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입문러의 글쓰기 연습장]
장면일기
평소보다 이른 아침. 어쩐지 걷고 싶어졌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산책길을 나섰다. 아직 햇살은 한여름만큼 익진 않았다.
정해진 정류장을 도는 버스처럼, 늘 걷는 산책로를 멍하니 걸었다.
한 바퀴 빙 돌고 입구로 돌아가는 단순한 코스.
나뭇잎 위로 반짝이는 비닐을 씌운 듯 햇살이 비추는 이쁜 풍경.
기분이 좋아져 살짝 흥얼거리며 시선을 이리저리 옮겼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기와 위에 올라간 고양이.
보호색처럼 지붕 색과 비슷한 고양이를, 시력이 좋지 않은 내 눈에 들어온 게 우연일까 싶었다.
얼른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을 확대해서 보니
나는 고양이를, 고양이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지 않지만 이어진 듯한 묘한 선.
묘한 관계가 형성됐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양이 앞에 기와가 하나 끊어져 있다.
고양이가 멈춘 건 풍경 때문이었을까. 살짝 끊어진 길 때문이었을까.
문득 생각한다.
멈추는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
길이 끊어졌든,
마음이 빼앗겼든,
잠깐 멈추어 본 풍경 하나가
하루를 카페인처럼 진하게 만든다.
어제 밀리의 서재 글쓰기 워크숍 시간에 쓴 ‘장면 일기’
미리 찍어온 사진 한 장을 보고 짧은 글쓰기를 해보는 시간이었다.
글쓰기 책에서 종종 사진 보고 짧은 글쓰기를 권유하지만,
막상 손이 안 갔다.
마음속 숙제처럼 쓰다 말다를 반복하던 시간들을 보냈다.
오늘 글을 쓰면서 새삼 깨달았다.
내가 본 것을 쓰는 일과,
내가 느낀 것을 쓰는 일은 같지 않다는 걸.
지금까지 나는 늘 내 감정을 먼저 꺼냈다.
그 순간의 울컥함, 괜스레 복받치는 마음, 이유 모를 허함과 불안감..
오늘은 달랐다.
그렇게 장면을 먼저 쓴 뒤, 그 안에 있던 내 마음이 조금씩 따라 나왔다.
내 마음을 숨기자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방식이랄까?
어쩌면 하루 한 장면이라는 건,
내 감정의 또 다른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사진 한 장이 글이 되고,
글이 다시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경험.
막상 해보니 어렵지만
이제는 그 어려움마저도 재미있다.
멈춰있는 고양이처럼,
나도 그렇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제야 뭔가를 바라볼 준비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