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으면 내가 그랬겠냐고
몸무게가 48kg을 찍고, 내장지방이 2가 되었을 때는 정말 몰랐다. 다시 이렇게 살이 찔 줄은. 내장지방 7까지 갈 줄은 말이다.
남들이 흔히 겪는다는 요요, 그딴 거 나만은 비켜갈 거라 믿었다. 얼마나 확신에 찼던지 커져버린 옷들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차곡차곡 종이봉투에 담았다. 야무지게 담은 여러 봉투를 굿윌에 가져갔다. 굿윌 직원에게 건네주면서 마음이 충만하기까지 했다. '나는 네가 더 이상 필요가 없으니 좋은 주인 만나렴' 하면서.
아쉽다. 그때 안녕한 옷들이 이제는 너무나 아쉽다. 미니멀이니 뭐니 그냥 둘걸 그랬다.
<연재라도 하면 다이어트를 하려나> 연재가 벌써 7화다. 지난 6주간 몸무게는 2.1kg이 감량되었으고, 눈으로도 퉁퉁하게 부풀었던 살들이 조금은 줄어든 게 보이지만 내장지방은 6에 정체되어 있다. 운전석에 앉으면 여전히 배가 출렁여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내가 다시 2로 가보겠다는 것도 아니고, '겨우' 내장지방 3이 목표였는데 아마도 긴 여정이 될 것 같다. 이제와 생각하니 목표가 좀 많이 높았구나 싶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훨씬 건강하게 먹고 있고 야식도 끊었으니 일단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그간 잘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정신 놓지 말고 앞으로 더 잘하라고!
어쩌다가 몸무게가 다시 10kg이 쪘을까?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저 아줌마(나다)는 대체 왜, 어쩌다가 배안에 지방을 가득 채우게 된 걸까?'에 대해서. 2020년 5월, 59kg에서 다이어트를 시작해 48kg까지 수월하게 뺐던 40대 아줌마가 대체 왜 요요라는 것에 져버리고 만 것인지에 대해서. 건강하게 먹고, 술 끊고, 산에 다니고, 운동하며, 다이어트가 제일 쉽다고 기고만장하게 외치던 저 아줌마가 왜 이제는 젤 어려운 일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른바 오늘의 주제는 <내장지방 7의 변경> 되시겠다.
실제로 감량을 해보고, 여러 책을 통해서 내가 깨달은 건 단순하다. 건강한 습관이 몸에 베이면 된다는 것. 그전까지 움직이는 거 싫어하고, 튀긴 음식 좋아하고, 야식을 즐겨 먹던 내가 10kg을 쉽게 뺀 것도 습관 덕이었다.
10kg이 감량되는 동안 나는 샐러드가 맛있어서 먹었다. 술은 생각이 나지 않아서 마시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건강한걸 맛있게 먹을지 생각하니 튀긴 음식은 생각나지 않았다. 산에 가는 게 즐거워서 다녔다. 체중계 위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걸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자연스럽게 몸이 변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할 말이 많아져 그것도 좋았다. 노력한 게 아니다. 재미가 있어서 한 거다.
노력을 해야 한다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
만약 매일 물 대신 콜라를 마시던 사람이라면 콜라를 끊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오늘은 딱 한 캔만 마셔야지. 아, 목마른데 마실까? 참아, 참아야 해. 내 앞에서 콜라 마시지 마! 콜라.. 콜라.... 콜라는 그 사람을 종일 따라다닐 거다. 떠오르는 순간마다, 참아야 할 것이며, 그 모든 순간에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힘들다.
나는 콜라를 내 돈을 주고 사지 않는다. 햄버거집이나 피자집에 가면 콜라를 마시긴 하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그럴 때는 부담 없이 마신다. 죄책감도 없다. 나에게는 마트에 가서 콜라를 사는 습관이 없다. 사는 품목에 탄산음료가 들어간 적이 없다 보니 관심도 두지 않는다. 나에게는 평소 콜라를 사지 않는 것도, 마시지 않는 것도 쉬운 일이다.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 쉬웠던 다이어트를 멈춰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발바닥에 난 사마귀 하나가 시작이었다. 뿌리를 타고 다른 사마귀꽃이 피었다. 꽃은 다시 세 개로 늘어났다. 점점 걷기가 버거웠다. 발바닥이 땅에 닿을 때마다 통증이 순식간에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그럼에도 산에 다니곤 했는데, 한 시간 정도를 참고 걸으면 그 뒤에는 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하다) 그 한 시간을 참기가 어려워 점점 산을 가는 횟수가 줄었다. 사마귀 삼 형제는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으니까.
