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문법을 왜 학습해 왔던 걸까?
지금까지 살펴본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를 다시 간략히 정리해 보자.
영어에서는 특정 어구가 문장 내에서 어떤 자리에 위치하는지를 보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영어에서는 동사를 보면 뒤에 어떤 성분이 나오는지 알 수 있다.
영어에서는 전치사를 보면 뒤에 나오는 명사가 문장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영어에서는 준동사를 보면 해당 동사구가 서술어가 아닌 다른 역할을 함을 알 수 있다.
영어에서는 마커를 보면 해당 문장이 문장이 아닌 다른 역할을 함을 알 수 있다.
이 요점들이 그렇게나 중요하다면 왜 우리는 여태까지 이러한 사실들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던 것일까? 사실, 어느 정도는 이미 배웠다. 그게 뭐냐고? 이번 글에서 소개할 5형식과 그 밖의 영문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우선 5형식부터 시작해 보자.
영어 문장의 다섯 가지 형식
1형식: 주어 + 서술어
2형식: 주어 + 서술어 + 주격보어
3형식: 주어 + 서술어 + 목적어
4형식: 주어 + 서술어 + 간접목적어 + 직접목적어
5형식: 주어 + 서술어 + 목적어 + 목적보어
너무나 징그러운 이 익숙한 자태. 그런데 사실 이렇게 형식을 따지는 건 너무나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예를 들어, “He’s never made me happy.”라는 문장이 5형식이라는 사실을 맞추는 게 도대체 뭐가 그렇게 중요했던 걸까? 문장의 구조를 알려 주니까? 아니, 알려 주는 거면 용인을 하겠는데, 구조를 다 파악하고 나서야 이게 5형식인 걸 알아채는 건 순서가 이상한 거 아니었을까? 나도 크게 공감하는 의문이다. 우리는 문장의 형식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알지도 못한 채 그냥 달달달 5형식을 외워 왔다.
자, 우리는 문장이 보내는 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운 상태이다. 여기에 5형식에 관한 지식을 결합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일단 다섯 가지 형식 모두에 나타나는 ‘공통점’부터 생각해 보자. 영어 문장이 어떤 형식을 가지고 있든 간에 언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가 있다. 그렇다. 바로 주어와 서술어이다. 그리고 항상 주어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서술어가 나온다. 영어에서는 자리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강조했는데 문장 형식에 관한 지식이 이미 ‘주어’와 ‘서술어’의 자리를 알려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므로 대강 정리해 보면, 어떤 어구가 문장 맨 앞에 나왔다면 그 자리는 해당 어구가 주어임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이고 어떤 어구가 주어 다음에 나왔다면 그 자리는 해당 어구가 서술어임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문장 형식에 관한 지식이 이미 ‘주어’와 ‘서술어’의 자리를 알려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다섯 가지 형식을 구분하는 ‘차이점’을 생각해 보자. 어떤 차이 때문에 1~5형식은 서로 구분이 될까? 눈이 있다면 금방 알아차리겠지만 서술어 뒤에 뭐가 오는지에 따라 형식이 달라진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긴데?” 맞다. 결국 서술어 자리에 온 ‘동사’에 따라 뒤에 어떤 문장 성분이 올지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5형식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결국 우리는 ‘동사’를 주의 깊이 보아야 한다. 영어 문장을 접하면 주어를 찾고 서술어를 찾은 바로 그 시점에 이미 어느 정도 문장의 구조는 좁혀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뒤에 뭐가 올지 예상할 수 있고 뒤에 오는 녀석이 ‘-을’로 해석이 되는지 ‘-에게’로 해석이 되는지 ‘-하다는 것’으로 해석이 되는지 ‘-이다’로 해석이 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정보는 분명 해석에 도움이 된다.
영어 문장을 접하면 주어를 찾고 서술어를 찾은 바로 그 시점에 이미 어느 정도 문장의 구조는 좁혀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John considered himself responsible for the accident.
예를 들어, 위 문장을 보면 우리는 “John”을 보는 순간 문장 맨 앞에 나온 어구이기 때문에 주어라고 인식한 뒤 “존은”이라고 해석한다. “considered”를 보는 순간 주어 다음에 나온 어구이기 때문에 서술어라고 인식한 뒤 “여겼다”라고 해석한다. 바로 이 시점에, 머릿속에는 알고리즘이 쭉 펼쳐져야 한다. “‘consider’라는 동사는 뒤에 뭘 데려올 수 있지? 존이 여겼대. 이제 뭐가 궁금하지? 누가 어떻다고 여겼는지가 궁금하지!” 따라서 뒤에 나오는 “himself”라는 어구와 “responsible for the accdent”라는 어구는 자연스레 “그 자신이”, “책임이 있다고”로 각각 해석이 된다. 다시 말해, 문장을 끝까지 보고 다 해석을 하고 나서야 “아, ‘~가 ~하다고 여기다’라고 해석이 되니까 5형식이네”라고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니라, 동사를 본 시점에서 이미 “아, ‘~가 ~하다고’를 데려올 거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한 뒤 그 신호에 맞춰 해석을 해야 하는 것이다.
