 성가시고 상대방을 깎아내리기도 하는 동료처럼 취급해도 좋다. 회사에서 쓸 법한 말투로 검열관을 다뤄보자. '연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나중에 얘기 나누어도 괜찮을까요?'] -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중에서


검열관과 공존하는 방법은 오히려 그를 반갑게 맞이하고, 이름이나 별명으로 부르기, 필요할 땐 단호하게 그를 거부하기였다. 살짝 웃음이 났다. 별명으로 부르기는 거부감이 드는 존재를 친근하게 바꾸는 행위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유치한 방법 같지만 심리적 거부감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특히 검열관에 종종 발목이 묶이는 나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시도해 봤다. 검열관을 내 이름으로 부를까 했다가 민망해서 포기했다. 차라리 귀여운 강아지 이름을 고민 중이다.


"해피, 앉아! 가! 안돼! 산책 가자."


상상만 해도 마음이 편해진다.


둘째, 짧고 나쁜 책을 쓰자.


[가장 아끼는 친구 중 하나는 '짧고 나쁜 책을 쓰겠다'라고 되뇌면서 지난 소설을 시작했다. (그 작품은 상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오랫동안 그녀는 자신이 쓰고 있는 짧고 나쁜 책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녀는 그렇다고 믿었다. 그래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근사한 전략이다. 누구라도 짧고 나쁜 책은 쓸 수 있으니까. 그렇지?] -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중에서


부담을 내려놓고 쓰자는 맥락과 비슷하지만, '짧고 나쁜 책'이라는 직관적인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작가의 "그렇지?"라는 질문에 속으로 대답했다.


'그럼, 짧고 나쁜 책이라면 나도 어디 가서 안 빠지지'


진짜 나쁜 책을 쓸 생각은 없다. 표현은 표현일 뿐....


셋째, 규칙에 얽매이지 말자.


[글쓰기 워크숍에서 흠집 난 목재 테이블에 앉아 있다 보면 '당신이 아는 걸 쓰세요'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설명하지 말고 부사를 쓰지 마세요'라는 말을 비롯해 여러 지침도. 하지만 글쓰기 워크솝에서 듣게 될 모든 규칙을 깨야 한다는 걸 알아두자. 당신은 무엇이건 할 수 있다. 잘 소화하기만 한다면, 보여주지 않고 설명하는 것도, 부사를 탁월하게 사용하는 것도 (...)


아는 걸 써야 한다니. 대체 무슨 뜻일까? 이 규칙 때문에 어떤 작가들은 시작하면서 자신이 겪은 일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들은 이내 패닉에 빠진다. 자신의 삶이 충분히 극적이지 않을까 봐 걱정한다. 하지만 삶이 직접 경험한 일들에서만 나올 수 있다면 어떨지 상상이 되는가? 나이 마흔에 새로운 소재를 찾다 지쳐 산화해 버릴 정도로 흥미로운 삶을 살아야 할까? -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중에서


그녀 말이 정답은 아니지만, 나를 해방시켜 주는 말이었다. 그동안 스스로 제약을 많이 걸었다.


'이걸 내가 쓰는 게 맞아?

장문 말고 단문으로 써, 부사는 최대한 빼라고'


글쓰기를 제대로 시작한 입문자 입장에서 글의 가독성을 높이고, 실력을 쌓기 위한 최선이었다.

하지만('하지만'도 초안 쓸 때만 쓰고 퇴고할 때 되도록 다 지웠다) 글 쓰는 재미는 반감됐다. 한 문장 한 문장 쓸 때마다 긴장됐다. 집중하지 않으면 옛날 습관이 툭하고 튀어나온다. 감정을 마구 실어 글을 와다다다 쓰고 나면 느껴지던 카타르시스도 사라졌다. 내 감정과 최대한 거리 두기를 하지 않으면 중구난방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걸 무시하고 다시 쓰고 싶은 대로 막 쓸 순 없다. 그래도 너무 조여놓은 나사를 조금 풀어볼까 한다. 글쓰기 실력 향상도 좋지만, 무엇보다 내가 즐거운 게 중요하지 않을까?


넷째, 오직 '나'라는 문제


[하루가 눈앞에 눈부시게 펼쳐져 있는데, 정작 글쓰기에는 최악이었던 날들이 있다. 병원 갈 일도 없고, 배관공이 욕실 누수를 고치러 오지도 않고, 일찍 학교에 가서 아들을 데려올 필요도 없다. 전등갓 주변에서 성가시게 윙윙대는 파리조차 없다. 아무 일도 없는 여덟 시간. 오로지 나와 정적만 있을 뿐이다. 나, 그리고 발치에서 잠든 개들만이. 나와 향초와 난로에서 타오르는 불길만이. 나, 그리고..

