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밤의 추억

2020년 2월 9일 밤

by 졸팍

어릴 적 얘기를 하면 어머니는 내가 아기 때부터 조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건대 유년에는 나도 나름의 장난기가 있었습니다. 한 살 터울의 사촌 형과 명절마다 치르던, 일종의 의식을 보아 그렇습니다.

먼저 길고 지루한 차례를 지내고 나서야 두 어린이들의 의식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초조한 마음으로 차례상에 달려가고는 이내 안도합니다. 다행히 조상님들의 입이 짧은 덕에, 의식의 재료인 날밤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날밤을 바로 먹어서는 안됩니다.

한 손은 주먹을 쥐고, 다른 손은 그 주먹을 감쌉니다. 앳된 얼굴에 인상을 있는 대로 모아 쓰면 그제야 준비가 끝납니다. 드디어, 날밤을 씹는 동시에 주먹을 움켜쥐며 서로에게 건달 행세를 합니다.

“오도독.”

날밤 씹는 소리가 뼈 소리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한 놀이입니다. 이렇게 기발한 놀이를 한 번만 하는 것은 정이 없는 처사이므로, 목도 한번 털어 주어야 합니다.

“오도독.”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 기발한 놀이도 어쩐지 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머리가 자라고 울림통이 커져서 더 이상 “오도독”이 아니라, “우두둑”이 된 탓일까. 그 사이에 우리는 키가 훌쩍 자랐고, 그만큼 개성도 짙어졌습니다. 각자의 삶에 바쁘게 되었습니다. 친척이라고 해서 늘 화목하지 않은 것도, 누군가는 명절이 불편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이란 복잡하다는 것을.

지난 설, 오랜만에 날밤을 보니 왠지 아쉽기도 하고, 어딘가 귀엽기도 했습니다. 머쓱해진 마음에 몰래 밤을 씹어보았습니다.

“오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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