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가득 채우는 울음

2020년 7월 28일 밤

by 졸팍

7월의 끝을 지납니다. 여름이라고 하면 보통 6월, 7월, 8월을 말하니 벌써 여름의 삼분지 이를 지나는 셈입니다. 그런데 왠지 아직도 여름이 설익은 것만 같습니다. 처음엔 장맛비에 선선해진 날씨 탓을 해봤습니다. 그러나 곧 더위만으로 여름이 무르익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달 괜히 한낮에 조깅을 나섰다가 더위에 압도당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기억 속 볕의 날카로운 끝이 살갗을 찌릅니다. 살갗이 바싹 마를 틈도 없이 땀이 솟구쳐올라 범람합니다. 넘쳐흐른 땀방울이 까맣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떨어지면 즉시 수증기가 되어, 이미 더위로 빽빽한 공기에 눅눅함을 욱여넣습니다. 기억 속 여름엔 더위의 존재감이 뚜렷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딘가 허전합니다. 기억을 계속해서 돌려보니, 마치 소리 없는 영상을 보는 듯한 기분입니다. 그래, 그 적막함이 내 귀를 울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날의 여름에 결여된 것이 다름 아닌 울음소리임을 깨닫습니다.



기억을 조금 더 거슬러 유년의 어느 여름을 떠올려 봅니다. 한구석 깊숙이 숨어있던 이 여름의 기억에서는 더위가 별 힘을 쓰지 못합니다. 나의 호기심이 온통 나무 어딘가에서 솟구치는 울음소리를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연한 귀로 나무를 이리저리 더듬어가며 울음소리를 좇습니다. 그러면 마침내 나무 기둥에서 손가락 거스러미처럼 삐주룩 솟은 매미가 나옵니다.


가장 많이 나오는 매미는 털매미입니다. 우리 동네에는 벚나무가 많았는데, 넙데데한 몸집에 잿빛과 가까운 갈색을 띠는 털매미가 이 나무의 거친 수피와 참 닮았습니다. 그래서 벚나무에 앉기만 하면 스며들듯 눈앞에서 사라지곤 했습니다. 대신 울음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면 나지막한 내 키와 그나마 비슷한 높이에 있던 녀석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울음소리가 소박한 편이라 "찌이-"하고 높은음을 일정하게 내다가 끝부분엔 점차 낮아지며 그칩니다.


털매미의 소박한 울음과 대비되는 요란한 울음은 애매미가 만들어내는 소리입니다. 울음이라기보다는 노래에 가까운데, 시동을 걸듯 낮은음에서 높은음으로 올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며 그 주기를 좁혀갑니다. 그렇게 절정에 이르면 "찌요- 찌!"를 대여섯 번 반복하고, 이내 지친 듯 힘을 잃은 소리를 내며 마무리합니다. 방정스러운 울음소리와 어울리게 얍삭한 몸매를 가진 녀석은 초록색 무늬가 있어 눈에는 잘 띄었지만, 대체로 높은 곳에 있어 아직 짧았던 내 손이 좀처럼 닿지 못했습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털매미, 애매미, 말매미, 우화하는 말매미 / 출처 : 네이버 두산백과 &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


제일 높이 있어 가장 잡기 어려웠던 건 말매미입니다. 이름이 가장 어울리는 매미이지 않을까 싶은데, 들판을 자유롭게 달리는 야생마처럼 몸집이 크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몸, 그러니까 울림통이 커서 울음도 굵고 음이 일정해 우직한 멋이 있습니다. 심지어 등 쪽엔 금빛 가루를 뿌린 듯한 색이 나서 벌레를 좋아하던 소년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렇게 동경해 마지않던 말매미는 늘 나무 우듬지 쪽 높이 있어 한 번도 잡지는 못하고 우러러만 봤습니다. 목을 따라 내려가는 땀 줄기는 알아채지 못한 채로, 그 우렁찬 울음을 들으면서요.



