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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년 된 서점이 있는 도시, 런던

한국도 책이 더 가까운 나라가 되면 좋겠다

by 자몽


"런던에서 가장 기억나는 곳은 어디야?" 8살 딸에게 물었다.

"에펠타워!" 딸이 자신 있게 대답한다.


그래, 나도 에펠탑 생각 많이 나더라.

응? 뭔가 이상한데. 뭐지.... 이 찝찝한 기분은.

아... 에펠탑은 파리에 있지.


신기한 일이다. 분명 여행 갔을 당시는 런던이 더 좋았다. 런던은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파리는 아니었다. 근데 다녀와서 기억에 남는 랜드마크는 죄다 파리다.

에펠탑,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유 궁전... 다 파리잖아.


그럼에도 여전히 런던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런던 거리에 꽃이 많아서일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거리의 건물 때문일까, 길에서 자주 눈에 띄던 빨간색 버스와 공중전화 부스 때문일까. 다녀온 뒤로도 종종 생각했다. 어떤 부분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최근 내가 찾은 그 답은 바로 런던의 '서점'이다.
정확히 말하면 서점이 도시와 자연스럽게 섞여 있던 모습 때문이다.



길에서 만난 서점들



텍사스로 옮긴 이후 서점이 참 고프다. 우리 동네에는 '반스 앤 노블스'도 없고, 책을 반값에 파는 'Half price books'도 없다. 쇼핑몰에 서점이 한 곳 있지만, 캘리 동네에 있던 '반스 앤 노블스'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내가 다니던 '반스 앤 노블스'에는 아이들의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도 있고, 편하게 아이들이 책을 읽는 곳도 있었다. 장난감도 갖추고 있었고, 기차 테이블에서 기차를 가지고 놀 수도 있었다. 그 공간은 아이에게 책이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지금 동네의 서점은 그냥 책을 파는 곳이다. 장난감도 물론 있지만, 모든 것이 팔기 위해 진열된 느낌이다.


서점만이 아니다. 도서관도 많이 아쉽다.
미국은 도서관이 좋다고들 하지만 여기는 많이 미흡하다. 캘리 동네에 있던 도서관은 마을의 중심이었다. 다운타운에 위치한 그곳은,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온 동네 소식을 전하는 전단지가 붙어있었다. 프로그램도 연령별로 다양했고, 책도 상당히 많았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에는 마음껏 떠들어도 된다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구비된 장난감을 가지고 자유롭게 놀았다. 도서관은 놀이터나 마찬가지였다.
이 서점에는 국가별 책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한국 책은 세로로 두 칸을 차지하고 있었고, 한 칸에는 대략 7개의 선반으로 되어 있었다. 다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정갈하게 라벨링 해서 폴더로 관리가 된 그곳에서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책 고르는 재미를 느꼈다.


텍사스로 옮겼을 때, 도서관 사이즈를 보고 많이 놀랐다. 책이 없어도 너무 없다. 다른 도서관들과 연계되어 더 많은 책을 빌릴 수 있긴 했지만, 눈으로 보고 고르는 즐거움을 주기 미흡하다. 한국 사람은 더 많이 사는 것 같은데, 한국 책도 당연히 없다. 주변에 세 군데 도서관을 가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어린이책 공간에 장난감도 있긴 한데, 그렇게 따뜻한 느낌은 아니다.


그래서 늘 책이 좀 고팠다. 따뜻한 서점의 분위기가, 그리웠다.


영국의 출판 산업이 궁금해진다.



런던은 내가 고팠던 부분을 채워주었다.


런던에서는 대체로 화려한 간판을 보지 못했다. 스타벅스, 맥도널드조차도 '나 여기 있다'라고 온몸으로 광고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늘 거기 있던 것처럼 건물과 조화롭게 서있었다. 아주 은은하게.


런던을 여행하는 동안 서점을 참 자주 만났는데, 서점도 마찬가지였다. 지나가다 책이 보여서 눈길을 주면, 그게 서점이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사이즈에는 따뜻한 조명이 비쳤고, 책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책을 구경하는 사람, 읽고 있는 사람, 무언가를 찾는 사람. 엄마랑 아이가 함께 책을 보는 장면까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런던이 좋았다.

책이 가까운 도시라서,

서점이 도시에 스며들어 있는 모습에,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런던에는 몇 개의 서점이 있을까? 문득 궁금해 챗GPT에게 물어봤다.

이 똑똑한 친구도 다 아는 건 아니었나 보다. 모른단다. 대신 재밌는 서점 하나를 알려주었다.
바로 해처즈(Hatchards)라는 곳으로 1797년에 설립된 곳이다. 멋지다. 228년이 지난 지금까지 운영이 된다는 사실이.

[참고] 해처즈 서점은 피카딜리(Piccadilly) 187번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와 그린 파크(Green Park)로, 두 역에서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 서점은 영국 왕실에 도서를 납품하는 공식 서점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런던에 있는 228년 된 서점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된 서점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바로 포르투갈 리스본에 위치한 베르트랑 서점(Livraria Bertrand)이다. 무려 1732년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남편이 은퇴하면 포르투갈에 가서 살아보자고 한 적이 있는데, 여기도 한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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