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지하도에는 묘한 선반이 있다

2020년 3월 25일 밤

by 졸팍

‘그냥 다음에 하자.’ 혹시라도 맨살에 닿을까 고무장갑으로 중무장한 손을 거두며 오늘도 청소를 미뤘습니다. 싱크대와 샤워실의 배수구, 변기나 세면대 뒤. 빛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 습하고 어두운 곳. 좁기까지 한 탓에 손을 타지 못하고, 그래서 곰팡이가 내려앉은 곳. 웬만큼 마음을 크게 먹어도 솔을 들기 어려운 곳. 그래서 외면하고 싶은 곳. 그러나 불과 몇 치 거리에, 우리 눈이 잘 닿지 않는 거기에 그곳은 분명히 있습니다.

회사로 가는 길에는 남대문 앞 큰 차도를 건너야 하는데 이때 횡단보도와 지하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경험칙에 따르면 지하에 난 길은 실망스럽기 마련이라 늘 횡단보도를 골랐습니다. 분에 넘치게 아침잠을 충분히 가졌던 날, 예의 그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이던 신호등이 지각불로 바뀌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내려간 지하도는 의외로 쾌적했고 덕분에 팀장님의 괜한 헛기침도 면했습니다. 그 뒤로는 출근길에 종종 지하도를 지났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언제나 쾌적했습니다.

하루는 퇴근이 늦어져 밤늦게 회사를 나왔습니다. 퇴근길에는 지하도를 가본 일이 없었는데, 그날은 가라앉은 기분을 따라 땅 아래로 잠겨 길을 건넜습니다. 그 밤의 지하도는 달랐습니다. 지면 밑으로 잠긴 시큰한 공기, 길을 따라 박스로 지어진 집, 그 좁은 집 안에서도 방향을 잃은 붉은 얼굴들. 그 많은 얼굴들이 아침엔 어디에 있었는지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지면 위에서 그들을 보는 시각은 두 방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구제의 대상이거나, 퇴치의 대상이거나. 구제와 퇴치의 수직선(數, 셈 수) 위에서 나는 어느 점에 있던가. 구제하자니 비현실적인 것 같고, 퇴치하자니 너무 비인간적인 것 같고. 이렇게 0의 눈금 위에서 음도 양도 아닌 채로 서성이고 있지 않은가.

다음날 찾은 아침의 지하도는 어김없이 쾌적하게 치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늘 그 자리에 있었을 테지만 그때까지는 보지 못하던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천장 모서리를 따라 설치된 철제 선반입니다. 그 위에는 박스와 깔개들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의도한 바대로 쓰이는 것인지, 혹은 뜻밖의 용도를 찾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반을 따라 꼼꼼히 살펴봐도 배선이나 배관은 없고, 딱히 다른 용도를 떠올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 선반은 나의 기분을 이상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마치 모기에 물린 자리를 긁는 손처럼 자꾸만 끌려서, 종종 그 길로 내려가 가만히 보았습니다. 내가 땅 위에서 무심하게 저울질하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구제를, 다른 이는 퇴치를, 또 누군가는 그 사이에서 내일이면 허물 집을 짓고 있었을 겁니다. 그 치열한 교착점에서 철제 선반은 최소한의 공존 수단 같아 보였습니다.

오늘 아침 지하도에는 선반 위가 비었고, 바닥엔 검은 봉투가 놓였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하얀 쪽지가 붙었습니다. “박스 치우니 소지품 가져가셔요!” 오늘도 누군가는 싸우고 있구나.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선반을 비웠던 이도 어딘가 아픈 마음에 봉투를 남긴 것은 아닐까.

여전히 철저하게 제삼자인 나는 뻔뻔하게도 부끄러움을 다음으로 미루고 지면 위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 치 거리에, 우리 눈이 잘 닿지 않는 거기에 그곳은 분명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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