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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Feb 10. 2019

일부러 그런 거 맞잖아요

실험 철학이 발견한 노브 효과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어떡해? 봐줘야지, 뭐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어떤 행동이 얼마나 나쁜 것이었는가, 그리고 그 행동을 한 사람은 얼마나 나쁜 놈인가를 판단할 때 우린 (물론 다른 것들과 함께) 그 의도를 본다. 그래서 누군가 피해를 끼치더라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면 비난할 마음이 사라지거나 적어도 줄어든다. "그래? 그럼 봐준다." 물론 긍정적인 평가도 마찬가지다. 종일 굶은 동생의 배고픔을 달래줄 요량으로 빵을 나눠주는 건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그냥 배가 불러서 그런 것이라면 딱히… 그래서 칭찬에 목 마른 이는 이렇게 말한다. "배 곪지 말라고 일부러 준 거지."


행위와 행위자에 대한 (도덕적) 가치 평가는 (부분적으로) 의도에 대한 사실 판단에 근거한다고 보는 철학자들에겐 의도 개념에 대한 연구가 핫하다. 그게 뭔지를 알아야 종국에는 도덕적 판단을 위한 기준도 제시할 수 있을 테니까. 의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같은 질문에 대해서도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있다. 가령 의도된 행위의 (의도된 효과가 아닌) 부수적 효과도 의도된 것으로 보아야 할까? 물론 철학자들은 의견을 달리한다. 어떤 효과를 초래할 의지가 없었다면 의도도 없었다는 견해가 있고, 그렇더라도 그 효과가 발생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면 의도가 있었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의도 개념에 대한 분석을 마친 뒤, 이를 바탕으로 부수적 효과에 대한 개별 논의로 나아간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모든 개별적 논의에 두루 적용할 수 있는 단일한 의도 개념이 독립적으로 존재할까? 조슈아 노브Joshua Knobe는 이런 의문을 던진다. 왜냐하면 상황에 따라서, 보다 구체적으로는 부수적 효과와 그것을 일으킨 행위(자)에 대한 가치 판단에 따라서 그 행위자의 의도에 대한 사실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본인의 직관에 천착하지 않고, 공원으로(!) 나가 평범한 다수의 직관을 확인하는 재밌는 실험을 한다.


그는 먼저 시민 78명을 대상으로 두 가지 이야기 중 임의로 선택된 한 가지를 읽게 한다.

[이야기 1]

어느 기업의 부사장이 회장에게 말한다. "새로운 사업을 할까 합니다. 이익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데, 자연 환경을 해치게 될 것입니다.
회장이 이렇게 답한다. "그 사업이 자연 환경을 해치게 될 것인지 아닌지는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아. 그저 가능한 한 많은 이익을 올리고 싶을 뿐이지. 시행하자고."
그 사업은 계획대로 시행됐고, 자연 환경도 해치게 된다.
[이야기 2]

어느 기업의 부사장이 회장에게 말한다. "새로운 사업을 할까 합니다. 이익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데, 자연 환경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회장이 이렇게 답한다. "그 사업이 자연 환경에도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닌지는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아. 그저 가능한 한 많은 이익을 올리고 싶을 뿐이지. 시행하자고."
그 사업은 계획대로 시행됐고, 자연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

이야기를 다 읽은 시민은 (a) 회장이 얼마나 비난 또는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지를 0~6점으로 나타내고, (b) 회장이 환경에 미친 부수적 효과를 의도했다고 생각하는지 답했다.


환경에 대한 부수적 효과가 각각 긍정적·부정적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두 이야기 사이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런 대칭성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답변은 매우 비대칭적으로 나타났다.


[이야기 1]을 읽은 시민 중에서는 82%가 자연 환경 파괴는 의도된 것이라고 응답한 반면, [이야기 2]를 읽고 자연 환경 개선이 의도된 것이라고 답한 시민은 23%에 불과했다. 이 차이는 환경에 가해진 부수적 효와 그걸 일으킨 장본인에 대한 가치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야기 1]을 읽은 시민들이 제시한 회장에 대한 비난 가능성 척도는 평균 4.8로 강하게 나타난 반면, [이야기 2]를 읽은 시민들은 평균적으로 칭찬 가능성 척도를 1.4 수준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비난·칭찬가능성 척도와 의도성 존재 유무 판단 사이에는 상관계수 .53에 이르는 높은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회장이 보다 강하게 비난 또는 칭찬받아야 한다고 본 시민들이 환경에 대한 부수적 효과가 의도된 것이라고 판단한 경우가 많았다는 의미다.


못된 놈, 일부러 그런 게 분명해

이 실험은 부수적 효과가 의도된 것인지에 대한 사실 판단은 그 효과와 그 효과를 일으킨 행위(자)에 대한 가치 판단에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암시한다. "의도적으로 한 걸 보니 나쁜 놈"이 아니라 "나쁜 놈이니 의도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는 것. 노브 효과Knobe Effect. 생각해보니 그렇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우리는 이렇게 남을 비난하기도 하니까. "일부러 그런 거 맞잖아요."



#윤리학 #노브_효과 #실험_철학 #의도 #비난 #칭찬 #도덕적_평가


Joshua Knobe, "Intentional Action and Side Effects in Ordinary Language," Analysis 63(3) (2003): 190-94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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