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짧은 파편
성장서사는 언제나 흥미롭다.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은 성장한다.
성장해야 한다.
사람들이 환호하고 즐거워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본인의 능력을 잘 모르다가 조력자를 만나 힘을 발휘해 영웅이 되거나,
무너져 삶을 포기하다가 어떤 계기로 다시 일어나 성장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아무 능력이 없던 인물이 스승을 만나 점차 단단해지는 과정은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성장의 길이 치열할수록 인물은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인물이 힘들수록, 우리는 힘들이지 않고 대리 성장 욕구를 채운다.
그렇다면 내 성장 서사는 어디쯤일까?
나는 늘 과정보다 결과를 먼저 생각한다.
과정은 더디다.
특히 초반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어느 정도 지루한 시간이 흘러야 겨우 수면 위로
어설프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제야 비로소 느낀다.
'아 내가 성장하고 있나 보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 이르기까지가 힘겹다는 것이다.
때로는 욕실에서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를 꿈꾼다. 목욕을 즐기다 부력의 원리를 깨달은 순간.
하지만 내가 놓치는 것이 있다.
정작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는 단번의 깨달음이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고민과 공부, 지루한 과정이 쌓이고 쌓여 도출된 결과였다.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내 삶에서는 왜 그렇게 적용하지 못하는 걸까.
단번에 번쩍이는 순간만을 바라보며 과정의 시간을 건너뛰려 하기 때문이겠지.
그런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 종종 성공한 사람들의 '처음'을 찾아본다.
SNS 인플루언서라면 끝없이 스크롤을 내려 첫 업로드를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처음은 대체로 현재보다 미비하다.
하지만 위로 하나씩 올라가다 보면, 성장의 궤적이 또렷하다.
실로 무서운 시각 효과다.
시행착오와 발전,
꾸준함이 남긴 선명한 업로드 날짜.
그 앞에서 때론 전율을 느낀다.
다른 이의 성장은 나에겐 큰 자극이다.
꾸준히 하나씩 쌓아가는 힘이 결국 어떤 결실로 이어지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일.
내가 믿지 못하는 '매일의 힘'이 눈앞에서 증명되기 때문이다.
'나는 왜 꾸준히 하지 못할까'
오랫동안 고민했다.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찾진 못했지만 이유만큼은 분명하다. (슬프게도..)
나는 출발하자마자 도착지점을 본다. 남은 거리를 세며 한숨 쉬느라 정작 달리기에 집중하지 못한다.
매일 하나, 매일 한 시간의 힘을 믿지 못한다.
현실은 초라한데 꿈은 산꼭대기 정상에 있다. 괴리감이 클수록 무력감은 쉽게 찾아온다.
감정 기복이 있는 탓에 '그냥'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중심은 없는데, 하고 싶은 일만 잔가지처럼 뻗는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다짐처럼 되뇐다.
'저 정도 노력 못할 거라면 결과를 바라지 말 것'
내 성장 서사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인물만 있을 뿐, 성장 서사의 뼈대도, 능력을 키워줄 조력자나 스승도 없다.
덩그러니 혼자 넓은 해변가 모래사장에 앉아 초라한 등만 보인 채
나의 성장 서사를 그려본다.
출발 지점에서 여전히 투박한 나를 다듬는 중이다.
어설픈 마음으로 뛰쳐나가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결말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뒤를 돌아보다 길을 잃지는 말자.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성장 서사를
스스로 흩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 마음이 흔들릴 때 보는 자극제... 김연아 선수.
그녀는 말한다.
'그냥 메달이구나'
'그냥 하는 거지'
'그냥 가야 하니까'
'결과는 담담하게, 과정은 치열하게'의 실체가 존재한다면 김연아 선수가 아닐까?
참 멋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