[번외] 언어가 선형적이라고 동사가 뒤에 데려올 녀석을 100퍼센트 결정하는 건 아니다
“근데 선생님, 아니 ‘consider’가 왜 무조건 “여기다”로 해석이 돼요?” 앗, 들켰네. 그렇다. ‘consider’는 “John considered spending his time drinking alone at a bar.”처럼 쓰일 수도 있다. 이때 “considerd”는 “고려했다”로 해석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존이 고려했대. 이제 뭐가 궁금하지?”에 대한 답은 “무엇을 고려했는지가 궁금하지!”이다. 그러니까 이때 ‘consider’라는 동사는 ‘~을 고려하다’라는 구조를 데려올 것이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동사가 뒤에 데려올 녀석을 100퍼센트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뒤에 데려올 녀석들의 선택지를 결정한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즉, ‘consider’는 ‘~가 ~하다고 여기다’일 수도 ‘~하는 것을 고려하다’일 수도 있다. 이땐 뒤에 몇 자리를 더 확인해야 의미를 확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동사가 데려오는 선택지를 예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머지 성분을 해석하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도움이 된다. 이는 「서론: 영어만의 특징 (2)」의 [번외]편에서 다룬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다음은 그 밖의 영문법을 생각해 보자. 이번엔 이전 글에서 내가 ‘준동사’와 ‘마커’라고 불렀던 것들을 먼저 나열해 보겠다. 우선 ‘전치사’가 있다. 다음으로 준동사는 ‘to-부정사’, ‘동명사’, ‘분사’가 있다. 마지막으로 마커는 ‘접속사’, ‘의문사’, ‘관계사’가 있다. “음, 이거 완전 문법책 한 권 나오겠는데?” 맞다. 우리가 여러 문법책을 통해 배워 왔던 온갖 문법은 사실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각종 표지판을 배워 온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순수하게 문법 문제를 풀기 위해 영문법을 배워 왔다.
우리가 여러 문법책을 통해 배워 왔던 온갖 문법은 사실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각종 표지판을 배워 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각종 표지판을 공부할 때 무엇에 집중하는 게 맞았을까? ‘표지판’이라 함은 자고로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도록 ‘신호’를 보내는지 캐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여러 번 언급이 되었지만, 우리는 전치사, 준동사, 마커들이 각각 ‘뒤에 뭘 데려오는지’ 그리고 ‘뒤에 데려온 녀석들이 어떤 역할을 하도록 바꾸어 주는지’를 집중 공략해야 한다. 그 점을 숙지, 더 나아가 체화하고 있어야 우리는 문장을 복잡하게 만드는 표지판들이 나올 때마다 당황하지 않고 큐에 따라 문장 구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표지판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설명하겠지만 이 경우에도 각각의 표지판이 ‘어떤 자리’에 왔는지가 중요한 신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똑같이 ‘-ing’ 표지가 붙어 있는 준동사라 할지라도 형용사로 쓰인 분사일 수도 분사구문일 수도 동명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치사, 준동사, 마커들이 각각 ‘뒤에 뭘 데려오는지’ 그리고 ‘뒤에 데려온 녀석들이 어떤 역할을 하도록 바꾸어 주는지’를 집중 공략해야 한다.
이 글에서 살펴본 내용은 이미 그 자체로 영어독해을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이 되기도 하지만 ‘Q영어독해’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청사진은 다음과 같다.
‘Q영어독해’에서 배우게 될 내용: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품사나 덩어리 개념 등 기본적인 예비 사항을 점검할 것이다.
문장 형식에 기반을 둔 영어독해의 핵심 3대 큐를 알아볼 것이다.
세 번째 핵심 큐가 알려 주는 다양한 문장 형식을 살펴볼 것이다.
‘전치사’라는 표지판이 우리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살펴볼 것이다.
‘종속접속사’와 ‘접속사 that’이 우리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살펴볼 것이다.
‘등위접속사’가 우리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살펴볼 것이다.
각각의 ‘준동사’들이 우리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살펴볼 것이다.
각각의 ‘연결사’들이 우리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살펴볼 것이다.
아직 미정이지만 그 이후에는 몇 가지 문법 개념(시제, 가정법, 도치 등)을 ‘제대로’ 이해시켜 주겠다. 그리고 우리가 배운 Q영어독해가 정말 실전에 적용될 수 있는 불변의 원칙인지 검증해 보는 시간도 꾸준히 갖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는 Q영어독해의 외전 격으로 문장을 넘어서는 ‘글’을 읽는 방법 역시 간단히 다루도록 하겠다. 기대하셔도 좋다. 단어만 다 알고 있다면 어떤 문장을 봐도 겁내지 않을 무적의 원칙을 전수해 드릴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