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는 종종 증명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갑자기 떡볶이가 먹고 싶다든지, 노래방에 가고 싶다든지 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투자에 비해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자주 포기하지만 가끔씩 용기를 쥐어짜내어 사진관에 향하곤 한다. 수의 이런 특이한 행동은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접한 뒤 시작되었다.
수의 할머니는 수가 스물세 살에 돌아가셨다. 당시 수의 할머니는 고온의 전기장판에서도 추워할 만큼 온도를 느끼지 못했고, 하루 종일 누워있는 통에 엉덩이에 동전만 한 욕창이 생겼으며, 미음도 삼키지를 못 했다. 그리고 자주 수의 이름을 잊었다. 수의 기억 속의 할머니는 원래부터 늙어있었기에 더 주름 지거나 머리가 센 모습은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수를 잊는다는 건 조금도 예측하지 못했다. 수에겐 몹시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수의 할머니는 관상어 같은 눈으로 천장만 바라봤다. 그러다 아주 가끔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춰올 때가 있었지만 그 눈은 수를 향한 게 아니었다. 할머니는 힘이 다한 목소리로 명희야, 명희야 하고 울었다. 그럴 때마다 수는 나 수잖아, 왜 나를 기억 못 해, 하고 화를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도 잃은 수의 아빠는 의외로 덤덤했고, 며느리인 엄마는 수의 예상보다 더 슬퍼했다. 장의사가 할머니를 깨끗이 닦고 정돈한 뒤 가족을 불렀다. 할머니는 차분히 누워있었다. 쪼글쪼글한 주름 위에 약간의 화장을 올린 할머니는 늙은 콩순이 인형 같았다. 화장한 할머니도 죽은 할머니도 처음 봐서 수는 기분이 이상했다. 얼떨떨해하는 사이 장례식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잘 살고 있다가도 갑자기 그 관상어같이 초점 없는 눈이 떠오를 때마다 수는 애써 생각의 방향을 틀려 노력했다. 이를테면 할머니의 영정사진이다. 학사모를 쓰고 경직된 얼굴로 찍은 노인 대학 졸업 사진. 다가올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의외로 산뜻한 일인지 모른다. 미리 찍어둔 영정사진을 들여다보는 할머니의 뒷모습엔 어딘가 결연해 보이는 면이 있었으니까. 잘 죽어야지, 곱게 죽어야지, 일찍 죽어야지. 할머니가 그럴 때마다 수는 아, 왜 그런 얘길 해,라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나 마음만은 일찌감치 노인이 되어버린 수가 그날의 대화를 곱씹어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면이 있었다. 오랜 우울증 환자인 수에게 죽음은 굉장히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수는 자주 자신의 죽음을 설계했다. 죽은 이에겐 죽은 이를 기릴 수 있는 매개가 필요하다. 수가 특별하고 특출난 사람이 아니니 역시 무난하게 영정사진일 것이다. 자주 무표정한 실제의 수와 달리 사진 속의 수는 언제나 웃고 있다. 그러니 수의 영정사진은 사람들이 적당한 농도로 슬퍼할 수 있게끔 도와줄 것이다. 수는 자신의 계획에 유서 작성은 제외했다. 감정과잉형 인간인 수는 분명 절절한 유서를 남겨 남은 이를 부끄럽게 만들고 말 것이다. 그러나 몇몇에겐 편지를 쓰고 싶어 했다. 수는 할머니가 온전한 정신일 때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던 행복한 기억을 떠나기 전에 재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행복해져서 죽기 싫어질까 봐, 수는 그러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남은 건 죽는 날짜를 정하는 일이었다. 스물아홉의 마지막 날에 죽어버릴까? 아님 서른 살의 생일? 자살하면서 호상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법한 날짜는 없을까? 사는 건 너무 지긋지긋한 일이어서 수는 빨리 죽어버리고 싶었다. 뒤죽박죽인 생각을 정리하다 죽기 전엔 다이어트를 좀 성공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매우 뜬금없는 생각이 튀어나왔다. 와중에 영정사진은 좀 더 예쁘게 찍고 싶었던 것이다. 수는 죽음을 앞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몹시 우스웠다. 자살을 생각하며 남들에게 보일 영정사진은 잘 빠졌으면 하는 마음이라니. 그렇지만 할머니가 학사모를 쓰고 멋진 영정사진을 찍은 것처럼 수도 지금보다 날렵하고 근사한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살을 빼려면 어떻게 해야 하더라, 수는 머리를 굴렸다. 우선 간식과 야식을 줄이고, 공복에 달리기나 줄넘기를 좀 하고, 유튜브를 보고 근력 운동을 해야겠다. 수는 자살을 위한 다이어트 계획을 줄줄이 세우다 낙담했다. 증명사진을 예쁘게 찍어본 적도 없지만 다이어트를 성공해본 역사도 없었던 것이다.
과연 이번 생에 영정사진을 찍을 수나 있을까? 자살, 쉬운 줄 알았는데 의외로 힘든 여정이 될지도 모르겠다. 계획표를 구겨버린 수는 책상에 엎드려 좌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