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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우리 Mar 09. 2016

패배한 사람에게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그 독후감을 쓰고 있었다. 나는 책을 읽은 후 그 안에서 꼭 기억했으면 하는 문장들을 적어두곤 한다. 이런 문장을 적고 있는 중에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첫 패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오늘 이세돌 9단에게 패배란 어떤 의미였을까. 구글에게 이것은 하나의 실험에 불과한 것일 테지만, 그 안에 들어간 한 '인간'의 삶에 대해 구글은 생각해본 적 있을까.



앞으로 사람의 일자리는 기계에게 더 많이 빼앗길 것이란 기사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오늘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첫승을 거두었다.


이건 시작일 뿐임을 다들 알고 있다. 앞으로 사람은 끊임없이 패배할 것이다. 패배한 사람들은 지금껏 지켜왔던 삶의 목표나 의미를 잃어버릴 수도, 삶 자체를 뺏길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감정을 지닌 동물이라 기계가 자신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내어줘도 괜찮다고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이렇게 패배가 뻔히 보이는 싸움을 앞둔 우리는 아예 싸울 의지조차 사라짐을 느낀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대해 경이와 두려움을 느낀다. 앞으로 바둑기사를 꿈꾸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줄어들까.





기계는 잘 작동해야 가치가 있다. 애초에 기계는 유용함이 존재이유이다.

사람도 사회의 유용함으로 그 가치가 매겨지는 상황이 제법 많다. 하지만 이제 똑똑하고 기억력 좋고 유능한 사람이 존경받는 시대가 저물어간다. 그들은 물론 훌륭하지만, 앞으로는 이 예견된 패배 속에서 드러나는 곤경을 딛고 일어나는 사람의 태도가 정말 존경받는 시대가 될 것이다.



다음에는 이길 수도 있다 쳐도, 가까운 미래에 이세돌 9단의 패배는 예견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이 될지 다음 일지 모를, 언젠가 닥칠 패배가 왔을 때 이세돌 9단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 이후 삶은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그의 선택에 달려있다.



아마도 그에게는 이것이 삶이 그에게 던진 가장 큰 질문이 될 것이다.

프로 바둑기사라는 타이틀보다는 앞으로의 선택과 행동이 '이세돌'이라는 사람의 진짜 역사로 남겨질 것이다. 그가 패배 뒤에도 무너지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줄지가 앞으로 우리가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우리를 이긴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연은 과거에도 인간을 항상 이겨왔다. 그때에 인간은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존재였던가? 총이나 대포가 나왔을 때에도 그 이전의 칼로 싸우던 전투의 영웅들은 쓸모없는 존재로 바뀌지 않았다.


무너지지 않고 일어나는 것, 한 걸음 더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 우리에게 의미와 감동을 주는 것은 성공이나 승리가 아니라 이러한 사람들의 태도이다.



졌기 때문에 지금껏 쌓아온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니다. 졌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행동하였다, 무너지지 않았다- 는 선택이 그 사람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말한다.


이제 우리는 삶의 의미란 끊임없이 변하지만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그리고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물론 패배는 썩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일부러 질 필요는 없다. 다만 지더라도 자신의 가치나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전투의지를 상실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인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그리고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항상 판단을 내리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 어느 때보다 패배한 뒤의 성숙한 태도와 다시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가 다가온다.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선택을 할 기회들을 갖게 될 것이다. 역사 속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는 시대를 맞이한 사람들의 훌륭한 선택을 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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