말매미를 멀리서 보기만 하는 것에 익숙해졌을 때 즈음,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해 질 녘까지 놀다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나무 밑에서 꼬물거리는 하얀 덩어리를 보았습니다. 배를 내놓고 허공에 다리를 저으며 버둥대던 녀석은 갓 우화*한 말매미였습니다. 나무줄기에 매달려 허물을 벗고 몸을 말리다가 잘못 떨어진 듯했습니다. 우화 후 몸이 다 마르기 전에는 피부가 부드럽고 말랑해 약한 데다 날개를 쓸 수 없어 가장 많은 위험에 노출됩니다. 그래서 녀석을 주워와 집 안에 있는 화분에서 몸을 말리게 해주었습니다. 녀석은 안전한 가지에 매달려 다시 한번 몸을 말렸습니다. 하얀 몸에 나무의 색이 밸 때까지 숨죽이고 있는, 그 낯선 고요함이 참 신비했습니다.

*유충이 탈피하여 성충이 되는 것


사실 매미는 삶의 대부분을 침묵하며 보냅니다. 잘 알려져 있듯 우리나라의 매미는 보통 땅속에서 6~7년을 애벌레로 보내다가 성충이 된 단 몇 주만 나무로 올라가 웁니다. 계산해보면 매미가 소리를 내는 것은 일생의 단 1% 정도입니다. 조금 달리 말하면, 그 짧디짧은 순간을 울기 위해 지난한 시간을 숨죽여 보내는 것입니다. 매미가 순간의 울음을 위해 집중하는 것은 시간뿐만이 아닙니다. 삶의 99% 동안은 불필요한 날개가 퇴화하지 않은 것은 목놓아 울기에 더 좋은 나무로 가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몸의 반 이상을 비우도록 진화한 것도 더 큰 울림통을 갖기 위한 극단적인 자연선택의 결과이겠지요. 그러니까 한철, 둘도 아닌, 단 한철의 울음을 짜내기 위해 자신의 가용한 모든 자원을 끌어모은다고 해도 무리가 없겠습니다.


매미 일생의 정수 한 방울. 어둡고 축축한 땅 아래서 숨죽였던 수많은 밤의 농축, 그 울음.



매미의 기다림이 빛을 뿜어내는 시간은 섬광처럼 스쳐 갑니다. 찰나 같은 울음이 끝나고 나면 매미들은 땅으로 툭툭 떨어집니다. 땅에 부딪는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그들은 다시 고요해집니다. 땅속에서의 긴 고요함이 무색하도록 개미들에게 삽시간에 해체당하는 모습을 보면 허망하기도 하고 가엾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애착이 가기도 합니다. 그것이 비록 허망한 것일지라도, 생의 목적에 모든 것을 바친 삶을 비웃을 수 있을까. 짧더라도 찬란했던 그 울음에 왠지 마음이 쓰입니다.


올해 장마는 유난히 긴 것 같습니다. 개중에 장마의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성질 급한 매미들이 하나둘 침묵을 깨고 있습니다. 여기 서울에서는 우리 동네와 다르게 참매미가 많이 웁니다. "맴 맴 맴 맴 매애-." 곧 장마가 걷히면 매미들은 못마땅한 도시의 소음과 거만한 태양의 열기를 아랑곳없이 밀어내고 그 자리를 울음소리로 가득 채울 겁니다. 그 올곧은 진동이 귀를 울리면 나는 나의 여름이 온 것을 알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웅크려 숨죽이고 있는, 혹은 어쩌면 이미 그 찬란했던 순간을 지나 보냈을지도 모르는 이 땅의 수많은 매미를 생각할 것입니다.




혹 매미 울음이 궁금하다면,

Youtube 한국 매미 채널 中

#1 털매미 울음소리1

#2 애매미 울음소리1

#3 말매미 울음소리1

#4 참매미 울음소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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