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감의 가벼움

2020년 6월 1일 밤

by 졸팍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나는 원래 조용한 편입니다. 어지간히 편한 사람들과 있지 않은 한, 목소리도 몸소리도 썩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에 띄지 않는 편입니다. 이제는 존재감마저 옅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나 봅니다.

우리 동네에 살게 된 뒤로, 한 주에 적어도 한두 번은 들리는 카페에 왔습니다. 직원분들에게도 마음에 드는 곳인지 해가 세 번이 바뀌도록 같은 얼굴에 인사했습니다. 낯을 가리는 나에게 고마운 카페입니다.

3년 동안 늘 그랬듯이 창가 구석에 앉아 주문을 하려고 직원분을 기다렸습니다. 오늘은 바쁜지 좀처럼 오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는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기척을 내는 것이 내가 터득한 방법입니다.

카운터로 가서 이미 정한지 오래인 메뉴를 괜히 찾아보고 발소리도 살짝 내봤지만, 그는 침착했습니다. 다시 자리로 가서 기다려 보아도 그의 평온은 깨지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의 잔잔한 평온함에 돌을 던졌습니다.
"저기요."
"으어어어으어어!"


"I've mastered the ability of standing so incredibly still that I become invisible to the eye."

- 영화 인피니티 워 中


물론 내가 기척이 없다고는 하지만. 물론 오늘 검은 옷을 입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놀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우리 꽤 친한데.


그러고 보면 부엌에서 요리하시던 어머니께서 나 때문에 놀라신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때는 그저 어머니께서 예민할 뿐이라 생각한 불효가 막심합니다. 지난겨울 밤길, 뒤에서 걷던 나를 보고 깜짝 놀란 이웃 여성에게 고합니다. 그때 혼자 억울해해서 미안합니다. 이제야 나를 압니다.

옛날 일본의 닌자로 태어났다면 한가락 했을 텐데. 맹수들에게서 숨어야했던 고대에는 생존력 강한 남자로 추앙받았을 텐데. 시대를 잘못 탄 남자는 구석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립니다. 눈물마저 느리고 조용하게.


#인기척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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