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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텍사스 부뚜막 Sep 26. 2023

돈 쓰는 놈에게 떡볶이란


무인도에 갇혀 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고살아야 한다면

'넌 어떤 음식을 갖고 갈꺼야?"

내가 가끔씩 친구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곤 매번 갈등한다.

'떡볶이냐 김치냐...'



기억


가족 중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지만 엄마표 떡볶이에는 소고기, 당근, 버섯, 양파, 파, 달걀이 가득 들어 있었다. 다홍치마에 색동저고리를 입고 슬리퍼를 끌고 참가한 운동회 계주 선수를 본 것 같았다.

그런데 어라? 그 차림으로 달리기 솜씨가 기가 막혔다

하지만 조금 촌스러운 체육복 차림이었으면 훨씬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msg와 먼지가 살짝 추가된, 떡과 어묵이면 되는 단순한 떢볶이가 먹고 싶었는데 엄마는 간식에서 조차 영양 균형을 생각하셨나 보다.

엄마의 그런 깊은 사랑을 알지도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눈에 들어왔던 어린 시절의 나는 우리 엄마가 학교 앞 떡볶이 아줌마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철부지 상상을 줄곧 했다




너의 죄는 무엇이냐


남편은 떡볶이를 싫어했다. 떡볶이 하면 떠오르는 밖으로 오픈된 네모난 철판에서 온갖 먼지와 뒤섞이는 것이 불편했단다.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학원강사라는 직업 특성상 쉬는 시간 없이 학생들만 바뀌는 저녁타임 수업이 끝나면 학원 앞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사서 퇴근하는 것이 작은 행복이었다. 어쩌다 남편이 먼저 퇴근해 있는 날이면 검은 비닐봉지에 든 떡볶이는 냉장고 속, 엄마가 가득 채워 놓은 반찬그릇들 뒤편으로 숨겨 놓곤 했다.  남편은 늘 퇴근이 늦었기 때문에 하루를 마치며 혼자 느긋하게 먹는 떡볶이는 꿀맛이자 힐링이었다.

금요일 밤에는 다음날 먹을 떡볶이까지 사 들고 와서 냉장고를 열면 보이지 않을 구석자리에 꽁꽁 숨겨놓고 먹을 만큼 떡볶이를 사랑했다.

왜 당당하게 넣어 두지 못했을까?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신혼이었으니 떡볶이 보다 남편을 더 사랑했다고 해 두자.


조금...

솔직히 좀 강해 보이는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의외로 나는 남편의 말을 참 잘 듣는 아내로 지금껏 살고 있다.





일타강사보다 더 잘 나가는 강남역 떡볶이아줌마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나오면 학원 앞에 항상 떡볶이 아줌마가 계셨다. 30대의 중국교포 아줌마였는데 매일 만나다 보니 개인사까지 대화를 나눌 정도로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날은 또각또각 걸어오는 나를 보자 기다렸다는 듯 종이컵에 어묵 국물을 건네며 새벽부터 나와 밤늦게까지 고생이 많다는 위로의 말을 서두로 아줌마의 긴 하소연 시작되었다. 적재적소에 던지는 나의 리액션과 감탄사로 인해 우리 둘은 연대감을 쌓을 수 있었고, 강남역 떡볶이 아줌마의 한 달 매출액까지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순간 나는 뜨끈한 어묵 국물을 한 번에 꿀컥하고 삼켜버렸다. 강남역에서 잘 나가는 강사의 월급의 몇 배를 버는, 더더 잘 나가는 강남역 떡볶이 아줌마! 그렇게 돈을 잘 버는 줄 알았다면 분식집 사장님이 되고 싶었던 어렸을 적 꿈을 그대로 키웠어야 했나 보다.

"돈 잘 벌면 뭐 해.. 뜯어 가는 놈 따로, 쓰는 놈은 따로 있는데.."

자신은 매일 길거리에서 추우나 더우나 떡볶이, 순대, 튀김을 만들어 파느라 쉬는 날도 없는데, 보호비 명목으로 수시로 나타나 손 내미는 깍두기 아저씨들이 있다는 것과 남편은 장사 전에 재료만 던져주곤 얼굴도 볼 수 없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항상 그랬듯이 수업 후 아줌마에게 인사를 하며 떡볶이 1인분 그리고 서비스로 주는 김말이 2개를 검정 비닐봉지에 받아 들고 있는데 말로만 듣던 '돈 쓰는 놈'이 나타났다. 시골 조폭을 연상케 하는 의상을 걸치고 검은색 그랜저에서 상자 하나를 내리며 왜 재료를 미리미리 안 챙겨 왔냐며 짜증 가득한 말투로 투덜대고 있었다.

엄마 심부름 때문에 데이트 시간에 늦어 화가 잔뜩 나 있는 아들 같은 모습은 그동안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고 상상으로만 그리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졌지만 왠지 옷 따로 사람 따로 차 따로 모든 것이 분리되어 떠다니는 것 같았다.

'검정 봉지에 담긴 김말이를 오늘은 받지 말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드디어 떡볶이를 같이 먹을 친구가 생겼다. 다빈이는 날 닮아 떡볶이를 무척 좋아한다.

미국아이들 사이에서 K-Pop, K-Drama가 인기를 끌면서 그 관심이 자연스럽게 K-Food로 이어져 고추장, 김밥, 불고기를 처음 접한 아이들도 한식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다빈이 친구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한식은 갈비, 그다음이 떡볶이다. 머지않아 기내식으로 비빔밥이 아닌 떡볶이와 김밥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했던가? 다빈이 절친 케일리는 한식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미국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떡볶이의 착한 맛에 푹 빠져있다.  내가 해준 떡볶이 국물에 흰밥을 비벼먹기도 하고, 만두와 떡볶이를 함께 해주면 만두를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는 꼬마 한식 마니아가 나타났다.



다빈이와 나는 떡볶이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왜 오늘 떢볶이는 어제보다 더 맛있는 거야?"

전날 떡볶이를 만들며 국물을 넉넉히 준비해 덜어 두었다가 다음날 그 국물로 떡볶이를 만드는데 미묘한 맛의 차이를 알아 차린 것이다.

"양념이 더 잘 배었으니까"

"백종원 아저씨는 왜 유명해?"

"요리를 잘한대"

"떡볶이도 엄마보다 잘해?"

"아니 엄마가 더 잘해"

"먹어봤어?"

"........"


증명되지 않은 근자감은 당혹감을 가져온다

인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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