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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린 Mar 16. 2023

엄마 걱정 / 기형도

나, 이런 시를 쓰고 싶다

엄마 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엄마 걱정」




기형도 시인의 시를 접하게 된 것은 최근이다. 작년, 인천버스터미널에서 친구를 기다리다 서점에 들렀고, 오랜만에 시집 한 권을 샀다. 그것이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작이 되어버린 《입 속의 검은 잎》이다.

<엄마 걱정>은 그중에 가장 좋았던 시 중 하나다. 평범하지 않은 비유들. 이를테면 "해는 시든 지 오래", "찬밥처럼 방에 담겨" ,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같은 표현은 매우 신선한 시어들이다.


나는  이 시를 읽은 후, 디카시 <장날>을 발표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엄마(젊었을 적 어머니로 부르다 시를 쓰면서 엄마라 부른다)라는 시적 주제는 내 시 창작의 영원한 요람인셈이다.


참고로, 기형도 시인은 1989년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었으나 3월 7일 새벽 4시,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파고다극장에서 소주 한 병을 든 채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인은 뇌졸중. 당시 만 28세. 안타깝게도 생일을 엿새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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