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코드 짜는 시대,
우리 아이는 뭘 배워야 할까?

프로그래밍 언어의 역사로 보는, AI 시대 진짜 필요한 능력

by TEUM Lab

지구상에는 약 7,000개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한다.

컴퓨터 세상에는 약 700개의 '알려진' 언어가 있다.


"앞으로는 AI가 통번역을 해주니까, 영어 안 배워도 되겠네?"

그런 말이 돌던 게 엊그제 같은데, 몇 년 전부터는 온통 코딩 열풍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영어보다 더 난해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러 학원을 다닌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바이브 코딩"이라며, 이제 개발자도 필요 없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체 뭐가 맞는 말인 건지. 애초에 프로그래밍 언어란 게 뭐고, 뭘 배워야 하는 건지.


오늘은 이런 궁금증을 안고, 프로그래밍 언어의 계보를 훑어보자.

특히 유난히 사연 많은 녀석이 하나 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한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현재 가장 사랑받는 언어 중 하나인 자바스크립트가 무엇이고, AI 시대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같이 알아보자.




10일간의 불면, 미션 임파서블

1995년 5월,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즈의 사무실은 한마디로 전장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무기 삼아 밀고 들어왔고, 넷스케이프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혼란의 한복판에 브렌던 아이크(Brendan Eich)가 서 있었다.

그에게 떨어진 미션은 황당 그 자체.

"브라우저 안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어. 단, 자바(Java)처럼 보여야 해. 그리고 빨리. 아주 빨리."


주어진 시간은 단 10일.

신이 세상을 창조하는 데 7일이 걸렸다면, 브렌던 아이크는 인터넷 세상을 움직일 언어의 초안을 만드는 데 고작 10일밖에 쓰지 못했다. 그나마 신은 마지막 날 쉬기라도 했다.


그 급박했던 열흘이, 훗날 전 세계 웹을 지배하는 자바스크립트의 출발점이 된다.



이름을 훔친 언어

사실 브렌던 아이크가 진짜 원했던 건 따로 있었다.

'스킴(Scheme)'이라는 우아한 함수형 언어를 브라우저에 넣고 싶어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경영진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자바'라는 언어가 IT 업계를 휩쓸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바가 대세야. 자바의 동생처럼 보이는 언어를 만들라고."


마케팅의 논리에 개발자의 철학 따위는 뒷전으로 밀리는 게 세상의 법칙이다.

그래도 현명한 개발자였던 아이크는 절충안을 택했다.

겉모습은 자바를 닮게 하되, 속은 자신이 사랑하던 스킴과 셀프(Self)의 감각을 몰래 섞는 것으로.

(Self는 1980년대 후반 Sun Microsystems(제록스 PARC 출신 연구자들)에서 만든 프로그래밍 언어)


울면서 김밥을 마는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은근히 즐겼을까. 아마 둘 다였을 것 같다.

그렇게 탄생한 언어의 첫 이름은 '모카(Mocha)'. 곧 '라이브스크립트(LiveScript)'로 바뀌었다가, 마침내 자바의 인기에 슬쩍 기대어 '자바스크립트'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이름이 닮았다고 혈연이 생기진 않는 법. 자바와 자바스크립트는 사실 완벽한 남남이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만큼, 혹은 햄과 햄스터만큼이나.


다만 그 이름 덕분에 사람들은 이 언어를 더 빨리, 더 크게 주목했다.

물론 동시에 더 많이 헷갈려하기도 했지만.

상표권 침해 소송이 없는 게 신기하다.

wordcloud.jpg Generated with NotebookLM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로

초기의 자바스크립트는 조롱거리였다.

느리고, 불안정하고, 보안 문제도 수두룩.

전문 개발자들은 "장난감 언어"라며 코웃음을 쳤다. 하긴 10일 만에 만들었으니 뭘 기대하겠는가.


하지만 이 언어에는 무서운 무기가 하나 숨어 있었다.

'어디에나 있다(Ubiquity).'

웹브라우저만 있으면 별도 설치 없이 곧장 실행된다. 이 접근성이 모든 것을 뒤집는다.


화려한 스펙보다 "일단 어디서든 돌아간다"가 승리하는 것은, 기술 세계의 오래된 법칙이다.

VHS가 베타맥스를 이긴 것도, USB가 세상을 정복한 것도 결국 같은 이유였으니까.


2004년, 구글이 '구글 맵'을 내놓으며 자바스크립트의 가능성을 증명해 보였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지만, 웹브라우저에서 지도가 부드럽게 움직이는 그 경험은 당시로서는 마법에 가까웠다.


그리고 2009년, 라이언 달(Ryan Dahl)이 'Node.js'를 발표.

브라우저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던 자바스크립트가 서버로 뛰쳐나가, 웹 서비스의 심장부까지 맡기 시작한 순간이다.


넷플릭스, 페이스북, 우버.

우리가 매일 쓰는 수많은 서비스가 이제 자바스크립트 위에서 돌아간다.

급하게 10일 만에 만든 언어가, 수십 년 동안 다듬어진 명품 언어들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라섰다.

인생사,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잠깐, '브라우저'와 '서버'가 뭐가 다르길래?

흑백요리사2가 요즘 대세이니 식당에 비유해 보자면,

클라이언트(브라우저)는 손님이 앉아 있는 홀이다.

당신의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화면에 보이는 것들—버튼 클릭, 애니메이션, 입력창—을 담당한다.


서버는 저 뒤편 주방이다.

저 멀리 데이터센터 어딘가에서 묵묵히 돌아가는 컴퓨터가, 데이터를 저장하고, 계산하고, 요청에 응답한다.


원래 자바스크립트는 '홀 전용 언어'였다.

