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몽 Nov 05. 2024

한국 음식을 건강식이라고 할 수 있나?

다이어트에 떡볶이를 먹을 순 없잖아요  


발효식품인 김치나, 야채를 많이 먹을 수 있는 비빔밥, 김밥은 그렇다 치는데, 다른 음식들은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한국음식 중에는 떡볶이가 가장 당기는데, 다이어트를 하기엔...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다! 적절은커녕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슬프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엄마 아빠가 휴스턴으로 오실 때 한국 반찬들을 들고 오셨다. 나는 두 분을 극구 말렸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괜찮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가방의 반 이상은 반찬으로 채워졌다. (말렸으니 이 정도겠지!)


물론 준비하는 게 두 분에게는 설렘일 수 있다. 원래 여행 가기 전이 가장 즐겁듯. 딸이 좋아하는 매콤한 무말랭이 반찬을 사러 남대문으로, 막내 손녀가 좋아하는 까만색 떡을 사러 아현시장으로, 둘째 손주가 좋아하는 우동을 쿠팡으로 박스채 주문하고, 첫째 손주가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사러 연희동으로 출동하며 얼마나 행복하셨겠는가. 두 분이 엄선해서 선정한 '미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음식'을 맛있게 먹일 생각에 많이 기쁘셨을 거다. 




그럼에도 굳이 내가 뜯어말린 이유는 세 가지다. 


01. 온갖 반찬이 트렁크 두 개를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크다. 5주 살러 오시는데 정작 두 분에게 필요한 물건들은 간장게장에, 우동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 트렁크 두 개에서 우리에게 줄 물건들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물건은 초라하다. 옷 몇 벌, 약들, 세면도구 등. 


둘째. 이번에는 막내 짐들이 좀 있었다. 여름에 2달 가있는 동안 막내는 매일 쇼핑을 한 모양이다. 최대한 불쌍한 눈빛으로 물건을 바라보는 손녀를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단다. 그렇게 쌓인 물건 중 상당수가 서울 친정집에 남아있었다. "여기 이미 물건이 차고 넘치니까 안 가지고 오셔도 돼요" 말했지만 바리바리 싸 오셨다. 그중 3개는 딸이 만든 도자기였는데, 깨질까 봐 얼마나 조심히 들고 오셨을지 눈에 선하다. 


셋째. 먹을 사람이 없다. 남편은 미국에 잘 있지도 않지만, 미국에 있어도 건강식으로 먹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떨까? 부모님이 가져온 반찬은 더덕구이, 주꾸미볶음, 젓갈, 명란젓, 고들빼기, 무말랭이, 간장게장인데 대부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나는 <연재라도 하면 다이어트를 하려나> 연재글을 올리며 모처럼 성공적으로 식단을 유지하던 참 아닌가?! 




탄수화물은 야채를 도망가게 만들고
또 다른 탄수화물을 부른다



이번 연재를 하기 전에는 그랬다. 야채가 조금도 먹고 싶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던 초록사과와 피넛버터의 조합도 싫고, 샐러드는 입에 대고 싶지 않았다. '예전에 다이어트할 때는 참 맛있었는데...' 식습관이 바뀐 탓이었다. 


이번에는 그래서 야채와 친해지는 연습부터 했다. 아침에는 계란 두 알과 사과나 샐러리를 피넛버터에 찍어 먹었다. 먹다 보니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매일도 먹겠다 싶을 만큼. 처음에는 소스를 많이 넣었고, 조금씩 야채 본연의 맛을 즐기고 있었단 말이다. 



탄수화물이 여기저기 보이는 이번주



 하지만 이번주에 탄수화물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그것도 꽤 자주.

건강한 탄수화물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하얀 쌀밥이나 밀가루를 말하는 거다. 
하얀 쌀밥에 아빠가 한 솥 끓인 미역국과 반찬을 먹었다. 어떤 날은 더덕구이를 밥에 올려 먹었고, 어떤 날은 아빠가 구워준 LA갈비와 밥을 먹었다. 맛있었다. 원래 같으면 야채에 싸 먹겠지만 마침 똑 떨어졌고, 단짠을 중화시켜 줄 대안으로 밥이 놓였다. 밥은 밥을 불렀다. 한 입만 더, 한 숟가락 더. 그러다 밥이 아주 조금 남으면 다시 더덕구이 한 개만 더 하는 식으로.

