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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 Nov 09. 2024

집이 134평이라 관리비가 좀 듭니다

정말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지요


텍사스에 와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여긴 땅이 참 넓다. 특히 휴스턴은 언덕 하나 없는 밋밋한 땅이라 고가만 올라가도 '지구가 둥글다'는 걸 실감할 수밖에 없다. 지구의 곡선이 눈으로 보이는 그곳에 서면 심지어 어지럽기까지 하다. 만약 여기저기 번개 치는 날 고가에 올라가면 아마도 꽤나 장관이지 싶다.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일 테니.


처음 휴스턴에 이사 왔던 2021년만 하더라도, 48km 떨어진 배드민턴장까지 가는 길에는 빈 땅이 대부분이었다. 잔디와 나무가 적당히 섞여있던 그 빈 땅에 간판 하나가 세워졌다. '여기도' 새로 마을이 들어서겠구나 싶었다. 어느 날, 타겟이라는 큰 마트가 하이웨이 옆에 지어졌다. 별다른 길도 없어 그 매장을 가려면 하이웨이에서 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 후에는 작은 도로가 만들어졌다. 꽤나 길었던 그 길은 여러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길마다 가로등이 세워진 길 끝에 집들이 지어졌다. 큰 동네가 새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1년 여가 지난 지금은 타겟과 마을 사이에 여러 상점이 들어섰다. 여기선 이렇게 새로운 마을 탄생을 흔하게 본다. 빈 땅만 보이면 '여기도 뭔가가 들어서겠구나'라는 생각부터 든다.


서론이 길었는데, 요지는 크다는 거다. 텍사스 면적은 한국의 7배고, 우리 동네 쇼핑몰 주차장은 축구장 6개쯤 합한 크기다. 그래서 겨울이면 주차장 한쪽에 온갖 놀이기구와 스키장이 설치되기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다른 전시를 한다. 그래도 자리가 남아돈다.

동네 가구점도 아빠 말을 빌리자면 야구장만하고, 동네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주유구가 자그마치 120개다. 마트에서 'Texas'라는 이름을 붙여 파는 건 무조건 일반 제품보다 크다. 그러니 텍사스에서 '크다'는 건, 그 자체로 상징이 된다.



캘리포니아에 살던 집은
 

미국에서 처음 산 집은 샌프란시스코 인근이었다. 오른쪽으로 난 다리를 건너면 버클리가 있고, 그곳을 시작으로 이스트베이가 지역이 시작된다. 우린 그중 한 곳에 살았다.


방 4개짜리 단층집이었는데, 면적은 1,917sqft(54평)에 2017년 당시 가격이 1.15 밀리언(약 16억)이었다. 작은 마당에는 커다란 하얀색 분칠을 한 나무 한 그루가 길게 뻗어 있었는데, 거기에 긴 그네를 하나 달았다. 4년을 그 집에 살았다. 막내가 걷지도 못했던 때부터, 종알종알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때까지. 코로나와 맞물린 탓에 그 집에서는 유독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쌓았다. 여름 내내 아들 둘은 데크에 텐트를 치고 잤고, 작은 수영장을 설치해서 물놀이를 했으며, 마당 한편에는 야채도 가득 심었다.

2021년, 코로나가 채 지나기 전에 우리는 캘리포니아를 떠난다. 그 집은 1.65 밀리언(약 23억)에 팔았고, 2024년 현재 그 집의 시세는 1.85 밀리언(약 26억)이다.



돌아보니 집 크기는 추억 쌓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텍사스의 95평짜리 첫 집은

 

캘리포니아를 떠나 정착한 곳이 바로 이곳 휴스턴이다. 처음엔 달라스 집을 알아봤지만, 핫한 시기라 찜한 집들은 오퍼를 채 넣어보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사인을 해버렸다. 시간은 점점 가고, 마음이 급해졌다.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오고 싶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게 휴스턴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집을 보러 휴스턴까지 오기란 쉽지 않았기에, 리얼터가 줌으로 보여주는 모습만 보고 판단해야 했다. 학군도 좋고, 한국 사람도 많이 살고, 한국 마트도 가까웠던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마음에 들어오는 집이 나오자마자 오퍼를 넣었다. 이전 집보다 1.7배는 더 넓은 3,400sqft(95평) 대저택을 겨우 48만 불(6억 5천만 원)에 살 수 있었다.



