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어떤 행동이 얼마나 나쁜 것이었는가, 그리고 그 행동을 한 사람은 얼마나 나쁜 놈인가를 판단할 때 우린 (물론 다른 것들과 함께) 그 의도를 본다. 그래서 누군가 피해를 끼치더라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면 비난할 마음이 사라지거나 적어도 줄어든다. "그래? 그럼 봐준다." 물론 긍정적인 평가도 마찬가지다. 종일 굶은 동생의 배고픔을 달래줄 요량으로 빵을 나눠주는 건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그냥 배가 불러서 그런 것이라면 딱히… 그래서 칭찬에 목 마른 이는 이렇게 말한다. "배 곪지 말라고 일부러 준 거지."
행위와 행위자에 대한 (도덕적) 가치 평가는 (부분적으로) 의도에 대한 사실 판단에 근거한다고 보는 철학자들에겐 의도 개념에 대한 연구가 핫하다. 그게 뭔지를 알아야 종국에는 도덕적 판단을 위한 기준도 제시할 수 있을 테니까. 의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같은 질문에 대해서도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있다. 가령 의도된 행위의 (의도된 효과가 아닌) 부수적 효과도 의도된 것으로 보아야 할까? 물론 철학자들은 의견을 달리한다. 어떤 효과를 초래할 의지가 없었다면 의도도 없었다는 견해가 있고, 그렇더라도 그 효과가 발생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면 의도가 있었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의도 개념에 대한 분석을 마친 뒤, 이를 바탕으로 부수적 효과에 대한 개별 논의로 나아간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모든 개별적 논의에 두루 적용할 수 있는 단일한 의도 개념이 독립적으로 존재할까? 조슈아 노브Joshua Knobe는 이런 의문을 던진다. 왜냐하면 상황에 따라서, 보다 구체적으로는 부수적 효과와 그것을 일으킨 행위(자)에 대한 가치 판단에 따라서 그 행위자의 의도에 대한 사실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본인의 직관에 천착하지 않고, 공원으로(!) 나가 평범한 다수의 직관을 확인하는 재밌는 실험을 한다.
그는 먼저 시민 78명을 대상으로 두 가지 이야기 중 임의로 선택된 한 가지를 읽게 한다.
[이야기 1]
어느 기업의 부사장이 회장에게 말한다. "새로운 사업을 할까 합니다. 이익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데, 자연 환경을 해치게 될 것입니다. 회장이 이렇게 답한다. "그 사업이 자연 환경을 해치게 될 것인지 아닌지는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아. 그저 가능한 한 많은 이익을 올리고 싶을 뿐이지. 시행하자고." 그 사업은 계획대로 시행됐고, 자연 환경도 해치게 된다.
[이야기 2]
어느 기업의 부사장이 회장에게 말한다. "새로운 사업을 할까 합니다. 이익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데, 자연 환경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회장이 이렇게 답한다. "그 사업이 자연 환경에도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닌지는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아. 그저 가능한 한 많은 이익을 올리고 싶을 뿐이지. 시행하자고." 그 사업은 계획대로 시행됐고, 자연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
이야기를 다 읽은 시민은 (a) 회장이 얼마나 비난 또는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지를 0~6점으로 나타내고, (b) 회장이 환경에 미친 부수적 효과를 의도했다고 생각하는지 답했다.
환경에 대한 부수적 효과가 각각 긍정적·부정적이라는점을 제외하면 두이야기 사이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런 대칭성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답변은 매우 비대칭적으로 나타났다.
[이야기 1]을 읽은 시민 중에서는 82%가 자연 환경 파괴는 의도된 것이라고 응답한 반면, [이야기 2]를 읽고 자연 환경 개선이 의도된 것이라고 답한 시민은 23%에 불과했다. 이 차이는 환경에 가해진 부수적 효과와 그걸 일으킨 장본인에 대한 가치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야기 1]을 읽은 시민들이 제시한 회장에 대한 비난 가능성 척도는 평균 4.8로 강하게 나타난 반면, [이야기 2]를 읽은 시민들은 평균적으로 칭찬 가능성 척도를 1.4 수준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비난·칭찬가능성 척도와 의도성 존재 유무 판단 사이에는 상관계수.53에 이르는 높은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회장이 보다 강하게 비난 또는 칭찬받아야 한다고 본 시민들이 환경에 대한 부수적 효과가 의도된 것이라고 판단한 경우가 많았다는 의미다.
못된 놈, 일부러 그런 게 분명해
이 실험은 부수적 효과가 의도된 것인지에 대한 사실 판단은 그 효과와 그 효과를 일으킨 행위(자)에 대한 가치 판단에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암시한다. "의도적으로 한 걸 보니 나쁜 놈"이 아니라 "나쁜 놈이니 의도했을것"이라고 판단한다는 것. 노브 효과Knobe Effect. 생각해보니 그렇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우리는 이렇게 남을 비난하기도 하니까. "일부러 그런거 맞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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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Knobe, "Intentional Action and Side Effects in Ordinary Language," Analysis 63(3) (2003): 190-94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