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토너먼트장에서의 생각 10
사람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살까?
토너먼트장에 앉아 노트를 펴고 메모를 시작했다.
하루 동안 스쳐간 무수한 생각 중 23개가 노트에 담겼다.
잊힐 수밖에 없는 '생각'들을 메모로, 다시 글로, 붙잡아 두기로 했다.
셔틀콕에 몇 개의 깃털이 들어있는지 아시는지?
자그마치 16개다. 거위가 생존을 위해 달고 있던 소중한 털 16개가 한 개의 셔틀콕에 쓰인다. 똑같은 크기로 다듬어지고, 일정한 크기로 작은 코르크에 꽂힌다. 다 만들어진 셔틀콕은 까다로운 심사를 거친다. 예민한 녀석이기에 조금이라도 비뚤어지면 똑바로 날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셔틀콕은 12개씩 묶여 긴 튜브에 담긴다. 예전에는 중간급 셔틀콕 15 튜브를 400불 언저리로 산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더 올랐다. 중국에서 거위 생산이 줄었다나. 그래서 지금은 한 개의 튜브가 비싼 건 60불, 싼 건 28불 정도다. 즉, 1개에 5불에서 2.3불 정도라는 이야기다.
보통 연습할 때 큰 컨테이너에 셔틀콕을 가득 채우고 시작한다. 컨테이너에 15 튜브를 사서 넣었을 때 반도 차지 않았으니 40 튜브는 사야 컨테이너 한 통이 채워질 거다. 중간급 35불짜리로 채운다고 치면 1,400불(195만 원)이 든다.
다시 말하지만 셔틀콕은 예민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깃털 하나가 금방 구부러지거나 찢어지기 일쑤다. 셔틀콕이 워낙 비싸기에 연습할 때는 어지간히 망가지기 전까지 오래 쓰는 편이다. 깃털이 반쯤 남기 전까지는 치고 또 친다. 아이들은 개중에 좀 나은 것을 열심히 고르거나, 개인 셔틀콕을 쓴다. (레슨비가 싸지도 않은데 이런 부분이 아쉽다)
하지만 토너먼트는 다르다. 셔틀콕만큼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도 극도로 예민하다. 아주 조금이라도 망가진 셔틀콕은 경기장에서 아웃된다.
경기를 시작하기 전, 심판이 3개의 셔틀콕과 점수 체크하는 종이를 가지고 코트로 출발한다. 그 뒤를 두 명의 혹은 네 명의 선수가 따라 걷는다. 코트 한쪽에 멈춘 심판은 발아래에 여분의 셔틀콕 2개를 놓아둔다. (물론 더 많을 때도 있다) 중간에 망가지는 일이 생기면 선수는 상대에게 먼저 셔틀콕을 보여준다. 상대도 망가진 데 동의하면 심판에게 보여준다. 심판은 옆에 있는 작은 통에 망가진 셔틀콕을 던져 넣고, 새 셔틀콕을 건네준다. 작은 통에는 셔틀콕이 쌓여있다. 얼핏 봐서는 그냥 새 거인.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망가진.
하얀색 셔틀콕이 네트를 사이에 두고 분주하게 오간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멀리, 때로는 바로 앞으로. 때로는 끊임없이, 때로는 단 한 번에. 이 손과 저 손을, 이쪽 라켓과 저쪽 라켓을 오간다.
네트 너머 상대가 한 손으로 셔틀콕을 잡는다. 다른 한 손에 들려있던 라켓을 휘두르자, 순식간에 이 쪽으로 넘어온다. 다시 시작이다. 이번엔 길다. 누가 먼저 실수를 할까? 긴 랠리의 뒤에 얻은 한 점은 더 소중한 법이다. 순간 하얀색 점이 빠르게 이쪽으로 넘어와 내 바로 앞 라인 '밖'에 꽂힌다. 분명히 라인 밖이었다. 내 눈이 가장 가까웠으니 나는 확신한다. 1cm는 더 벗어나 있었다.
이보다 확신할 수는 없을 만큼 아웃이다.
분명한 아웃.
하지만 하얀 점이 바닥 어딘가에 꽂히는 순간을 잡아낸 눈은 한 둘이 아니었다. 저 쪽에 남자 셋이 동시에 '인!' 소리를 친다. 얼굴을 보니 진심으로 확신하는 표정이다. 옆에 있던 누군가는 또 말한다. "One Hundred Percent In"이라고.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도 확신하고, 상대도 확신하는 일이.
하지만, 내가 맞을 수도, 그들이 맞을 수도 있다. 내가 틀릴 수도, 그들이 틀릴 수도 있다.
살면서 내가 100% 확신했던 일이 참 많았다.
특히 남편과 살며 그랬다. 내 기억이 100% 맞다고, 내 말이 100% 맞다고. 그러니 너는 틀렸다고. 너의 기억에 오류가 난 거라고. 하지만 정말 내가 맞았던 걸까? 내가 확신했던 만큼 그도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때로는 내가 맞았을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확신 중에 틀린 것도 분명 꽤 많았을 거다.
이 작은 셔틀콕을 동시에 보면서도 우리는 다른 확신을 갖는다.
내가 다 맞다는 확신은 때로는 위험하다. 시멘트로 벽을 세우고, 네가 무얼 말하든 듣지 않겠다는 고집일 뿐이다. 사람은 AI도, 기계도 아니다. 내 말만 맞다고 우겨대기 전에, '내가 틀릴 수도 있다'라고 한 구석 가능성을 열어두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