이 집은 주방은 아담한 편이었지만 방 4개, 오피스, 수영장, 극장이 잘 갖춰져 있었다. 1층 바닥에 깔린 타일이 나무 모양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에어컨은 1,2층 따로 컨트롤할 수 있어서 마당 한쪽에는 커다란 실외가가 두 대 놓여있었다. 집 앞에 커뮤니티 수영장과 놀이터가 있어 아이들이 놀기에도 좋았다. 실제로 놀이터 덕분에 동네 친구들을 쉽게 사귈 수 있었다. 특히 막내는 다른 집들과 왕래가 잦았는데, 따로 약속을 잡지 않아도 벨 눌러 놀 친구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 생활의 질을 엄청나게 높여줬다.


3년이 지난 올여름, 갑자기 이사가 정해졌다. 잠깐 고민하다가 이 집을 팔기로 했다. 집은 3년 사이 2억 정도가 올라 61.5만 불(8억 5천만 원)에 새 주인을 찾아갔다.






134평짜리 현재 집은



사람 마음이 참 그렇다. 여기서 95평짜리 집은 아주 일반적이었고, 더 큰집은 너무나 많았다. 큰 집들을 보다 보니 눈이 자꾸 갈 수밖에.
그래서 우리는 큰 이유도 없이 다시 한번 이사를 한다. 사이즈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이 집은 위에 집보다 1,400sqft(40평) 정도가 커진 4,780sqft(134평)의 집이다. 1층엔 넓은 주방과 다이닝룸, 오피스, 안방, 게스트룸, 작은 바, 세탁실, 그리고 화장실 3개가 있다.
2층 가운데는 상당히 넓은 플레이룸이 있고, 방 사이에는 붙박이 책상도 설치되어 있다. 2층에 방은 3개인데, 아들 둘은 한 방에서 잠만 자기에 남는 방을 운동방으로 꾸몄다. 2층엔 총 2개의 화장실이 있는데 그중 한 곳은 변기와 욕조는 1개지만 세면대는 2개인 구조다.
마당엔 수영장뿐 아니라 스파와 그릴, 테이블, 불멍이 가능한 파이어핏이 놓여있다. 이 집은 7년 전 샀던 캘리포니아집과 동일하게 1.15 밀리언(약 16억)을 줬다.



2층 운동방과 1층 바
마당에는 농구장도 있다.



집 좋다. 이사를 와보니 넓은 건 생각보다 좋은 일이다. 이사 올 때는 '그 큰 집을 어떻게 청소하냐'며 나 대신 걱정해 준 분들이 많았는데, 사실 청소에 열을 올리는 편은 아니라 별 상관은 없다.
세면대도 나 혼자 차지할 수 있고, 샤워할 때 벌컥 문을 여는 아이도 더 이상은 없다. 카운터에 쌓여있던 지저분한 영양제는 서랍 하나에 깔끔하게 집어넣을 수 있었다. 스트레스의 주범이 되던 '막내가 1층으로 매일 데려다 놓던 수많은 장난감들'도 해결됐다. 플레이룸이 생겨서인지 자주 가지고 내려오지 않으니까.
처음 만들어본 운동방이 2층 아들방 바로 옆이라, 한참 몸만들기에 관심이 생긴 첫째가 샤워하기 전 운동도 한다.
게스트룸도 그렇다. 부모님이 오시면 막내 방을 내어드리고, 딸은 오빠들과 함께 자야 했다. 계단 오르내리기가 불편해 보여 안방을 내어드린 적도 있다. 이제는 1층에 게스트룸이 있으니 모든 게 해결이다.
게다가 뷰는 또 얼마나 좋은지! 앞이 뻥 뚫린 집에 살아보니 이제 '다른 집으로 앞이 꽉 막힌 집'에 다시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수영을 못하는 나에게 수영장은 무용지물이었는데, 이제 스파가 있어 나도 편하게 들어갈 수 있다.



