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작은 낯설고 두렵다.
그러나 두려움 속에는 언제나 가능성이 숨어 있다.
커피를 배우기 시작한 그날, 나는 다시 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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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충무로 명동 2층, '꿈과같이'라는 작은 커피점에서 사이폰을 처음 만났다. 인스턴트 커피만 마셔온 나에게 사이폰은 단순한 음료 추출이 아니라 한 편의 공연과 같았다. 유리 용기를 통해 보이는 알코올램프 불꽃, 올라가 잠시 머물다 다시 아래로 떨어지는 물의 흐름, 내려올 때 맑던 물이 커피색으로 변하는 순간. 모든 과정이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그 순간, 커피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또 하나의 문이 열렸다. 물이 오르고 내리는 단순한 움직임 안에 삶의 리듬이 있었다. '처음이라서'는 미숙함의 이름이 아니라, 가능성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 광경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에는 대학 실험실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고, 진공으로 오르내리는 물의 움직임은 마치 마술 같았다. 그렇게 커피는 내게 천천히, 그러나 강렬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이라는 두려움과 설렘이 한꺼번에 찾아온 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그때의 설렘은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지만,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고 싶은 충동이 남았다. 그리고 그 충동은 다시 나를 커피로 이끌었다. 10년이 지나, 처음 볶은 커피를 사서 모카포트로 추출하며 집에서 마시기 시작했다. 드립도 해보고, 우유를 넣어 마시기도 했다. 회사 생활을 마감하고 쉼이 찾아왔을 때, 커피는 다시 나를 찾아왔다. 오래 기다린 친구처럼, 커피는 늘 처음처럼 새로웠다. 그때 깨달았다. 낯선 시작이 주는 긴장과 기대는 시간이 지나도 반복된다는 것을.
커피와 함께한 시간이 쌓일수록, 나는 배우는 즐거움과 몰입의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단순한 음료였던 커피는 이제 나에게 배움의 장이자, 삶을 바라보는 통찰의 거울이 되었다. '처음'이라는 순간을 다시 마주하며, 나는 학생이 된 마음으로 오늘도 커피 앞에 선다. 배움의 끝이 없는 한, '처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나를 다시 살아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