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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뮤즈 Sep 27. 2024

2019년 마라톤 대회를 기억하며.

생존운동 ing

20년 가까이 외면하던 달리기를 다시 접한 건, 새로운 경험을 향한 욕구였다.


2009년 어느 날 인터넷을 보다가 우연히 '마라톤 대회'를 알았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마라톤 대회가 있다는 걸 난생처음 알았다. 운동과 거리가 먼 만큼 정보도 없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당시 나이키에서 주최하는 야간 마라톤이었다.   


"야경을 보면서 달리기를 한다고?"


달리기보다 야경이란 단어에 홀렸다. 마침 열렬한 연애 중이었고, ‘참신한 이벤트가 되겠구나’ 하는 정도였다. 야경을 보면서 남자친구와 뛰는 장면을 상상하면 즐거웠다. 달리기를 해본 적도 없고, 마라톤 대회는 더더욱 낯설었던 터라, 신청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자며 미뤘는데, 예약이 다 차 버렸다.  
몇 년 후, 버킷리스트 목록에 '마라톤 대회 참가를 적었다.' 내가 적고도 놀랐다. '내가? 마라톤이 버킷리스트라고?' 내가 아닌 존재가 와서 적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 야간 마라톤의 잔상이 남은 모양이었다.


실행은 2019년에 이루어졌다. 어느 가을날, 지인이 마라톤 대회를 신청했다며 '같이 하지 않겠냐'라고 물었다. 오랫동안 묻어놨던 버킷리스트가 떠올랐다.

"할래요. 나도" 덜컥 수락해 놓고 집으로 오는 길..

후회했다. 손사래를 치며 거절해야 정상인데 그날따라이상하게 옳다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11월 JTBC 마라톤 10km를 호기롭게 신청했다. 멤버는 2명이 더 늘어 총 4명이 됐다.


막상 예약을 하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아침 8시 시작이라 집에서 일어나서 가려면 5시에 일어나야 했다. (6시 30분까지 집결)


겨울을 싫어하는 내가, 그것도 새벽에..

아침잠 많은 내가 일어나서 갈 수 있을까.

추우면 어쩌지? 괜히 감기 걸리는 거 아냐?

10km를 어떻게 뛰어? 1km도 안 뛰는 데..

후회는 이어졌다.


속도 모르는 지인은 마라톤 연습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공원에서 만난 지인은 제법 잘 뛰는데 나는 몇 걸음못 가 주저앉기 일쑤였다. 나 때문에 제대로 연습 못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민폐캐릭터 같았다.

따로 연습하겠다는 핑계로 연습은 2번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쯤 되니 어떻게 하면 취소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지만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 바꾸는 게 왠지 창피하기도 하고, 민망했다. 정 안되면 그때 가서 아프다고 하자며 애써 마음을 다스렸다. 제대로 된 달리기 연습은 하지도 못한 채, 고민만 하다가 11월이 됐고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에라 모르겠다. 감기 걸리면 걸리는 거고,

완주 못 하면 말지 뭐


우리의 전략은 1KM씩 끊어서 가자였다. 완주에 목적을 둔 터라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500m를 걷다가 500m 미터를 뛰어서 1Km에 도달. 이 방법을 총 10번으로 나눠서 하기로 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11월 새벽 날씨는 생각보다 많이 춥지 않았다. 출발지는 여의도 공원이었다. 여의도역 출구를 나오자마자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은 사라졌다.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모두 마라톤 참가자들이었다. 왠지 모를 소속감마저 느껴졌다. 마라톤 대회장을 들어서자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였다. 대회 시작 전 공연도 펼쳐졌다. 하늘엔 풍선이 날아다니고, 음악소리는 심장을 두드리듯 울려 퍼졌다. 어안이 벙벙했다. 말로만 듣던 신세계였다.


"축제 같아!"

처음 참가한 티가 너무 난다며 남편과 웃었다. 공연을 즐기다 보니 긴장감은 설렘으로 바뀌었다. 축제 분위기에 취해 몸을 들썩들썩거렸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고, 우린 출발선에 섰다. 남편과 나는 눈빛교환을 나누며 전략을 다시 되새겼다.


'탕'


출발소리와 함께 엄청난 인파가 동시에 움직였다. 선두 그룹이 먼저 달리고, 마지막 그룹인 우리도 뒤따랐다. 뛰다가 걷다가 하는 전략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한 가지 문제는, 도로 통제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관리차 관계자 차량이 쫓아왔다. 조금 더 속도를 내라는 방송이 나왔다.


"뭐야. 우리 소몰이당하는 거야?"


한참 웃었다. 피해가 안 가는 선에서 우리 속도대로 뛰었다.

평소 차가 다니는 도로 위를 달리며 묘한 자유로움마저 느꼈다. 하늘도 보고, 선선한 바람을 즐겼다.

도파민이 잠시 가라앉자, 이내 생경한 광경이 들어왔다. 눈이 안 보이는 분이 안내자를 따라 뛰는 모습,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가 뛰는 모습, 휠체어를 밀면서 달리는 모습.. 어린아이를 동반하고 뛰는 가족까지..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그간 나를 괴롭힌 고민과 걱정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느낀 생각과 감정으로 가득 찼다. 찬 공기 때문인지 마음이 시원해졌다. 문득 하늘을 봤다. 11월 아침 하늘은 청명했다.

전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기분을 느꼈다.

‘참가하길 잘했어. 모르고 살 뻔했네.'

감정에 취한 것도 잠시, 6KM를 넘어서자 숨이 차기 시작했다.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사라졌다. 숨이 헐떡여 500미터를 한 번에 뛰지도 못했다. 완주를 못하겠다는 확신이 점점 들었다.


 "우리 완주 못하겠음 옆으로 빠질까?"


잠깐 고민했지만, 조금만 결정을 미루기로 했다.


"1Km만 더 가고 생각하자, 1Km만 더, 1Km만 더.. "


9Km 표시가 보였다. 여기까지 왔다면 완주를 안 할 순 없다. 나머지 1Km는 걸어서라도 완주하자. 어느새 뛰는 거리보다 걷는 거리가 길어졌다. 다리가 무겁고 종아리가 땅겼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격려와 응원은 마치 등산할 때,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에요' 하는 희망고문 같았다. 뫼비우스 띠에 빠진 게 아닌가 하며 답답함을 느끼던 그 순간, 도착 지점이 눈앞에 펼쳐졌다.


 "봐봐. 결승점이다."

무거워진 몸뚱이..

마지막 100미터는 무조건 뛰자고 다짐했다. 100미터, 70미터, 30미터.. 그렇게 첫 마라톤 대회를 완주했고, 완주 메달과 기록증을 받았다. 많은 생각과 감정이 오갔다. 제일 크게 와닿은 건.. 나도 할 수 있었구나... 였다.

여운은 꽤 오래 지속됐다. 바로 다음 마라톤을 기약할 만큼. 아쉽게도 다음 해 코로나가 발발하며 마라톤 참가는 일회성으로 끝났지만.


생애 첫 마라톤 대회는 내가 달리기를 다시 생각하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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