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중심 도시 중 하나인 이스파한에는 300년 정도 된 호텔이 있다고 합니다. 사파비 제국 시절부터 있었던 셈이죠. 정확히 말하자면, 옛날에는 상인이나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였던 곳을 호텔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는 것에 가까울 것입니다. 이스파한은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도시 중 한 곳이었으니 말이죠.
'실크로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하나를 꼽자면 짐을 바리바리 짊어진 낙타 무리를 들고 싶네요. 바로 '대상(隊商)'이라고도 하는 '캐러밴(caravan)'입니다. 상인들은 낙타나 말 등의 동물들과 함께 비단길을 누볐습니다. 오늘날에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처럼, 캐러밴 역시 비단길 곳곳에 자리 잡은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습니다. 이 '휴게소'들이 바로 '캐러밴서라이(caravanserai)'였습니다.
'캐러밴서라이'의 '서라이'는 페르시아어로 담으로 사방을 에워싼 집을 뜻한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는 캐러밴서라이들의 모습을 보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 수 있죠. 워낙 광범위한 지역에 퍼져 있던 시설들이니만큼 형태가 제각각이겠지만, 실크로드의 중심이었던 페르시아, 그리고 중앙아시아 지역의 캐러밴서라이들은 대부분 네모난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담으로 둘러싸인 중앙 뜰은 지붕 없이 뻥 뚫려 있었죠. 캐러밴서라이들은 수많은 사람들은 물론 낙타 무리까지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과 낙타들이 먹고 마실 수 있는 물과 식사 역시 제공할 수 있는, 그야말로 옛날의 호텔 같은 곳이었다고 하죠.
이역만리 떨어진 외국의 신선식품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현대만큼은 아니지만, 이 당시에도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진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신라에서도 로마 또는 페르시아 양식의 유리그릇이 출토될 정도니 말이죠. 로마, 페르시아, 인도, 그리고 중국의 명산품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흉노를 물리칠 동맹과 말을 구하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서역 진출을 시도했던 것처럼 정치적인 동기도 있었죠. 실크로드는 수 세기에 걸쳐서 여러 가지 이유와 목적 하에 개척되었습니다.
실크로드는 위험과 고난으로 가득찬 곳이기도 했습니다. 혹독한 추위와 더위,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천길 낭떠러지, 언제 마주칠지 모르는 자연재해와 호시탐탐 사람과 가축을 노리는 맹수와 도적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실크로드가 가져다주는 온갖 이권을 두고 수시로 벌어졌던 전쟁도 빼놓을 수 없죠. 지금처럼 GPS가 발전한 것도 아니었으니, 기억과 지형지물, 그리고 천문에 의존하여 수천~수만 km의 길을 찾아야 했다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대부터 실크로드가 개척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그 길을 걸었습니다. 캐러밴서라이들이 등장한 것 역시 그 위험과 고난으로부터 여행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죠.
'캐러밴서라이'는 비록 페르시아어지만, 페르시아에만 있던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페르시아는 물론 북아프리카와 아라비아, 아나톨리아에도 있었죠.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 지역에도 상인들을 위한 숙소가 생겨났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주도권을 장악한 이슬람 세력들은 캐러밴서라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습니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되기 전, 유럽과 인도, 중국 사이에 껴서 세계 무역에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이니만큼 무역로 관리에 큰 공을 들였죠. 이스탄불이나 다마스쿠스 등 주요 도시의 캐러밴서라이들은 단순한 숙소 역할뿐만 아니라 상업과 우편 업무 등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레 캐러밴서라이에도 돈이 몰리게 되었고, 캐러밴서라이의 수입은 이슬람의 사원이나 병원, 학교 등의 운영 비용 등에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경제는 물론 종교나 문화, 복지 등에도 좋은 영향을 주었던 것이죠.
물론 다른 나라들도 교역로 관리에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팍스 몽골리카'를 가져왔다는 말까지 듣는 몽골 제국도 마찬가지였죠. 몽골은 자신들이 정복한 제국 전체에 역참을 세우고 연결망을 구축하였습니다. 무슬림 탐험가인 이븐 바투타는 당시 몽골의 원나라가 통치하던 중국이 여행하기 가장 좋고 안전한 나라라고 칭찬했습니다. 재물을 잔뜩 가지고 몇 달을 여행해도 도둑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표현할 정도였으니, 당시 중국 지역의 치안이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의 기록에 묘사된 중국의 한 캐러밴서라이에서는 관리자들이 투숙객들의 이름과 숫자 등을 파악하고 그들이 향할 다음 지점에도 목록을 인계하는 등 철저하게 운영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이처럼 캐러밴서라이는 국제 교역과 함께 생겨나고, 여기에 뛰어든 여러 나라들의 지원과 관리를 받으면서 실크로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금은보화, 향신료, 면직물 등의 다양한 상품들을 짊어진 상인들의 목적지는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이 걷는 모든 비단길은 캐러밴서라이를 통했습니다. 지금은 과거와 같은 위치를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캐러밴서라이들이 세계 각지에서 실크로드의 단면을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1. 이스파한 Abbasi Hotel(https://abbasihotel.ir/en/about-us-en/)
2. 이자드하스트 캐러밴서라이(https://en.wikipedia.org/wiki/Izadkhast_Caravanserai)
3. 술탄 한(https://en.wikipedia.org/wiki/Caravanserai#/media/File:Sultanhani_Karawanserei.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