병원에 갔더니 치렁치렁 액세서리를 걸친 인도계 여자 의사가 질소만 한번 찍 뿌려주고 치료를 끝냈다. 집에서도 똑같은 거 사서 뿌렸고, 여러 번 해도 낫지 않았는데, 이걸로 끝이라고? 의사면 뭐 다른 것 좀 해보라고!
끝이었다. 희망을 품고 달려간 병원에서 건질 건 없었다. 처음 사마귀를 만난 지 4개월여 만에 나는 질소파티를 하고야 전쟁을 끝낸다. 그냥 수시로 뿌려버린 거다. 칙 뿌리면 차가워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질소 가스. 뿌리고 나면 하얀 자국이 남는 질소 가스. 하루에 한 번만 뿌리라는 그 가스를, 나는 막 뿌려버렸다. 어디 한 번 죽어봐라 하면서. (이렇게 하면 금방 사라집니다 여러분)
사마귀는 사라졌지만 더 이상 산에 가고 싶지가 않아 졌다. 이제는 새벽에 일어나 살금살금 빠져나가는 것도, 되도록 빨리 돌아오려고 이마에 등을 달고 오르는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3-4시간 쉬지 않고 걷고 달리는 동안 벅찼던 감정을 떠올려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귀찮았다. 좋은 습관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나는 어느새 샐러드대신 다른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원래 좋아했던 빵을, 면을, 튀김을. 그리고 그게 다시 맛있어졌다. 무려 6-7개월이었다. 그 정도면 습관이 완전히 잡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건강한 습관이 무너지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뒤에는 '이사'라는 이벤트가 있었다. 2021년 6월에 여행을 다녀오고, 7월에 이사가 결정되며 바빠졌다. 처음 계획은 렌트를 주고 캘리포니아를 떠나는 거였다. 포장이사를 하자며 견적도 받고, 계약도 끝냈는데 갑자기 집을 팔게 되면서 어그러졌다. 내가 짐을 싸야 했다. 작은 집에 책은 어찌나 많은지, 작은 박스 20여 개를 책으로 채웠다. 세 아이 짐들도 정리했다. 일부 가구도 차고로 옮기니 널찍한 공간의 반이 꽉 들어찼다. 모두 나 혼자 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거기까지만 했어야 했다.
텍사스에서 짐 푸는 게 뭐 그리 급하다고, 나는 짐이 도착한 지 이틀도 지나지 않아 모든 짐을 풀었다. 물건의 제자리도 찾아주었다. 그러자 허리에 무리가 생겼다. 산을 다니며 겨우 진정시킨 디스크에 다시 문제가 생겼다. 이제는 방사통이었다. 다행히 누울 때는 괜찮았다. 누워있을 때만 아프지 않았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면 정확히 3초 후 통증이 시작되었다. 허리 아팠던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마트에서 장 보는 일도 고통이었다. 허리가 나으려면 걸으라는데, 걸을 수가 없었다. 출산의 고통을 8이라고 하면, 이건 7에 맞먹는 수준이었다. 밥을 하다가도 수시로 누웠다. 통증이 잦아질 때까지.
그래서 나는 멈췄다. 발걸음을 멈추자, 뭐 좀 해보려는 의지도 사라졌다. 먹는 데에서 행복을 찾기 시작했다. 야식에 손을 댔다. 처음 휴스턴에 왔을 때만 해도 51kg 정도였는데, 3년 만에 58kg이 넘어버렸다. 내장지방은 7이 되었다. 이게 바로 내 내장지방 7의 이유이다.
참고로 올 1월, 다시 의지를 갖고 치료를 받았다. 주 3회 테라피를 받았지만 역시나 차도가 없었다. 의사는 수술을 권했다. "나 주사 한 번만 맞아보고 싶어" 나의 간청에 그는 통증과 의사를 소개해줬다. 주사를 두 번 맞고, 다음 날부터 다리 통증이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지금 아프지 않고 걷는 데에 감사하다.
지금 나의 연재는 앞서 말했듯, 노력하지 않기 위해 시작한 거다. 건강한 습관을 들이기 위해.
배고프면 짜증부터 나던 나였지만 요즘은 배고픔을 즐기고 있다. 잘하고 있군, 뭔가 지방이 타는 것 같은데? 하며.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하던 날은 고기 한 덩어리를 먹긴 했지만 그 외에는 밤에 뭔가를 먹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7개월간 잡혔던 습관이 무너졌던 경험을 했기에 긴장은 놓지 않으려고 한다. 누구는 습관을 만드는데 66일 걸린다고 하지만, 모든 일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건 아니다. 나에게도 어떤 건 두 달도 걸리지 않았지만, 다이어트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 긴 여정을 지켜봐 달라고요 :)
그리고 운동은 별로 못하고 있지만, 집 소파 옆에 stepper를 두고, 수시로 하는 중이다. 이거 자리도 안 차지하고 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