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좀 쉬겠다는 걸 길게 말해봅니다
하. 깜깜하니 운전하기가 더 싫다. 아이들을 배드민턴장에 데려다주고 돌아오기도, 2시간을 내리 기다리기도 싫은 그런 날이다. 피곤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가야지.
배드민턴장까지 가는 고속도로가 오늘따라 멀게 느껴진다. 왼쪽 눈이 파르르 떨린다. 며칠 전보다 점점 심해진다. 가뜩이나 눈도 흐리고 뿌연데 한쪽 눈을 잡고 운전하려니 쉽지 않다. 눈만이 아니다. 허리가 아파와 자세를 고쳐본다. 높은 데서 떨어지면 무게 때문에 머리부터 떨어진다더니, 오늘따라 머리도 무겁다. 많이 무겁다. 뒤로 기대 보지만 소용없다. 운전하기 싫다. 눕고만 싶다. 하... 작은 숨이 새어 나온다.
피곤과 함께하는 일상이라지만 요즘 내 몸은 평소 양상과는 다르다. 스트레스인가? 피곤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지, 스트레스를 받아서 피곤한 건지,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따로 노는 것도 아니겠지만.
사실 나는 상당한 집순이다. 기본적으로 가진 에너지 그릇이 작은 편인데, 그 에너지를 대부분 아이들 케어와 라이드에 쏟아붓고 나면 남는 에너지가 별로 없다.
나름 그래도 분산은 된다. 아침과 오후로. 아침은 5시 50분부터 8시 20분까지 도시락을 싸고, 아이들 아침을 준비해 주고, 차례로 내보내는 2시간 30분가량. 오후에는 첫째가 돌아오는 2시 45분부터 하루 일과가 끝나는 9시까지 6시간 15분가량. 총 9시간 근무하는 셈이다.
그래서 낮에 나는 잘 쉬어야 한다. 에너지를 비축해야 오후 일과를 무리 없이 소화한다. 내가 에너지를 아끼는 방법은 이렇다. 1) 일주일 식단 미리 짜기, 2) 일주일에 한 번만 장보기, 3) 볼일은 나간 김에 몰아서, 4) 학교 발론티어도 목요일에 몰아서, 5) 저녁은 낮에 미리 준비, 6) 2시경에는 무조건 낮잠 자기.
그러면 오후 시간도 좀 수월하고, 하루 이틀은 온전히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때는 글을 쓰고, 집을 정리하고, 반찬을 하는 식으로 시간을 보낸다. 간혹 사람을 만나긴 하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루틴이 깨진 건 부모님이 오신 10월 20일부터다.
일주일에 하루 장 보던 것을 일주일에 5일쯤 본 것 같다. 볼 일이 있으면 하루 몰아서 바쁘게 해치우곤 했지만, 매일 나갈 일을 만들어야 했기에 고르게 분배해야 했다. 보통은 에너지가 남아있는 오전에 글을 써왔는데, 밤이 되어서야 쓰기 시작했다. 집중이 될 리 없이 시간은 늦어져만 갔다. 몇 시에 자든 5시 50분에는 내 핸드폰 알림이 울리기에 잠이 부족했다. (게다가 나는 자꾸 새벽에 깨는 편이라, 어제 12시에 잤지만 오늘도 4시 40분에 깼다) 속이 안 좋기도 하고, 목도 아파왔다. 열감도 느껴졌다. 그래서인가, 매운 게 당기기 시작했다. 밥을 먹어도 탄수화물이 생각났다.
주중에 불닭볶음면을 먹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이성이 남아있어, 먹고 운동 겸 집을 계속 치웠다.
