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자들에게 보내는 감사

2019년 11월 2일 저녁

by 졸팍

나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너무 나쁜 사람이 되는 건 피하고 싶으니 조금 희석시켜 말하자면 개인주의적인 사람입니다. 가끔 이타적인 행동을 하지만, 그것이 진정 상대방을 위한 것인지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행위가 이타적이라고 하여 꼭 유전자의 이기성에 위배되는 건 아님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던 옛 무학대사의 말처럼,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철저하게 이기적인 동기에 따라 움직인다는 법칙을 내면에 정립해 두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대하는 것이 30년을 살아도 수월해지지 않습니다. 소위 사회생활이란 게, 즉 타인에게 큰 관심과 진심도 없으면서 관계를 맺는 가식이, 거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에게 관계란 에너지가 드는 것이고 그래서 웬만하면 피하고 싶어, 마음의 지도에 나를 중심에 두고 저 멀리 둘러 경계선을 그어두었습니다.

그런데 간혹 이 차가운 법칙을 무너뜨리고 경계선을 침범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잔학무도한 무법자들은 때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때로는 예상 밖의 공감과 도움을 무기로 삼아 침략해옵니다. 나라면 그러지 못할 텐데. 내 논리로 그 동기를 이해할 수 없는 작고 큰 친절이, 이기적인 나에게는 갚기 어려운 마음의 빚이 됩니다.

인생의 삼분지 일을 지나오며 채권자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이들은 사회를 바라보는 내 시선을 덥혀주었고,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29년 전 오늘, 나는 어머니의 아기집에서 나왔습니다. 수고는 어머니가 다했건만, 침략자들은 엉뚱한 나에게 축하의 포탄을 날려왔습니다. 자격 없이 받는 축하에 매년 어려움을 느낍니다.

보통 이런 날에는 즐거워할 텐데,⠀
나는 오늘도 마음의 빚만 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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