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너무 이쁘네
한국에 살다 미국에 와서 인상 깊었던 건, 마트 입구마다 꽂혀있던 꽃들이었다.
미국에서 꽃은 어느 마트에 가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 다발로 묶인 것도 있고, 화분으로 팔기도 한다. 특히 '트레이더조'라는 마트는 싱싱한 꽃을 꽤 저렴하게 팔기로 유명한데, 마트 입구에 있는 꽃 코너는 '오늘은' 어떤 꽃을 데려갈까 고민하는 여자들로 꽤 붐빈다.
한국에서는 '돈 아깝게 다 시들어버릴 꽃을 뭐 하러 사와. 차라리 돈으로 주지."라는 말로 검소하게 살았던 부모님 세대를 표현했지만, 미국은 아니었다. 꽃은 특별한 날에나 주는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걸 미국에 와서 배웠다.
그래서 나도 종종 나를 위해 꽃을 산다. 수십 가지 꽃들 사이에서 고민에 빠질 때부터 행복이란 녀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결정장애를 가진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곤 하는데, 사실 나는 안다. 어떤 녀석을 데려가도 나는 행복할 거라는 걸.
집에 와서는 잘 어울리는 화병을 고른다. 요리조리 이쁘게 모양을 잡아, 주방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둔다. 내 공간에, 내 눈에 가장 많이 띌 곳에. 시들어버리기 전까지, 꽃은 나에게 행복을 준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래도 미국 공항에서 꽃 파는 걸 본 적은 없던 것 같다.
있어도 내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겠지.
런던 공항에 내려 짐을 찾고, 출구로 나왔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부터 줄곧 깔끔한 인상이었다. 내린 날은 런던 날짜로 24일이었는데, 공항은 한산한 편이었다.
우버를 불러 숙소까지 가면 45분. 세 아이 중 누군가는 차에 탄 후 "목말라!"를 외칠 게 뻔하기에, 공항을 빠져나가기 전 마실 것을 먼저 사기로 했다. 편의점은 바로 옆에 있었다.
거기에 꽃이 있었다.
마치 미국 마트처럼 편의점 입구에 꽃이 가득 놓여있었다.
'열렸다 닫히길 반복하는 네모난 문 앞에서 한 남자는 꽃을 한 다발 들고 긴장한 듯 서있다. 그때, 한 여자가 걸어 나온다. 남자의 입에는 그제야 환한 웃음이 걸린다. 남자의 손에 있던 꽃은 여자에게로 옮겨간다. 그녀도 웃는다.'
뭐, 이런 스토리에 쓰이는 건가?
런던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이 꽃들을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공항에서 꽃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두 명 마주쳤다. 한 사람은 무표정하고 느릿하게 걷는 여자였고, 한 사람은 짐가방을 끌고 바쁘게 걷는 아저씨였다. 아저씨 표정만 보자면 집에서 기다리는 와이프에게 주려는 목적으로 보였다.
그쪽도 꽤 로맨틱하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님과 살던 아파트 베란다에는 대략 70개의 화분이 있었다. 아래에는 작은 연못을 만들어 물고기를 풀어놨고, 천장까지 닿던 벤자민 나무에는 새장이 걸려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새를 새로 사 왔다. 엄마가 그 새를 새장 안에 집어넣으려던 그때, 새가 탈출했다. 넓지 않은 베란다였지만 나무가 빼곡한 그곳에서 작정하고 도망친 녀석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엄마는 갑자기 새장 안에 있던 새마저 모두 풀어놔 버렸다.
넓은 집을 갖게 된 새들은 매일 아침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다녔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마치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듯이. 하얀색 화분 받침 한 곳은 새들의 목욕탕으로 쓰였다. 고작 2센티 정도의 높이였지만 물이 채워진 그곳에 들어가 푸드덕 거리며 한참을 놀곤 했다. 새들은 기어이 둥지도 직접 짓기 시작했다. 알도 낳고, 부화까지 시켰다.
우리 집 베란다는 새로운 세계였다.
거기엔 늘 초록이 있었다.
하지만 그 초록은 그 시절 나에게는 그저 배경 같은 거였다. 늘 그곳에 있는.
스무 살 무렵의 나는 꽃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꽃 선물이 최고로 아까웠고,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지 않았다. 관심이 없었으니, 어디를 가도 꽃은 내 시선을 끌지 못했다.
25년 전의 런던 공항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똑같이 꽃을 팔고 있었더라도 나는 몰랐을 거다. 하지만 40대의 내 눈은 꽃부터 발견했다. 공항에서부터 꽃을 파는 도시라니! 첫인상이 좋았다. 묘한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리시 시작했다. 앞으로 마주칠 꽃들을 기대하면서.
(다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