플레이룸은 아이들이 원해서 아무것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이다. 
이번에 관리비 계산을 해보고 깜짝 놀랐다. 큰 집에서 좋은 것을 누리고 사는 비용은 생각보다 컸다. 매달 기본적으로 나가는 비용은 총 9가지다. (기타 세금이나 보험 등은 포함하지 않았다)


1. 인터넷 : $50
- 이건 동일하다.


2. 수도세 : 9월 $161 / 10월 $255 (평균 $208)

예전 집은 평균 50불 정도가 나왔는데 차이가 크다.

스프링클러가 한번 다 도는데 2시간이 걸린다. 요즘은 비가 내려서 껐다. 비가 내리면 그래서 반갑다.


3. 수영장 관리 : 매달 $270

지난주 연재글에서 말했듯이 매달 기본 관리비만 270불이 나간다. 여기에 이것저것 더 붙고 있는 상황이다.

예전 집은 우리가 관리했기에 매달 약품 값으로만 40불 정도만 썼다.


4. 가스 : 9월 $39 / 10월 $40

가스비는 여기나 거기나 얼마 나오지 않는다.


5. 가드닝 : 매달 $80

전에 집은 한 번에 35불씩, 2주에 한 번씩 왔지만 이 집은 마당이 더 커서 가격이 올랐다.


6. HOA(관리비) : 매달 $100

여기는 일 년에 한 번, $1,200불을 한 번에 낸다.

전에 집은 매달 $74을 냈다. 하지만 그보다 사이즈가 작은 에어비앤비 집은 더 비싸다. 시내에 있는 집은 매달 내는 관리비가 $500불이 넘고(수도가 포함이다), 호숫가에 있는 집은 $258불이다.


7. 전기비 : 9월 $639 / 10월 $441 (평균 $540)

전기비에서 가장 놀랐다. 600불이 넘게 나오다니!!!!

휴스턴은 전기 회사가 다양하다. 어느 회사를, 어느 시기에 계약했느냐에 따라서 집집마다 전기비가 다르다. 전에 집은 회사 실수로 직원가 비슷한 게 적용되어 평균 $120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가장 차이가 큰 부분이다.


8. Pest Control(벌레회사) : 매달 $33

3개월마다 한 번씩 와서 약을 쳐준다. 한 번에 100불 정도 한다. 중간에 문제가 있으면 아무 때나 부르면 되고. 같은 회사를 이어서 쓰는 중이다.


9. 보안 : 매달 $55

이 부분은 아직 정확히 확인을 해보지 못했다. 전에 집은 매달 $29불이 나갔는데, 새로 이사 온 집은 전 주인이 쓰던 업체를 이어서 쓰는 중이다. 대략 55불이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합쳐보니 총 $1,376불이다. 집에 대한 세금이나 보험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전집에서는 400불이 조금 넘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다. 역시나 뭔가를 누리려면, 포기해야 하는 게 있다.

사실 우리가 가장 많은 추억을 쌓은 집은 캘리포니아 집이다. 아이들이 어리기도 했고, 밖에서 놀기 좋은 날씨가 길었던 이유도 있다. (캘리포니아는 여름에도 일교차가 어느 정도 있으니까) 덩그러니 놓여있던 데크는, 때로는 전쟁터도 되고, 때로는 그림을 그리는 도화지가 되었다. 때로는 새로운 방으로 꾸며지기도 했으며, 때로는 춤추는 무대가 되기도 했다. 집 앞에선 돌멩이 무더기가 즐거운 놀이터가 되었고, 가을이면 떨어지는 낙엽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지금의 마당은 보기엔 더없이 훌륭하지만 사실 이미 완성된 무대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걸 만들어내기 어려워 보인다. (물론 크고, 더우니까 더 그렇고) 그런 점에서 집 크기는 추억을 쌓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실은 그런 게 조금 아쉽다.

그래도 어차피 이사는 했고, 여기가 지금 내 터전이다. 이 집에서 아이들과 또 다른 추억을 쌓고, 잘 즐기며 사는 게 지금은 가장 남는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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