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달러의 로열티도 받지 못한 세기의 발명가
한 때는 선(線)이 필수인 시대가 있었다.
인터넷을 전화선에 연결하고, LAN 케이블에 연결하던 시대.
전화선 모뎀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면 집 전화는 자동으로 통화 중이 됐다.
월말 전화 요금 고지서는 공포 그 자체. 새벽에 몰래 접속하려 해도, 모뎀의 "삐──끄르르르" 사운드가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두꺼운 이불을 컴퓨터 본체에 덮어 씌어보기도 했는데, 별 효과는 없었다.
가수 유승준이 CF 모델을 해서 화제가 된 ADSL이 등장하고, 인터넷은 정말 빨라졌다.
하지만 그때도 '선'은 여전히 필수였다.
2026년, 지금은 무선(無線)의 시대다.
인터넷도, 이어폰도, 심지어 충전까지—선 없이 돌아간다.
우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신호를 잡으려 애쓰는 Wi-Fi.
매일 가던 카페에서 오늘따라 신호가 안 잡히면, 카페인보다 먼저 불안이 올라온다.
Wi-Fi는 대체 어떤 기술이고, 누가 만든 걸까?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85년 전, 세계 제2차 대전 한복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40년, 유럽은 한창 전쟁 중. 독일의 U보트가 대서양 보급로를 끊기 시작했고, 연합군의 수송선은 속수무책으로 침몰했다. 그해 가을, 런던도 불타기 시작했다.
어뢰의 무선 유도 신호를 독일군이 방해할 수 없게 만든다면, 전황이 달라진다.
그 해답을 떠올린 사람이 미국에 있었다.
당대 할리우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 헤디 라마르.
헤디 라마르의 본명은 헤드비히 에바 마리아 키슬러였다.
1914년 빈에서 태어나, 열아홉 살에 체코 영화 '엑스터시'에서 파격적인 연기로 유럽을 뒤흔들었고, 곧이어 오스트리아의 무기상으로서 히틀러와 무솔리니에게 무기를 팔던 프리츠 만들과 결혼한다.
화려한 저택에서 열리는 만찬에는 군사 기술자와 장교들이 드나들었고, 어린 신부는 그 자리에서 어뢰, 무선 통신, 신호 방해 같은 대화를 놓치지 않았다.
남편 만들은 라마르를 트로피처럼 곁에 두며, 외출도, 연기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히지만 라마르는 지금 기준으로 봐도 대단할 정도로 진취적인 여성이었다.
1937년, 라마르는 하녀로 변장하고 집을 탈출. 파리를 거쳐 런던으로, 그리고 미국행 여객선에 올랐다.
이 배 위에서 MGM의 전설적인 제작자 루이스 B. 메이어를 만나, 할리우드 계약을 따낸다.
이미 영화의 시놉시스로도 부족함이 없는 이야기.
1930년대 말부터 1950년대까지, 그녀는 할리우드 황금기의 대표 스타로 새 삶을 살아간다.
라마르는 어릴 때부터 기계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은행 임원이었던 아버지 에밀 키슬러는 딸을 데리고 산책하며 길에서 마주치는 기계와 장치의 작동 원리를 설명해 주었다. 다섯 살 때 오르골을 분해해 속을 들여다본 소녀는, 미국에 건너와서도 발명을 취미로 삼았다.
1940년, 라마르는 아방가르드 음악가 조지 안타일을 만난다.
그는 자동 피아노를 위한 전위적 작품 Ballet Mécanique로 파리를 뒤흔든 작곡가. 기계의 정확한 타이밍에 집착하던 남자였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음악에서 시작해, 세간의 관심사였던 전쟁으로 흘러갔다.
"어뢰의 무선 유도 신호를 적이 방해하잖아. 주파수를 계속 바꾸면 어떨까?"
송신기와 수신기가 같은 순서로 주파수를 빠르게 전환하면, 적은 어떤 주파수를 방해해야 할지 알 수 없다.
피아노 건반을 무작위로 두드리듯, 신호가 주파수 사이를 뛰어다니는 것이다.
안타일은 자동 피아노의 천공 롤 메커니즘을 응용해 동기화 방식을 설계했고, 칼텍의 전기공학자 새뮤얼 매키온이 회로를 다듬었다.
1942년 8월 11일, 미국 특허 제2,292,387호, 비밀 통신 시스템(Secret Communication System)이 등록된다.
라마르와 안타일이 고안한 주파수 도약.
이 개념은 확산 대역 기술의 핵심 원리 중 하나가 된다.
쉽게 말하면, 대화를 여러 방에 나눠서 하는 것이다.
도청자는 다음 대화가 어느 방에서 이어지는지 알 수 없다.
주파수 도약 개념 자체는 1920년대부터 연구되어 왔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라마르가 최초 발명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특허는 송신기와 수신기의 동기화라는 실용적 설계를 제시한 초기 사례였고, 군사 통신에서 민간 기술로 퍼져나가는 흐름에 영감을 주었다.
블루투스는 초당 1,600회 주파수를 전환한다.
초기 Wi-Fi 표준도 확산 대역 기술을 채택했다.
GPS 위성 신호가 지구 반대편까지 정확하게 도달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2026년, 카페에서 노트북을 열고 Wi-Fi에 접속하는 순간,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동안—그 무선 신호 아래에는 전부 확산 대역이라는 기술이 깔려 있다.
라마르의 특허는 1942년에 등록되었고, 특허 보호 기간은 17년이었다. 즉, 1959년에 만료되었다.
확산 대역 기술이 군사 기밀에서 풀려나 민간 시장에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이후.
그녀는 자신의 발명으로 단 1달러의 로열티도 받지 못했다.
1997년, 여든셋의 라마르는 전자 프런티어 재단(EFF)으로부터 개척자상을 받는다.
수상 소식을 전해 들은 그녀는 한마디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때가 됐었군요.
It's about time.
그리고 시상식 날, 아들이 대리 수상하며 라마르가 보낸 녹음 메시지를 재생했다.
헛되지 않아서 기쁘다 (glad that the invention was not done in vain).
2000년 1월 19일, 헤디 라마르는 플로리다 자택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2014년,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
세상의 박수는 반세기나 늦었다.
하지만 이 글을 끝까지 읽어 준 당신이라면, 그녀의 이름 정도는 기억해 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