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온전히 쉬어보려 책과 커피를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식탁 건너편, 모카가 누워 있는 작은 침대가 있다. 녀석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카는 우리와 여덟 해를 함께한 개다. 품종 증명서는 없지만, 모습만 보면 백 퍼센트 진돗개다. 모카가 태어난 지 세 달쯤 되었을 때 길에서 만난 뒤, 단 하루도 따로 지낸 적이 없다.
한참 나를 바라보던 모카가 슬그머니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눈빛이 뜨겁게 와 닿았다. 평소 그는 짖지도 않고 눈을 맞추지도 않는다. 대신 무언가를 원할 때면 그 눈으로 조용히 말을 건넨다. 오늘은 유난히 간절했다.
“왜, 뭐를 원하는데?”
모카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한쪽 눈을 반쯤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며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럴 때면 나는 안다. 그것은 간절하다는 뜻이다.
“모카, 산책 가고 싶어?”
내 말에 귀를 쫑긋 세우더니 문을 힐끔 보고, 다시 나를 바라본다. ‘지금이야’라는 표정이었다. 모카는 하루 두 번쯤 공원에 나간다. 용변을 보고, 냄새를 맡고, 세상을 탐색한다. 공원에 닿자마자 그는 코로 땅을 읽기 시작한다. 낙엽 하나하나, 풀잎 끝, 바람이 남긴 흔적까지. 하수구 철망 앞에 이르면 코를 깊숙이 들이밀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쉰다. 소리가 들릴 정도다. 냄새의 근원을 찾아내려는 몸짓이다.
개는 코를 쓸 때 안정된다고 한다. 모카의 표정은 그 말의 증거처럼 평화로웠다.
길 위의 냄새도 사람의 감정을 흔든다. 마늘을 기름에 볶는 냄새, 자장을 볶는 냄새, 묵은 김치를 끓이는 냄새는 위를 간질인다. 반대로 아스팔트를 덧입히는 냄새는 역겨워 숨을 멈추고 지나친다. 냄새는 이렇게 늘 우리 곁을 스쳐가지만, 나는 오랫동안 의식하지 않았다. 냄새에 집중하기 시작한 건 커피와 와인을 배우면서부터다.
커피를 배울 때 처음 맡은 향들은 낯설고 혼란스러웠다. 익숙한 향은 금세 알아챘지만, 모르는 향은 아무리 맡아도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코로 냄새를 들이켜고 기억의 서랍을 뒤져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블랙커런트’라는 향을 알아차리는 데 3년이 걸렸고, ‘우디(Woody)’한 향을 구별하는 데 2년이 더 걸렸다. 마른 나무와 젖은 나무의 냄새가 다르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향의 세계는 기억과 감정의 미로 같았다. 한때는 익숙한 냄새조차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장미향이었다. 시료를 맡았을 때 ‘어디서 맡아본 냄새인데…’ 하며 망설였다. 답을 듣고 나니, 그렇게 흔한 향을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향의 이름을 외워도 일주일이면 희미해졌다. 매번 ‘뭐지?’ ‘맞다, 그거지.’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묘하게 즐거웠다. 녹슨 뇌의 한 부분이 서서히 닦여 나가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카페의 공기 속에서, 커피 한 모금 속에서 향을 구별하려 애쓰는 나를 발견했다. 생활 속의 물건 냄새를 맡고 기억하려는 버릇도 생겼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내 일상에 스며든 작은 행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