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네
전에 <해독혁명>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책에는 왜 해독이 필요한지, 어떤 것들이 해독에 좋은지(십자화과 채소가 가장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쉽게 먹는 방법으로 해독 스무디를 소개한다.
그래, 해독이 정말 중요하지. 다른 것보다 그것부터 하는 게 맞지... 까지 생각은 했다. 내 몸이 갖고 있는 다양한 문제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 잠시 희망이 부풀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 생각은 기억 저장소 어딘가로 욱여넣고, 의지는 공중으로 날려 보낸 채 나는 까맣게 잊었다.
지난번에 잰 몸무게에 충격을 받은 후, 나는 뭐라도 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 저장소에 들어있던 이 책이 생각난 건 그때였다.
책을 다시 뒤지기가 조금 귀찮아 유튜브를 뒤졌다. 검색어는 해독 스무디. 해독혁명의 저자가 '연두 스무디'를 설명하는 영상이 떴다. 아, 맞다. 연두 스무디라는 게 있었지.
기본 재료는 브로콜리, 양배추, 아보카도, 레몬.
세상에! 집에 다 있는 재료였다.
하라는 대로 브로콜리와 양배추는 5분 정도 쪄내고, 아보카도는 껍질을 벗기고, 레몬과 단맛을 위한 사과를 씻었다. 남편이 사둔 두유기에 준비한 재료들과 적당량의 물, 꿀을 한꺼번에 넣고 대충 스무디 모양을 골라 시작 버튼을 눌렀다. 시간은 10분.
에엥. 근데 모양새가 이상하다. 아래만 부드럽게 갈리고, 위에는 생으로 남아있는 기이한 형태가 되었다. 양배추 잎이 그대로 보인다. 젓가락으로 위에 있는 것들을 쑤셔 넣고 다시 10분. 이번에는 되겠지.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대로다!
이번에는 아몬드 모양이 있는 버튼을 선택한다. 딱딱한 재료를 만들 때 쓰는 버튼이다. 딱딱한 재료는 없지만, 이 기계가 느끼기에 양배추는 딱딱한 편일 수도 있다. 이번엔 20분. 지이잉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리더니, 드디어 걸쭉한 스무디가 완성되었다. 뿌듯하다.
하지만 손이 가지 않는다. 냄새를 맡으니 별로.....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맛도 보기 싫다. 아무래도 나의 건강하지 못한 몸을 지배하는 뇌가 본능적으로 건강한 것을 멀리하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이 사둔 세 개의 유리병에 나눠 담았다. 냉장고에 고이 모셔둔다. 그래 차가워지면 먹어야지!
다음날이 되었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유리 용기가 신경 쓰였다. 먹지 않고 뭐 해? 비웃는 것만 같았다. 나중엔 꼴 보기도 싫어졌다. 하지만 먹어야 한다. 이상한 녀석이 아닐 수도 있다. 이상해도 어쩌겠는가. 이걸 뛰어넘어야 한다. 먹자. 그래, 먹어보자.
용기 내서 한 통을 열어본다. 차가운데도 양배추와 브로콜이 향이 누그러지지 않았다. 평소에 좋아하는 야채들인데 갈아놓으니 어째 역하다. 심호흡을 한다. 꿀꺽.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먹고 싶은 맛도 아니다. 지나가는 아들에게 한 입 주니 인상 쓰며, 나에게 슬며시 밀어 넣는다. "좋은 거니까 엄마 다 먹어." 한마디를 남기고 떠나간다. 그나마 세 아이 중에서는 먹을만한 녀석이었는데. 남편은 출장 중이고, 내가 먹는 수밖에.
겨우 반 통을 입에 털어 넣고, 다시 닫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며칠에 걸려서야 세 통을 먹었다. 마지막엔 약간 맛이 변한 느낌이 들었다. 더 역해졌다. 아무리 비싼 재료라도 조금만 이상해도 먹지 않는 내가, 그걸 참고 그냥 먹었다. 해독 때문인지, 진짜로 상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며칠간 화장실에 갈 때마다 폭풍 같은 便(변)을 마주했다. 연두 스무디는 아직 나에게 무리구나, 인정했다.
그래서 다음엔 다른 스무디를 만들기로 한다. 조금 더 단 맛이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