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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린 Mar 28. 2023

나는 짜장면 배달부가 아니다 / 최정례

나도 이런 시를 쓰고 싶다

나는 짜장면 배달부가 아니다 / 최정례



화가가 되고 싶었다. 대학 때는 국문과를 그만두고 미대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4년 내내 그 생각만 하다가 결국 못 갔다. 병아리를 키워 닭이 되자 그것으로 삼계탕을 끓였는데 그걸 못 먹겠다고 우는 사촌을 그리려고 했다. 내가 그리려는 그림은 늘 누군가가 이미 그렸다. 짜장면 배달부라는 그림. 바퀴에서 불꽃을 튀기며 오토바이가 달려가고 배달 소년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자 짜장면 면발도 덩달아 불타면서 쫓아갔다. 나는 시 같은 걸 한 편 써야 한다. 왜냐고? 짜장면 배달부 때문에. 우리들은 뭔가를 기다린다. 우리는 서둘러야 하고 곧 가야 하기 때문에. 사촌은 몇 년 전에 죽었다. 심장마비였다. 부르기도 전에 도착할 수는 없다. 전화받고 달려가면 퉁퉁 불어버렸네. 이런 말들을 한다. 우리는 뭔가를 기다리지만 기다릴 수가 없다. 짜장면 배달부에 대해서는 결국 못 쓰게 될 것 같다, 부르기 전에 도착할 수도 없고, 부름을 받고 달려가면 이미 늦었다. 나는 서성일 수밖에 없다. 나는 짜장면 배달부가 아니다.


《개천은 용의 홈타운, 창비, 2015》





태어나 한번쯤 접했을 짜장면에 관한 시다. 정확히는 짜장면 배달부에 관한 시다.


내가 짜장(짜장면이 아니다)을 처음 맛본 것은 여섯 살 무렵 시골 부엌에서 한참을 지지고 볶던 아버지 덕분이다. 큰 기대를 하고 맞이한 그 음식은 그때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꺼먼 음식. 더럽게 맛없게 생긴, 까만 장(춘장)에 양파와 감자 그리고 당근이 보이던(돼지고기는 없었다) 음식. 그 이름 짜장이었다.


제대로 된 짜장면은 인천으로 이사 후였다. 500 원하던 중미식당의 짜장면 맛은 아버지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맛이었다. 자르르 윤기가 흐르던 흑백의 조화와 고소한 풍미가 일품이던 그 음식이 난 좋았다.


가끔 짜장면을 먹을 때면 그때가 생각난다. 철가방으로 불리던 짜장면 배달부가 생각나는 시다. 배달료가 없던 시절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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