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든 길의 필요성

2019년 10월 29일 밤

by 졸팍

요 몇 달간 퇴근길엔 운동 삼아 걸어 다니고 있습니다. 꼭 밤에만 찾아오는 얄미운 거래처의 연락 탓에 주의를 잃어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평소엔 한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거리를 30분이나 더 걸어야 했습니다. 시간에 약간의 강박이 있는 터라 적지 않은 짜증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길을 찾기 위해 집중하다 보니, 숨어있던, 기름진 도우가 바삭바삭할 것만 같은 피자 가게를 발견했습니다. 늘 좁다고만 느꼈던 동네 초입은 어색하리만치 쾌적해 보였고요. 3년 남짓 살아왔건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동네를 걸으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대학시절 좋아하던 교수님이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잠긴 문을 만날 때 비로소 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문제를 만나야 사유한다."

괜히 퇴근길이 늘어진 오늘에게도, 잘 살아내고 있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한 삶에도 적당한 위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의 이 생각이 매번 충분한 위로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운이 좋다면 다른 이에게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옅게 입니다.

그 생각은, 길을 잘못 든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 덕분에 그 길에 대해 사유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어쩌면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낼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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