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화재, 그리고 일상의 소중함

일상 속 짧은 파편

by 감정 PD 푸른뮤즈


화요일 아침,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익숙한 소리였다.


우리 아파트는 워낙 경보기 오작동이 잦다.

그래서 그날도,

'또 오작동이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남편이 먼저 움직였다.

"혹시 모르니까..."

그 말과 함께 대문을 향했다.


잠시 뒤, 그가 말했다.


"밖에 불이 난 것 같아."


나는 여전히 비몽사몽이었다.

긴급함을 실감하지 못한 채

옷을 대충 걸치고 핸드폰만 쥐고 문을 열었는데...


진짜 불이 났다.


복도엔 연기가 자욱했고,

사람들은 소화기를 들고 허둥지둥 뛰어다녔다.

대문을 열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눈과 코를 향했다.

누군가가 '내려가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급히 계단을 내려가 1층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와 상가 앞에 섰다.

올려다보니,

우리 동, 우리 층이었다.


베란다에서 시작된 불길이 점점 번지고 있었다.

덜덜 떨렸다.

그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베란다 유리 조각이 반짝이며 아래로 떨어졌다.

불은 순식간에 더 커졌다.

다시 '펑', 그리고 또 '펑'

위층으로 불은 번져갔다.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어떡해" 발만 동동 굴렀다.

입술 사이로 새는 말은 멈추지 않았다.


소방차가 도착했다.

그런데 한동안 움직임이 없었다.

" 왜 안 꺼.. 왜... "

1분이 1시간 같았다.

혹시 안에 사람이 남아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소방대원분들이 직접 진입해서 진화해야 한단다.


소방차, 구급차, 특수 장비차, 경찰차까지..

아파트 앞을 메웠다.

그리고 마침내 불은 꺼졌다.


불이 꺼진 후에도 연기와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파트 입구엔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었다.

문을 잠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지만 들어갈 수 없었다.


긴장이 풀리자 허기가 몰려왔다.

우리가 가진 건 열쇠와 핸드폰뿐

다행히 핸드폰 하나면 결제가 되는 세상이다.

편의점에서 물을 마시고 컵라면을 먹었다.

몸은 따뜻해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지러웠다.


SE-ce5dbdfe-b4a6-4c85-8ac6-2d03138ddd49.jpg?type=w1

잠시 후 다시 돌아온 아파트는 말 그대로 처참했다.

타고 꺼지고 남겨진 흔적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조심스럽게 집 안을 확인한 뒤, 몇 가지 물품을 챙겨 나왔다.

마침 본가 부모님이 집을 비우신 터라 그곳으로 피신하기로 했다.

시야에 다 타버린 집이 눈에 들어왔고,

매퀘한 냄새는

마치 조금 전 상황이 현실이라는 걸 상기시켜 주는 듯했다.


화재를 겪으며 깨달았다.

그 순간, 정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우리 그리고 핸드폰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불길이 번진 후였다면

맨 몸으로 뛰쳐나왔을 것이다.

살면서 중요한 게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새삼 생각했다.


화재 다음 날엔 폭우가 쏟아졌다.

인명피해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친구가 사는 동네가 물에 잠겼다는 말에 놀랐지만,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불 다음은 물이야?'


긴 한숨이 나왔다.


재난은

예고도, 순서도 없이 일상을 덮쳤다.

늘 직접 겪기 전까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기란 참 어렵다.


편히 숨 쉴 수 있다는 것.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위험이 없는 순간 속에 있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이 무사하다는 것.


그 모든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직도 불이 번지던 장면이 생생하다.

공포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며칠간은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모르겠다.


남편과 떨면서 말했다.


화재보험을 들자.

재난 가방을 준비하자.

수시로 안전을 체크하자.

안전은 유난스러워도 괜찮다.


물론 며칠 지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유난스러운 마음은 다소 가라앉았지만

한동안 마음이 시끄러울 것 같다.

여전히 마음은 무겁고

불안은 잔향처럼 남아있다.


우린 집으로 돌아왔고,

미뤄둔 볼일을 보고,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감사하고 씁쓸한 일상이 또 이어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웰다잉 같은 소리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