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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xit May 14. 2022

행복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전에도 가끔씩 느낀 바지만, 조바심치며 기대했던 일이 일어나더라도 예상한 만큼의 만족을 오롯이 얻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진짜 행복의 출발점으로 다른 시기를 지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의 소망과 희망이 이루어질 그 시점을 정하고, 다시 그것을 기대하는 즐거움을 누림으로써 현재의 자신을 위로하고, 또 다른 실망에 대비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혹시 '불금'이라는 단어는 들어봤어도 '불일', 불타는 일요일이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만약 들어본 적이 없다면, 아마도 다가오는 월요일에 대한 불안이 온전한 일요일을 침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반대로 아직 휴일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금요일은 다가올 토요일을 기다리며 불타고 있었던 경험은 이제는 익숙합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리뷰하면서 다시 느끼는 점은 우리의 행복이 이토록 쉽게 흔들린다는 점입니다. 단지 토요일을 기다린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행복해지고, 단지 택배를 기다린다는 것으로 오늘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한편 기다리던 토요일에 쉴 수 없다는 사실, 오늘까지 오기로 했던 로켓 배송이 취소되어 버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행복은 위기에 처하기 십상입니다.


로켓 배송을 기다리는 키이라 나이틀리 영화 <오만과 편견>


이러한 소극적인 행복과 실망을 포착한 영국의 여성작가는 포기, 실망감, 아쉬움 따위의 것들을 한 곳으로 묶어냅니다. 그리고 이를 종합하여 행복을 방해하는 '오만''편견'이라는 두 가지 장치를 설정합니다. 나의 '오만한 태도'는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하며,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두 가지 장치가 움직이게 하는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주요한 방점은 나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는 오만과 편견 이 두 녀석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는 이 악동들로부터 "나의 행복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그리고 이 행복을 지키기 위해 "내 행복의 출발점은 어디일까?"라고 묻는 것이지요. (어떠한 것의 출발점을 물어보고, 회의를 통해 원천적인 요소의 존립을 묻는 방식은 참으로 영국의 경험주의자들을 연상케 합니다. 같은 국가의 철학자 흄처럼 말이지요.)


 "내 행복의 출발점은 어디일까?"라는 질문에 작가는 말합니다. 진짜 행복의 출발점으로 또 다른 시기를 지명해야 한다는 것이죠. 더해서 지명한 시기를 기다리고 소망하는 마음이 우리를 실망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지켜주고, 행복의 시작점이 된다고 말입니다. 이렇듯 작가의 행복관은 어찌 보면 '소극적 행복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행복 = 실제 얻은 성취 / 기대감   (작가의 행복관)

  

그렇다면 과연 작가는 우리가 기대감을 줄여가면서까지 행복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이 또한 여성의 인권이 아직 성숙되지 못한 영국의 풍토를 매질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작가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소극적 행복관을 소설의 2부(중반부) 정도로 할애하여 서술합니다. 그리고 3부부터 모종의 사건을 시작으로 주인공의 태도의 변화와 함께 작가는 진정한 행복에 이르기 위해 새로운 주장을 시작합니다.


작가는 '지식'(오만) 내지 '분별력'(편견)은 앞서 다가올 걱정거리들을 인식하고 지각할 수 있게 해주나, 그것을 극복하는 문제는 오히려 지식의 영역이 아닌 실천의 영역에 있다고 일갈합니다. 왜곡된 지식(선천적인 인간의 주관성 때문인)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오해와 편견을 낳습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문제는 살짝 영역이 다른 '행동의 문제'라고 작가는 함축해서 보여줍니다.


결국, 작가는 사랑을 동력으로 하는 겸손한 태도와 애정 어린 실천이 곧 편견을 녹아내리게 하며 편견을 이해로, 오만이 상대방에 대한 존경으로 치환되는 과정을 3부에서 그려냅니다. 깔끔한 기승전결에 우연적 요소를 살짝 가미해 갈등이 해소되는 소설의 형식이 '신데렐라 플롯'을 연상케 해 아쉽지만 베넷씨의 익살스러운 화법과 사랑스러운 일라이자의 발랄함으로 상쇄시킬 수 있는 정도이니, 오만과 편견 저리 치우시고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texit #텍시트 #폭풍벤야민
@tex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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