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껍질, 부름켜, 철이 든다는 것

2020년 2월 21일 밤

by 졸팍

"남산 위에 저 소나무"는 과연 그 껍질이 마치 용린갑처럼 갈라져 있습니다. 소나무뿐만 아니라 다른 나무들의 껍질도 대부분 갈라져 있습니다. 작고 긴 계곡 같기도 하고 깊게 팬 주름 같기도 한 균열은 어쩌다 생긴 것일까. 나무들의 이 거친 속사정이 무엇인지 궁리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나무가 껍질보다는 안쪽에서부터 자라는 까닭이지 않을까. 밖에서 살이 붙는다면, 즉 기둥의 가장자리에서 세포분열을 한다면 표면이 갈라질 이유가 딱히 없습니다. 그러나 기둥 안쪽이 팽창하면 비교적 딱딱한 껍질은 갈라질 것입니다. 급격하게 살이 찌면 튼살이 생기는 것처럼요.

짐작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식물에는 ‘부름켜’라는 조직이 있다고 합니다. 단어를 풀어보면 불어나다의 어근인 ‘붇-‘, 뒤에서 명사로 만들어 주는 ‘–음’, 층을 뜻하는 우리말 ‘켜’인데요, 정감 있는 뜻풀이 그대로 부름켜는 식물의 두께를 키우는 세포층입니다.

생명은 소중하니까,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봅시다. 나무 기둥을 수평으로 잘라서 그 단면을 보면 껍질보다 조금 안쪽에 중심을 두른 고리 모양의 얇은 선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부름켜입니다. 부름켜는 세포분열을 통해 안으로는 물관을, 밖으로는 체관을 만듭니다. 이로 인해 나무 안쪽의 부피가 커지는 만큼 껍질의 면적이 넓어지지 않아서 표면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이른 봄 새순처럼 머리가 무르던 때에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장수풍뎅이를 잡고 싶고, 100만 원을 모아 엄마 다이아 반지를 사고 싶고, 제2의 파브르가 되고 싶었습니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며 해야 할 것들이 늘어났습니다. 괜찮은 대학에 가야 하고, 반듯한 직장을 구해야 하고, 돈을 빌려 집을 사야 하고…. 평범한 삶, 남들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하지요.

그런데 남들만큼 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워서, 차츰 해야 할 일들에 매몰되어갑니다. 어느새 해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혼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구에 깊게 공감했나 봅니다. “어쩌면 ‘철이 든다’는 것은 시대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서서히 받아들이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시대의 욕망을 무시하고 나의 욕망을 좇아도 되는 걸까. 반대로, 노력 끝에 남들처럼 되어버리고 나면 철없던 어린 나에게 미안해지지는 않을까.



나무의 부름켜 밖으로 만들어지는 체관은 새로운 세포들에 점점 바깥으로 밀려나며 찢어지고 갈라지다, 결국에는 떨어져 나갑니다. 그러나 안으로 만들어진 물관은 시간이 지나면서 단단해지고, 나무를 굳게 지탱합니다.



*페터 볼레벤 《나무 다시 보기를 권함》을 참고했습니다.
** 정재승 《열 두 발자국》 에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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