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런던은 공항에서도 꽃을 팔더군요

심지어 너무 이쁘네

by 자몽



한국에 살다 미국에 와서 인상 깊었던 건, 마트 입구마다 꽂혀있던 꽃들이었다.
미국에서 꽃은 어느 마트에 가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 다발로 묶인 것도 있고, 화분으로 팔기도 한다. 특히 '트레이더조'라는 마트는 싱싱한 꽃을 꽤 저렴하게 팔기로 유명한데, 마트 입구에 있는 꽃 코너는 '오늘은' 어떤 꽃을 데려갈까 고민하는 여자들로 꽤 붐빈다.

한국에서는 '돈 아깝게 다 시들어버릴 꽃을 뭐 하러 사와. 차라리 돈으로 주지."라는 말로 검소하게 살았던 부모님 세대를 표현했지만, 미국은 아니었다. 꽃은 특별한 날에나 주는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걸 미국에 와서 배웠다.

그래서 나도 종종 나를 위해 꽃을 산다. 수십 가지 꽃들 사이에서 고민에 빠질 때부터 행복이란 녀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결정장애를 가진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곤 하는데, 사실 나는 안다. 어떤 녀석을 데려가도 나는 행복할 거라는 걸.
집에 와서는 잘 어울리는 화병을 고른다. 요리조리 이쁘게 모양을 잡아, 주방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둔다. 내 공간에, 내 눈에 가장 많이 띌 곳에. 시들어버리기 전까지, 꽃은 나에게 행복을 준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래도 미국 공항에서 꽃 파는 걸 본 적은 없던 것 같다.

있어도 내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겠지.




런던 공항에 내려 짐을 찾고, 출구로 나왔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부터 줄곧 깔끔한 인상이었다. 내린 날은 런던 날짜로 24일이었는데, 공항은 한산한 편이었다.
우버를 불러 숙소까지 가면 45분. 세 아이 중 누군가는 차에 탄 후 "목말라!"를 외칠 게 뻔하기에, 공항을 빠져나가기 전 마실 것을 먼저 사기로 했다. 편의점은 바로 옆에 있었다.


거기에 꽃이 있었다.

마치 미국 마트처럼 편의점 입구에 꽃이 가득 놓여있었다.


스크린샷 2025-01-01 오후 3.03.06.png
스크린샷 2025-01-01 오후 3.02.56.png


'열렸다 닫히길 반복하는 네모난 문 앞에서 한 남자는 꽃을 한 다발 들고 긴장한 듯 서있다. 그때, 한 여자가 걸어 나온다. 남자의 입에는 그제야 환한 웃음이 걸린다. 남자의 손에 있던 꽃은 여자에게로 옮겨간다. 그녀도 웃는다.'


뭐, 이런 스토리에 쓰이는 건가?


런던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이 꽃들을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공항에서 꽃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두 명 마주쳤다. 한 사람은 무표정하고 느릿하게 걷는 여자였고, 한 사람은 짐가방을 끌고 바쁘게 걷는 아저씨였다. 아저씨 표정만 보자면 집에서 기다리는 와이프에게 주려는 목적으로 보였다.

그쪽도 꽤 로맨틱하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스크린샷 2025-01-01 오후 3.03.14.png
스크린샷 2025-01-01 오후 3.02.47.png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님과 살던 아파트 베란다에는 대략 70개의 화분이 있었다. 아래에는 작은 연못을 만들어 물고기를 풀어놨고, 천장까지 닿던 벤자민 나무에는 새장이 걸려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새를 새로 사 왔다. 엄마가 그 새를 새장 안에 집어넣으려던 그때, 새가 탈출했다. 넓지 않은 베란다였지만 나무가 빼곡한 그곳에서 작정하고 도망친 녀석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엄마는 갑자기 새장 안에 있던 새마저 모두 풀어놔 버렸다.

넓은 집을 갖게 된 새들은 매일 아침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다녔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마치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듯이. 하얀색 화분 받침 한 곳은 새들의 목욕탕으로 쓰였다. 고작 2센티 정도의 높이였지만 물이 채워진 그곳에 들어가 푸드덕 거리며 한참을 놀곤 했다. 새들은 기어이 둥지도 직접 짓기 시작했다. 알도 낳고, 부화까지 시켰다.


우리 집 베란다는 새로운 세계였다.

거기엔 늘 초록이 있었다.

하지만 그 초록은 그 시절 나에게는 그저 배경 같은 거였다. 늘 그곳에 있는.


스무 살 무렵의 나는 꽃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꽃 선물이 최고로 아까웠고,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지 않았다. 관심이 없었으니, 어디를 가도 꽃은 내 시선을 끌지 못했다.


25년 전의 런던 공항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똑같이 꽃을 팔고 있었더라도 나는 몰랐을 거다. 하지만 40대의 내 눈은 꽃부터 발견했다. 공항에서부터 꽃을 파는 도시라니! 첫인상이 좋았다. 묘한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리시 시작했다. 앞으로 마주칠 꽃들을 기대하면서.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5년 만에 다시 찾은 런던과 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