손님 앞에서 메뉴판을 예쁘게 보여주고, 버튼을 누르면 반짝이게 하는 정도.

주방 일—회원 정보 저장, 결제 처리, 복잡한 계산—은 자바, 파이썬, PHP 같은 '서버 언어'들의 몫이었다.


Node.js가 등장하면서, 자바스크립트는 홀에서 주방까지 진출했다.

한 언어로 식당 전체를 운영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홀 매니저가 갑자기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들어간 격인데, 이게 또 의외로 잘 해냈다.


One more thing. 여기서 하나만 더.

프로그래밍 언어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컴파일 언어와 인터프리터 언어.

컴파일 언어는 '완성본 납품' 방식이다.

코드를 미리 기계어로 통째 번역해서 실행 파일을 만든다.

C, C++, 자바 등이 대표적이다. 번역에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완성되면 빠르게 돌아간다.

출판된 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터프리터 언어는 '동시통역' 방식이다.

코드를 한 줄씩 읽으면서 바로바로 실행한다. 자바스크립트, 파이썬이 여기에 속한다.

준비 시간은 짧지만, 실행 속도는 조금 느릴 수 있다. 발표자 옆에서 실시간으로 통역하는 것과 같다.

자바스크립트가 인터프리터 언어라는 점도, 이 언어가 퍼진 이유 중 하나다.

별도의 컴파일 과정 없이, 브라우저만 있으면 코드가 바로 실행된다.

그 즉시성이 웹의 빠른 호흡과 찰떡궁합이었다.



2026년, AI가 가장 잘 쓰는 언어

2026년 현재, 자바스크립트의 위상은 여전하다.

아니, 더 공고해졌다고 해야 할까.


AI가 코드를 짜 주는 시대. 그렇다면 AI가 가장 능숙하게 생성하는 언어는 뭘까?

바로 자바스크립트와 파이썬이다.


AI도 결국 데이터로 배운다.

인터넷에 가장 많은 예제와 레퍼런스가 쌓여 있으니 당연한 결과다.

교보문고에 가장 많이 꽂혀 있는 외국어 교재가 영어인 것과 같은 이치.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보자.

생각이 곧 순식간에 결과로 바뀌는 AI시대에 아이디어를 빠르게 앱으로 만들고, 그걸 사람들에게 바로 쓰게 하고 싶다면? 그 순간 자바스크립트는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라 거의 유일한 답이 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웹이 곧 배포이기 때문이다.

파이썬으로 만든 프로그램을 누군가에게 쓰게 하려면, 설치 파일을 보내거나 서버를 세팅하거나 앱스토어 심사를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웹 앱은? 링크 하나면 끝. 클릭 한 번으로 전 세계 누구든 바로 쓸 수 있다.

설치도, 업데이트도, 운영체제 호환성 걱정도 없다.

그리고 그 웹의 언어가 바로 자바스크립트다.


화면을 그리는 것도, 서버를 돌리는 것도, 데이터베이스를 다루는 것도 자바스크립트 하나로 전부 가능하다.

여러 언어를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없으니, AI와의 대화도, 결과물의 구조도 훨씬 깔끔해진다.


아이디어 → AI 코딩 → 웹 배포 → 즉시 사용.

이 속도의 공식에서, 자바스크립트만큼 궁합이 좋은 언어는 현재 없다.

tree2.jpg Generated with NotebookLM


그래서, 우리 아이는 뭘 배워야 할까?

AI가 코드를 척척 짜 주는 시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각광받던 직업이, 이젠 취업 걱정을 해야 한다고 연일 뉴스에서 호들갑인데, 우리 아이들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알아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알아야 한다. 다만, 목적이 달라졌을 뿐이다.


예전에는 코드를 한 줄 한 줄 직접 써 내려가는 게 개발자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작업은 점점 AI의 몫이 되어 간다.


"그러면 인간은 뭘 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검증해야 한다.

AI는 시키는 건 잘한다. 하지만 뭘 시켜야 하는지는 모른다.

좋은 질문, 좋은 아이디어, 좋은 판단—이건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분야를 기웃거리고,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코딩을 배우는 건 단순히 코드를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기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잡는 것, 그래서 AI에게 더 정확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은 검증.

코드를 모르는 사람이 AI에게 "앱 하나 만들어 줘"라고 말하면, AI는 뭔가를 만들어 준다.

하지만 그게 진짜 원하던 앱인지, 보안에 구멍은 없는지—이걸 판단할 눈이 없다면, 그건 온라인 게임에서 가챠를 돌리는 도박과 다를 바 없다.


언어의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다르다.

AI가 만든 결과물을 읽고, 문제점을 짚고,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한다.

이 통찰력은 앞으로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경제학에는 '제번스의 역설'이라는 개념이 있다.

기술이 발전해서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되면, 소비가 줄어들까?

인류가 경험한 결과로는 오히려 늘어난다. 증기기관이 진화하자 석탄 사용량은 줄기는커녕 폭발했다.

효율이 좋아지니 더 많은 곳에서 쓰게 된 것이다.


AI 코딩도 똑같다.

코드를 쉽게 만들 수 있게 되니, 코드가 들어가는 영역 자체가 넓어진다.

예전엔 개발자를 고용할 엄두를 못 내던 작은 가게도 이제 AI로 예약 시스템을 만든다.

그 코드를 이해하고 검증할 수 있는 사람의 가치는 오히려 올라간다.


문과와 이과, 개발자와 비개발자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자바스크립트가 급조된 언어에서 세계를 삼킨 것처럼, 중요한 건 완벽한 출발이 아니다.

많이 경험하고, 많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배우는 것.

AI시대에 컴퓨터들의 언어를 배워야하는 이유도 결국 같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19화웹브라우저는 과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