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스케이프, 인터넷 익스플로러, 구글 크롬, 파이어폭스, 사파리, 오페라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진 인터넷 익스플로러부터, 어느새 세상을 장악해 버린 구글 크롬, 한동안 열풍이 불었다가 지금은 조용히 갈 길을 가는 파이어폭스, 그리고 이름만큼은 예술적이었던 오페라까지—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하루에 수십 번씩 웹브라우저를 열고 닫으며 살았다.
(2025년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글 크롬의 유저는 약 36억 명)
그런데 AI 시대를 맞이한 지금, 브라우저는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듯하다.
요즘은 직접 검색도, 웹서핑도 예전만큼 하지 않게 되었다.
나보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찾아주는 AI가 있으니까.
링크를 클릭해서 긴 글을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 "짧게 요약해 줘", "알기 쉽게 번역해 줘"만 되풀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필자가 어릴 때는 '인터넷 정보검색 대회'라는 것도 있었다. 누가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원하는 정보를 찾아내느냐를 겨루는 대회였는데, 돌이켜보면 시대에 따라 필요한 능력도 급변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이러다 웹브라우저마저 몇 년 뒤에는 역사의 유물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문득 그런 걱정이 스쳐 지나가면서, 웹브라우저의 시작이 궁금해졌다.
1993년 1월, 미국 일리노이주 어바나 샴페인.
살을 에는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캠퍼스의 밤, 국립 슈퍼컴퓨터 응용센터(NCSA)의 연구실만큼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스물두 살의 학부생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과 NCSA 직원 에릭 비나(Eric Bina)가 며칠째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모니터 앞에 붙어 있었고, 그들의 눈앞 화면에는 칙칙한 초록 글자만이 아니라—믿기 어렵게도—이미지가 떠 있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텍스트 사이사이에 그림이 섞여 있는 화면.
그러나 당시로서는 기적에 가까운 장면이었다.
"이거야. 이게 세상을 바꿀 거야."
마크의 확신은 틀리지 않았다. 그들이 밤새워 만들던 프로그램 '모자이크(Mosaic)'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인터넷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속도로 진화하기 시작한다.
그전까지의 인터넷은 솔직히 재미가 없었다.
사진도 없고, 영상도 없고, 소리도 없는 그곳에는 오직 텍스트만이 건조하게 나열되어 있었으며, 정보를 얻으려면 일반인은 도저히 알 수 없는 복잡한 명령어를 입력해야만 했다.
팀 버너스 리가 스위스 CERN에서 월드 와이드 웹(WWW)을 발명한 이후에도, 인터넷은 여전히 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의 전유물에 가까웠다.
마크 앤드리슨은 불만이었다.
"왜 컴퓨터 화면은 잡지처럼 예쁠 수 없는 거지? 왜 글자만 봐야 하는 거야?"
지극히 젊고 단순한 반발심이었지만, 바로 그 반발심이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는 에릭 비나에게 제안했다.
"이미지를 텍스트와 함께 띄우자."
1993년 2월 25일, 마크 앤드리슨은 웹의 창시자 '팀 버너스 리'가 참여하고 있던 www-talk 메일링 리스트에 <img> 태그를 제안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답변을 받자, 그 논의를 기다릴 인내심 따위는 없었던 그들은 그냥 만들어서 넣어버렸다.
행동하고, 증명한다.
지금도 변하지 않는 원영적'해커적' 사고방식.
1993년 1월 23일, 마크 앤드리슨은 "알파/베타 버전 0.5" 공개를 알린다.
반응은 곧 폭발적이다 못해 사뭇 광적이었다.
사람들은 생전 처음으로 인터넷을 '파도타기(Surfing)'하기 시작했다.
모나리자 그림도 구경하고, 지구 반대 편에서 올라온 쓸데없는 사진도 클릭해 봤다.
지금과 비교하면 화질은 형편없이 열악했고, 이미지 하나가 뜰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지만, 마치 우리가 인스타그램에 열광하듯—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모두가 푹 빠져들었다.
이후 마크 앤드리슨은 실리콘밸리로 건너가 전설적인 연쇄살인마창업가인 짐 클라크를 만나 '넷스케이프(Netscape)'를 창업. 모자이크의 정신을 계승한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는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며 웹의 황금기를 활짝 열어젖혔다.
비록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와의 처절한 전쟁—이른바 브라우저 전쟁—에서 밀려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 명맥만큼은 끊기지 않았다.
모질라 파이어폭스(Firefox)가 그 직계 후손이며, 크롬이든 엣지든 사파리든, 우리가 매일 쓰는 모든 브라우저의 DNA에는 모자이크의 피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지금까지 브라우저는 인간이 정보를 찾고 보는 창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AI가 그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브라우저에 탑재된 AI 에이전트가 화면을 이해하고, 우리 대신 클릭하고, 요약하고, 복잡한 작업까지 수행해 낸다. 오픈AI를 비롯한 수많은 AI 봇들이 웹이라는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며 정보를 긁어모으고 있으니, 인터넷의 풍경은 또 한 번 근본적으로 뒤바뀌고 있는 셈이다.
마크 앤드리슨는 넷스케이프의 뼈아픈 패배 후,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라고 예언하며 실리콘밸리의 거물 투자자로 변신했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모자이크가 뚫어놓은 작은 창문을 통해 소프트웨어는 정말로 세상을 집어삼켰고, 이제는 AI라는 새로운 파도가 거세게 밀려들고 있다.
퍼플랙시티(엄밀히 말하면 웹브라우저는 아니다)가 AI를 활용한 웹서핑의 가능성을 열었고, 작년에는 오픈AI가 AI브라우저인 아틀라스(Atlas)를 출시했다. 그리고 얼마 전, 구글은 크롬(Chrome)에 자사의 AI 제미나이(Gemini)를 공식 탑재하기로 발표하고, 미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웹브라우저는 과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AI와 통합되면서 다른 모든 앱들을 누르고 '온리 원'의 왕좌에 오를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보고 있는 이 브라우저 창.
그 네모난 프레임이 오늘따라 유난히 경이롭게 느껴지지 않는가.
최대한 신중하게 팩트 체크를 거쳤지만, 기술과 역사를 다루다 보니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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