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향이 남아 있을 때

by 필민

커피를 내릴 때마다 생각한다. 인생도 이와 비슷하다고.

물을 얼마나 천천히 붓느냐, 온도를 얼마나 세심하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때로는 너무 급히 흘러가 쓴맛이 나고, 때로는 머뭇거리다 식어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다시 물을 데우고, 새로운 원두를 고르고, 다시 한 번 내린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향을 찾는 과정, 그것이 내가 배운 삶의 태도다.


카페 문을 닫았을 때, 한 시대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 커피를 접으니 비로소 커피가 내 삶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직업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가 되었고, 경쟁이 아니라 위로의 도구가 되었다. 이제 커피는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 그저 내 곁에 머물며 하루를 천천히 데우는 동반자일 뿐이다.


커피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지속’과 ‘배움’, 그리고 ‘삶을 다시 사랑하는 법’에 관한 이야기다. 커피 향이 잦아든 후에도 마음 어딘가에 따뜻함이 남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커피를 내리며 이렇게 다짐한다.


식어도 괜찮아. 다시 데우면 되지.

인생도, 커피도.


이전 23화공부를 부르는 욕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