자, 이제 뭐가 문제인지 보일 것이다. '나'라는 사소한 단어 하나가 문제다. 불교 작가 존 캐벗- 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가 어딜 가건 우리가 있다. 우리를 방해하기는 쉽다. 이 이메일만 확인할 거라고 우리는 스스로 약속한다. 그런데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거대한 파도에 밀려난 것처럼 하던 작업에서 밀려나버린다. 하루가 이런 식으로 진행될수록 분노가 커진다. 어쩌다 이렇게 되도록 놔뒀지? 대체 어쩌다? 상황이 그토록 완벽했는데. 가끔은 완벽한 상황이 제일 억압적일 때가 있다.] -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중에서


움찔했다. 글쓰기 최적의 상황과 환경을 간절히 바라기도 했지만, 정작 그런 상황이 왔을 때 마음만큼 글을 쓰지 못했다. 자책은 배가 된다. 상황 탓을 할 때가 훨씬 편했는데, 오직 내 의지만 문제가 되는 날은 더 버겁다.


어쩌면 진짜 최적의 상황은 나까지 포함해야 하는지 모른다. 애초에 그런 이상적인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을 바라지 말고, 할 수 있는 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뻔한 진리로 방향을 튼다. 상투적이라 외면하지만, 삶의 지혜는 늘 뻔하고 당연하다 여기는 곳에 있으니까.


다섯째, 가끔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내가 <헌신>을 쓰던 때 반드시 해야 할 일 대부분이 지워지듯 사라졌다. 머리카락이 심히 길게 자랐고, 헤매다 받던 유방조영술도 건너뛰었다. 개의 발톱도 잘라주지 못했고, 창문도 닦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연락도 뜸해졌다. 하지만 나는 가족들만큼은 보살폈고, 책을 써냈다. 이것만이 내가 가까스로 할 수 있었던 전부였다. 작업이 끝나갈수록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기분이 든다. (...) 작업이 어떤 가능성에 도달하려면 당연히, 그리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 (...)] -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중에서


나이를 먹고 공부를 하고 글을 쓰면서 간절했던 것 중 하나는,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상황이었다.


눈앞의 의무와 책임. 글을 쓴다고 그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전업 작가가 아니니까. 정작 몰입할 땐 핸드폰도 들리지 않고 내일 일정 생각은 안 난다.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시간 상관없이 몰두한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란 생각보다 많지 않을지 모른다. 어쩌면 스스로 글쓰기를 '덜 중요한 일'로 분류해 뒀는지 모른다. 하루에 단 몇 시간쯤, 가끔 이기적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 가끔은.


글쓰기 책을 읽다 보니 장단점이 생겼다.

장점은 생각보다 다양한 글쓰기 책을 접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중..

단점은 글쓰기 책만 읽고, 쓰다 보니 다른 글이 안 써져서 고통받는 중이다...


뭐랄까. 이성에 치우치면서 감성이 잠시 사라진 느낌... 사실 말도 안 되는 핑계다. 이번 리뷰를 어떻게 쓸까 고민에 빠지니 다른 글을 고민할 여력이 없다는 게 정확하다. 글쓰기 책 2-3권 읽을 때까지만 해도 딴짓을 많이 했다. 소설, 에세이도 읽고, 만화책도 읽었다. 글쓰기 책은 교과서 같았다. 3권 정도 완독 후 집중도가 올라가면서 딴짓이 줄었다. 처음엔 딴짓을 줄이려고 애를 썼는데, 오히려 딴짓이 적절히 섞여야 균형이 잡힐 것 같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목적독서를 5권 이상한 게 처음이다. 신기하고 기특하다. 이 속도로 읽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막상 성공하면 어쩌지?라는 걱정도 들었다.

20권을 읽고도 딱히 글쓰기 향상에 도움이 안 되면 그땐 무슨 핑계를 대야 하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


오늘도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해본다. 글쓰기 리뷰를 하면서 제일 재밌는 순간이다. 주객이 전도된 기분이다. 독서보다 내 맘대로 리뷰 적는 게 재밌다니.

7번째 책은 이미 읽기 시작했다. 그땐 무슨 말을 떠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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