토요일부터는 급격하게 몸 컨디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말하는데 목소리가 갈라진다. 짜증도 나고, 이 짜증이 밖으로 새어나가기 시작했다. 온몸에 미세한 통증이 느껴지며 한계가 왔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토요일 오전 고속도로에서 차 타이어가 펑크 나고, 남편에게 처리를 부탁한 채 그의 차를 끌고 35분 거리에 있는 배드민턴장으로 달려갔다. 점심을 사다 주고 4시까지 기다렸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5시가 다 된 시간. 쉬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남편이 전해준 엄마의 마음이었다. '친구 선물'을 사러 나가고 싶어 하신다는 엄마의 마음. "엄마, 친구들 선물 사러 나갈래요?" 물어보자 엄마가 나갈 채비를 하신다. 한 군데, 또 한 군데. 한계가 왔다. 차곡차곡 쌓여 위태롭게 찰랑거리던 '피곤'이라는 녀석이 줄줄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기권했다. 집에 가야겠다고.
그래서 남편이 한국 출장길에 사 온 초코파이를 열었다.
저녁을 먹고도, 배가 부른데도, 내일 먹어도 되는 걸 알면서도 뜯었다.
'에라 모르겠다'
'다이어트고 말고 오늘은 먹고 말 거야' 하면서.
초코파이가 꽤 컸다. 두 입을 먹었는데 먹기가 버거웠다. 그래도 나는 또 한 입 물었다. 속 뒤집어질 걸 알면서도, 스트레스를 느끼는 대신 미슥거림이 더 낫다는 듯이. 그러다 반을 남겼다. 도저히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면 이성의 끈이 조금은 남아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요일이 되었다. 배드민턴장에 또 가야 했다. 일요일은 9시 30분에 시작해 12시 30분에 끝난다. 딸을 데리고 가고 싶지는 않았는데 따라나섰다. 엄마도 함께였다. 운전자인 나를 포함해 다섯이 되었다. 오전인데도 에너지가 바닥을 보이고 있었지만, 끝나면 밥을 먹으러 가기로 되어 있었다. 아빠가 한 번 더 드시고 싶다던 'Texas Roadhouse'의 스테이크를 먹으러. 다음 주면 가시니까, 남편이 며칠 전에야 왔기에 다 같이 식사를 못했으니까, 쉬고 싶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그곳에서 남편과 아빠를 만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른 곳으로 가야 했지만.
난생처음으로 저녁이 되었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남편이 아예 먹지 않으면 배가 안 고프다 할 때는 어떤 느낌일지 전혀 상상이 되질 않았는데, 먹는 의욕이 사라졌다. 쉬고만 싶었다. 침대에 가로로 누운 채로 티비를 틀었다. 가만 누워있는 사이 하늘도, 방 안도 어두워졌다. 내리 두 시간을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얼마 만에 이렇게 멍 때리고 있는 건지.... 행복했다.
일요일, 나는 그래서 처음으로 밥을 굶었다.
대장내시경 할 때를 제외하고 처음 있는 일이다.
월요일 저녁인 지금도 여전히 내 머리는 아프고, 여전히 눈은 떨리며, 여전히 속이 안 좋아 미슥거리고 있다. 그럼에도 집에 있는 쿠크다스가 생각나고, 이 글을 쓰며 반 남아 냉장고에 숨겨져 있는 초코파이가 먹고 싶다. 나는 피곤하다. 며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만 싶다. 집에 돌아갈 일이 끔찍하다.
하지만 아직 일주일이 남았다. 돌아오는 주말엔 왕복 9시간, 1박 2일로 달라스로 간다. 부모님과 함께 가서 일요일에 실패한 스테이크집에 갈 거다. 다음날 아침 공항에 내려드리고 나는 다시 돌아올 거다. 그 후엔? 쉴 거다. 아주 푹.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면서.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다. 다이어트도 부모님이 가신 후에 재개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막 먹겠다는 건 아니다. 신경을 조금 내려놓겠다는 거다) 내 다이어트의 목적은 단순히 몸무게를 감량하려는 게 아니다. 건강하게 먹고, 근육을 만들며 에너지를 올리고 싶었던 거다. 그러니 지금은 쉬는 게 먼저다. 몸 회복이 시급하다.
그래서 한 주 좀 내려놓겠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