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이 "왜"라는 녀석은 모든 질문을 어렵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얼마 전 어머니께서 제기한 문제도 그랬습니다. 오랜만에 본가에 가서 밥을 먹는데, 상추를 평소와는 사뭇 다른 눈길로 보던 어머니께서 난제를 던져놓았습니다.
"왜 초록색을 푸르다고 할까?"
하긴 나도 어릴 때부터 의아했습니다. 비슷한 어감 때문인지, 보통 "푸른"이라는 말을 들으면 "파란" 색이 연상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푸르다는 말을 "푸른 하늘"에서처럼 파란색뿐 아니라, "푸른 들판"과 같은 초록색을 뜻할 때도 씁니다. 그럼 대체 푸른색은 초록색이란 말입니까, 파란색이란 말입니까? 푸름의 경계는 어디란 말입니까?
밥을 반쯤 씹은 채 고민을 했습니다. 초록과 푸른 두 단어를 놓고 보니 초록은 한자어이고 푸른은 우리말입니다. 그렇다면 녹색과 파란색을 아울러 "푸른"이란 말이 먼저 생기고 녹색에 한해 "초록"이란 말이 들어온 것이 아닐까요? 즉, 우리 선조들은 초록과 파랑을 구분하지 못하고 하나의 색으로 인식하다가 나중에서야 두 색을 분리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녹색과 파란색은 서로 가까운 색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학교에서 배우듯 가시광선은 파장에 따라 색이 나뉘는데, 이를 늘어놓으면 무지개가 됩니다. 녹색과 파란색은 파장이 비슷해서 무지개에서 나란히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녹색과 파란색을 같은 범주의 색으로 보았을 법도 합니다.
자연 상태에서 파란색이 흔치 않다는 점에서 녹색과 파란색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녹색은 온 지면을 덮고 있는 식물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초록 유기체는 집을 짓는 재료도 되고 식량이 되기도 하니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런 점에서 "푸르다"가 "풀"에서 왔다는 설에도 쉽게 수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파란색은 맑은 하늘에서 말고는 딱히 찾을 수가 없습니다. 보통 물을 파란색으로 그리긴 하지만, 자연에서 물은 환경에 따라 흙색, 녹색, 회색, 검은색으로 바뀌고, 바다나 강처럼 하늘을 담을만한 규모가 되어야 비로소 파란색을 띱니다. 그것도 맑을 때만요. 이렇게 흔치도 않고 생존에 딱히 필수적이지 않은 파란색은 그저 녹색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으로 봐도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장식이나 예술적 용도로 파란색을 많이 쓰기 시작하면서 별개의 색으로 구분하게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짧은 검색으로 이 추측이 맞는지 알아보려 했는데, 주간동아에 게재된 기사*가 궤를 같이합니다. 이렇게 나름의 답을 내봤는데요, 식탁의 화제는 이미 다른 것으로 바뀐 뒤였습니다.
….
적시성에 관하여.
*기사 링크
"우리는 왜 하늘과 산을 모두 푸르다고 할까"
http://naver.me/GzQsXNv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