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책이 더 편했다
초등학생 이후로 거의 처음같이 느껴지는
여유와 홀로 됨의 시간들이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항상 누군가와 연결되어있으려 했던 거 같다. 아마 혼자가 무섭고 외로움이 힘들어서?
간만에 노이즈가 사라지고 조-용해지니
물론 옆구리가 시리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나와 내가 보내는 시간이 주어지자, 어느덧 아주 어릴 적 내가 편안함을 느끼던 방식대로 내 삶을 채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책’이다.
1-2년 전에는 그렇게나 책 읽기가 싫고 진절머리 났는데! 지금은 출퇴근용 서적 두어 개, 아침 근무 전 독서용 책, 스터디하는 책, 잠들기 전에 읽는 책- 이렇게 병렬독서를 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참 놀랍지.
내가 갑자기 왜 이리 책을 읽나 생각해보고 있다가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그건 어릴 때부터 혼자인 내가 주로 쓰던 나만의 생존전략이었다는 걸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보자…
초등학생 때 나는 걸어서 등교했는데 그 15-30분 정도의 거리를 책을 들고 다니며 걸어 다녔다. 그냥 든 게 아니고 펼쳐서 읽으며 다녔다. 심지어 평지도 아니고 높은 주택가 골목을 - 아이들끼리 삼각 고개라고 부르던 - 넘어가면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책은 여러 역할을 해준 것 같다.
- 다른 애들이랑 달리 혼자 다녀도 내가 찐따여서 그런 게 아니라 책을 보기 때문이라는 핑계가 되어줬다.
- 혼자인 자신이 남들보다 똑똑하고 지적이기 때문이라는, 사실 사회성이 없고 겁이 많아서라는 문제를 덮어주는 자존감 방어를 해주었다.
- 삶이 어린 내게 주는 괴로움, 두려움, 고통, 끔찍한 감정들을 잊게 해주는 도피처였다. 특히 소설류는 완전히 그 세계 속에 빠지게 해 주고 나는 몰입을 심취할 정도로 해서 빙의한 것처럼 지낼 수 있게 해 줬다. 현실로부터의 해리일까나.
- 이 세상에 사람들이 왜 저리 사는지 알려주는 선생님이기도 했다. 왜 나를 괴롭히고 핍박하는지, 왜 말과 행동이 다른지, 겉으로는 천사 같았는데 끔찍한 일들을 하는지 알려주고, 세상은 배신, 시기질투, 살인, 강간, 이런 것들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현명하고 지혜롭게 자신을 지켜나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가 내 마음을 알게 해 주는 공감적 매체이기도 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의 제제를 보면서 자기 자신을 악마라고 부르는 모습에 공감돼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하고, 날 좀 내버려 두쇼! 하고 결국은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물에 빠져 죽길 택하는 좀머씨 이야기에 공감하며 삶의 지긋지긋한 면에 몸서리치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 나는 이런 식으로 삶을 이어나갔다.
아마 책이 없었으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책에 빠져 산 것은 엄마가 좋아해서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야 안 거지만 3살 즈음에도 책에 빠져 사느라 엄마가 밥 먹으란 소리도 못 들으면 엄마가 책 읽는 중인 내 입에 밥을 넣어 먹여줬다고 하니, 엄마는 내가 책 읽는 게 밥상예의를 지키는 것보다 좋은 거라는 가르침을 새긴 셈이다.
2주간 대학병원에 입원했던 유치원 시절에도 위인전을 잔뜩 가져와 읽힌 엄마를 보면 내가 책을 읽는 게 엄마가 좋아하는 일이란 걸 나는 눈치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마치 식물이 빛이 있는 창문 쪽으로만 자라듯 책을 읽는 것이 사랑받는 방향임을 알아서 자연스레 그리 된 걸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도, 엄마도 좋아하니 책을 계속계속 읽었다.
어느 정도냐면 경기도 도립도서관 성인 및 어린이 전체 중 연간 대출수 1등을 해서 도지사 상인가를 받았던 것 같다. 상이 뭔 상인진 기억이 안 나는데 하여간 난생처음으로 초3-4쯤에 교장선생님이 불러 운동장 조회시간에 그 멀고 높아 보였던 단상에 올라가 외부에서 주는 높은 상을 받게 되었다.
예상 못한 일이라 얼떨떨하고 그날 엄마가 억지로 입힌 촌스런 옷을 입은 게 부끄럽고 후회하면서 아이들 사이로 걸어가던 기억이 선명하다.
고등학생 때까지 책을 놓지 않던 습관은 대학에 가면서 사라졌다. 완전한 자유와 방종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더 이상 간접경험할 필요 없이 세상 속에 뛰어들 수 있었다. 어른들의 대화, 정치, 사랑, 술, 책임, 여러 가지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이 쏟아졌다. 대학생활은 매일매일이 바쁘고 뭔가로 가득 차 책 같은 걸 읽을 틈이 없었다.
해외에도 가고, 수백 명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다양한 학문을 접하고,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면서 20대를 보내고 나니 내가 책으로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한 게 얼마나 책상머리 샌님 같은 생각이었구나 깨닫게 되었다. 감정은 글로 읽으면 알 수 있는 게 아녔고, 논리적으로만 설명하는 것들은 현실세계와 너무 동떨어진 것들이었다.
날 것, 날 감정, 진흙탕과 주정꾼들, 애원과 내침, 막막한 두려움과 끔찍한 패배감, 열등감, 당장 해결해야 할 삶의 중대한 문제들.
사회와 세상 속을 헤맸지만, 논리 정연한 책들과 달리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답이 없었고 헤맨다고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 깊어지는 느낌은 없었다.
20대는 그렇게 병렬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진 시기였다. 그리고 사람들이랑 함께한다 해서 사회성이 더 길러진 것은 아녔다. 여전히 치고 박히면서 되는 만큼 살아냈다.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처럼 마구 달리기도 했지만 욕도 많이 먹었다. 아마 이 시기의 나를 지금 내가 만난다면 별로 친구로 지내고 싶지 않을 수도.
30대에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전공서적과 논문을 읽었다. 이는 즐거운 과정만은 아녀서, 목적이 있는 읽음 행위라서, 추가적인 독서가 전혀 하고 싶지 않았다. 일을 더 하는 느낌이라.
그래서 공부도 인간관계도 모두 정리가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틈이 생긴 것 같다.
틈이 생긴 사이로 어릴 적 내가 그랬듯, 아 책 실컷 읽고 싶다- 하는 마음이 올라온 것이다.
요즘도 어릴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회성이 떨어지고, 새로운 사람 만나고 친해지는 것이 두렵고 어렵다.
지식으로 열등감을 감추려는 관성도 여전하고,
이야기 속 세계가 현실보다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도 살짝 남아있다.
요즘 특히 일 외에 누군가와 대화하고 나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일이 없다는 걸 깨닫고, 혼자 있는 시간의 정적을 책 속 인물들, 작가들과 나누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내 모습이 어릴 적과 똑같아서
새롭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살짝 쓸쓸하기도 했다.
이젠 그래도 행동할 힘을 내볼 때가 되지 않았겠니?
세상으로 나아가되
나의 중심을 잡으며 가길.
*추신: 필자의 초등학생 시절엔 스마트폰, 인터넷 되는 컴퓨터가 가정집에 보급되기 전이었음. 요즘 애들은 책 안읽는데- 하고 생각하지 마시길. 요즘 애들 중에서도 사람보다 기기가 더 편한 애들이 내 시대에 태어났으면 비슷했을 수도.. 요지는 사람 대 사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