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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필사 11일째

우연히 필사

by 감정 PD 푸른뮤즈

우연히 필사 11일째.

몸도 마음도 엉망인 날.

감기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미열까지 더해졌다감기약을 먹었더니 머리는 멍하고, 몸은 축 처졌다. 일은 계속 엇나갔고, 예상치 못한 변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얽히고설킨 전기선처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보니, 지친 얼굴이 비쳤다.

"오늘도 최선을 다했어."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다.


필사 노트를 펼쳤다.

책장을 넘기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 문장을 찾았다.

그렇게 고른 문장은 책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속 문장.


이제 한계라고 느끼는 순간이 한 번 더 도전할 때예요.

살다 보면 열정을 가지고 노력했던 일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한계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마음이 정해놓은 선일 뿐입니다.
이제 정말 한계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거기서 딱 한 걸음만 더 내디뎌 보세요.
새로운 세계가 보일 거예요."

한계, 열정, 포기


오늘따라 이 단어들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오늘도 한계를 너무 쉽게 정해버린 걸까?


난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고 미리 선을 긋고, 이만하면 됐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버릇.

내가 더 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었고,

이만하면 됐다는 자조적인 질문을 던졌다.

능력이 부족한 걸까?라고 자책했고,

아직 실력을 덜 쌓았을 뿐이라며 토닥였다.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흔들렸다.

쏟아지는 폭우 속 자동차 와이퍼처럼 끊임없이 앞뒤로흔들렸다. 결국 한계를 긋고 있는 건 언제나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중심을 다시 잡자.


흔들리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아직 한계라고 단정 짓지 말고.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말고 조금은 느긋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더 고민해 보자.


가끔, 마음이 바닥까지 내려앉을 때

평소에는 너무 뻔해서 눈길도 주지 않던 말들이 절실한 진리가 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듯,

흔들리는 마음이 기댈 곳을 찾듯,

갈증을 해소해 줄 문장을 애타게 찾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랬다.


필사는 나의 어휘력과 표현력을 높여줄 수단에서

비틀거리는 내 마음을 붙잡아 주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 몸은 여전히 피곤하지만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진 느낌.


내가 선을 긋지 않는 한, 한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


조금 더 해보자... 1년?... 2년...?..

능숙해지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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