금요일에는 아빠 생신이었다. 연재를 시작하고 벌써 세 번째 생일잔치다. 

아빠가 드시고 싶어하던 스테이크집을 가려했으나 주중에는 점심 장사를 하지 않아 급히 경로를 바꿨다. 집 근처 중국 집이었다. 격이 어찌나 착한지 사이드로 수프도 나오고 함께 나오는 밥도 볶음밥으로 바꿀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일요일 점심엔 금요일에 놓친 스테이크집으로 차를 몰았다. 가볍게 먹으려고 샐러드를 시켜놓고 기다렸다. 사실 배도 많이 고팠고, 메뉴판의 음식들이 나를 차례로 유혹했지만 대견하게도 모두 이겨냈다. 가볍게 먹으리라 단단히 다짐하면서.
하지만 서버가 바구니 두 개를 들고오면서 그 마음은 쉽게도 무너졌다. 바구니에 담긴 동그스름한
 식전빵은 향긋한 냄새로, 반질반질 기름이 발라진 먹음직스러운 자태로 나를 유혹했다. 딸의 손이 재빨리 빵을 잡았다. "아 뜨거워~~" 반도 채 갈라지지 못한 빵 사이로 아름다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다이어트'나 '연재' 같은 단어는 따끈한 김과 함께 사라졌다. 아.... 맛있다. 빵과 시나몬이 섞인 크림이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을 만큼 내 취향이었다. 
그래서 하나를 먹고, 다른 하나를 또 먹었다. 그리고 또 반개 더. 애피타이저로 나온 양파 튀김까지 마음껏 먹었다. '샐러드를 먹을 거니까'라는 핑계를 댔지만 정작 배가 불러서 야채는 입에도 대지 못했다. 탄수화물로 아주 몸에 떡칠을 했다. 



음 저 빵은.... 정말 맛있다!



이번주에 탄수화물 양이 늘어난 결과는 처참하다.
아침에 계란이 먹히지가 않아 남겼다. 똑같은 계란인데 맛이 없었다. 사과도 유난히 쓴 기분이고. 샐러드도 그저 그렇고. 매번 느끼는 거지만 탄수화물은 또 다른 탄수화물을 부른다. 그렇게 내 입이 길들여지고 나면 더 이상 야채가 맛있지 않다. 과자만 당긴다. 다시 돌아가야 할 때인 거다. 



효도를 하자니 다이어트가 걸리고
다이어트를 하자니 효도가 걸리네!



그래야 하는데... 오늘 냉동실에서 주꾸미 팩을 하나 꺼냈다. 무려 3팩이나 들고 오신 것 중 하나를 오늘에서야 집어 들었다. 엄마가 몇 차례 말씀하신 게 마음에 걸렸다. 아빠도 무언의 압박을 주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먹고 싶지 않았다. 너무 먹고 싶은데 먹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이랄까?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멈추지 못하는 내 손을 막을 도리가 없을 것을 알기에. 

그래도 그거 뭐.. 효도는 좀 해야 하지 않겠는가?
'효도'를 방패 삼아 오늘은 팩을 뜯어버렸다. 대신 그 안에 양파와 양배추를 썰어서 같이 볶았다. 매콤하고 달달한 소스가 입맛을 돋웠다. 주꾸미는 어찌나 탱글한 지! 갓 잡아 올린 주꾸미가 상에 올라온 기분이다. 조금만 먹으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야채도 썰어 넣고, 밥대신 로메인 상추도 곁들였으니 나는 오늘 효심도 지키고, 다이어트도 지킨 셈이다.

(하지만 아빠가 같이 먹으라던 김치찌개는 정중히 거절했다. 매운맛에 매운맛이라니... 너무 짜요) 





이번주 몸무게를 기록한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지난주보다 0.1 줄었다.
탄수화물을 먹었는데도 늘어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어제 점심을 배불리 먹고, 너무 먹어서, 온 식구가 저녁을 굶었다. 서머타임이 끝나서 실제로 점심을 2시경에 먹었기에... 

그나저나 내장지방은 언제 5가 될까? 새로운 한 주는 야채랑 물 좀 많이 먹어야지! 



이전 05화 내 몸무게를 만천하에 공개하려던 게 아닌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