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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필사 17일째

우연히 필사

by 감정 PD 푸른뮤즈

우연히 필사 17일째.


힘든 일주일이었다.

몸이 힘들었고, 스스로 실망했고, 감기를 앓았다.

몸과 마음은 실과 바늘처럼 엮어있어 하나만으로는

제기능을 할 수 없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싸움이겠지만 내 기준에선늘 답이 있다.


몸이 먼저.


몸이 무너지면 마음은 일어날 수 없다. 감기약에 취해 해롱거리며 잠이 들면 모든 것이 무용해진다.

한참 앓고 정신이 든 뒤, 힘들었던 일주일을 복기한다. 무기력은 좀처럼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이럴 때 늘 나를 일으키는 건 음악이다. 힘들 때 하루 종일 음악만 들으며 버틴 시절도 있었다.

오늘도 그런 나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으로 노래 4곡을골라 필사했다. 솔직히 위로가 되는 노래는 너무 많다. 수십, 수백 곡 이 될 테지만, 그날그날 끌리는 노래를 기준으로 듣는 편이다.


오늘 고른 곡은,

강산에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카니발

<거위의 꿈>

유다빈 밴드

<좋지 아니한가>

노댄스

<달리기>

일주일 동안 필사는 한두 번 했지만, 기록은 안 했다.

힘들 때 필사에 제일 먼저 손이 가진 않는다. 내게 필사는 아직 그런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숙제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도 있다. 이번 일주일이 그랬다. 숙제가 되는 건 싫었다. 불편한 마음이 들 때마다 '왜? 뭐' 같은 말만 중얼거렸다. 필사는 끝까지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 존재로 남았으면 좋겠다.


네 곡 중 첫 소절만으로도 늘 울컥해지는 노래가 있다.

카니발의 <거위의 꿈>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절했던 꿈"


버려지고 찢겨 남루한 꿈.


얼마나 시적이면서 와닿는 표현인지.

꿈이 있다는 말은 한때 내 안에 반짝이던 무언가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 나이에 아직 꿈을 꾼다는 말은 어쩌면 사치스럽게 들릴지도 모른다. 남들이 들으면 하찮고, 보잘것없고, 현실성 없는 꿈일지라도

나는 아직 그 꿈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적어도 '간질거렸던' 그 느낌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있다.


'버려지고 찢겨 남루한'이라는 표현은

마치 오래된 종이처럼 구겨지고 누렇게 변해버린 내 꿈의 모습을 그대로 옮긴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나에겐 보물이다.

가끔 그 보물 상자를 다시 열어보면 먼지만 풀풀 날려도, 그 안에 담긴 반짝임은 여전히 내 안에 유효하다.


오늘, 노래 가사 하나에 오래 머물렀다.

적어 내려가면서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아주 조용히 일어났다. 완전히 자리에서 일어난 건 아니고, 그저 무릎을 꿇고 있던 마음이 조금 몸을 일으킨 정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

노래 한 곡, 문장 몇 줄이 다시 숨을 들이쉬게 해 준다면 오히려 그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번 필사는 감정을 정리하려는 시도라기보다 그저 감정을 조용히 바라보게 해주는 시간이 되었다.

노래를 들으며 위로받는다는 건, 누군가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은 경험이다.

가사를 따라 쓰는 행위는 그 말에 내 마음을 얹어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위로는 때로 조용히 다가와 내 옆에 앉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말보다 공감의 숨결이, 설명보다 함께 머무는 시간이 더 큰 힘이 된다. 노래 한 곡을 듣고 그 안의 문장을 손끝으로 따라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녹아내린다


오늘의 필사는 그런 위로였다.

말 대신 음악과 문장이 조용히 내 곁에 앉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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