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봄비가 내린 다음날이었던가, 공기가 서늘해지고 하늘이 투명하게 개었던 날이었습니다. 그날 친구 녀석이 자기가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을 보여주겠노라며 어디론가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부산에서 자란 나에게 서울을 소개해 주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지만 인천 출신인 녀석이 왜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습니다. 의문을 품은 채로 이끌려간 그곳, 남산 나직한 자락에 백범광장이 있었습니다.
광장 가는 길에는 성벽이 둘러서있습니다. 아래에는 큰 성돌이, 위에는 작은 성돌이 쌓여 있는데 아무래도 가볍고 작은 성돌이 위로 들어 옮기기에도 편하고 구조 상 안정적이기에 그리된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큰 돌이 낮은 곳에서 작은 돌을 받치고 있는 것이 왠지 기특해 보였습니다.
광장으로 올라서면 저 멀리 안쪽에 성재 이시영 선생의 동상이 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장관 집안에, 자신도 도지사와 주요 관직을 지낸 권세가입니다. 그러나 국권이 피탈되자 일가와 함께 만주로 망명하고는 전 재산을 처분해 교육과 독립군 양성에 썼던 분입니다.
성벽길과 동상 사이에는 너른 풀밭이 있습니다. 풀밭에 서니 남서쪽 서울이 유난히 멀리까지 보였습니다. 마음이 왜 그렇게 맑게 개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날, 백범 광장에는 청아한 공기와, 좋은 친구와, 낮게 놓인 큰 성돌과, 스스로 낮은 곳으로 갔던 큰 사람 이시영 선생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