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는 온다

시 #5

by 김기린

<감기는 온다>


몸살감기는 연례행사처럼 찾아온다

의사는 청진기 몇 번에 감기몸살이라며

죽을병은 아니라 했고

약사는 식후 30분에 약을 복용하라며

바르는 감기약이 어디 있냐며 약봉지를 건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거리 앞 신호는 신문광고보다 지겹다

빨간색 알약 같던 신호가 바뀌고

도로를 횡단한 보도를 파고들 땐

신발 밑창엔 온통 흰 가루가 묻어날 거 같다

뜨겁게 살아왔던 날은 춥다

차갑게 살아가던 날은 덥다

감기에 걸리면

언제부턴가 그랬다

목 안은 선인장을 삼킨 듯 따갑다

오늘의 날씨는 또 틀렸다

지난겨울도 유난히 추울 거라 했다

무릎이 저려온다

발바닥에서 시작된 열기는

척추를 타고 목덜미로 빠져나간다

응급실에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는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감기에 걸리며 사랑을 배운다

우리들도 기침을 하며 커왔다

감기는 봄까지 이어져 기침소리에

매화꽃잎이 깨어났다


푹 쉬고 잘 먹고

담배는 하지 말라던

뻔한 처방전과 약봉지가 무슨 소용이람

사랑의 열병은 감기 같지만 약이 없다

세상 사람들이 너무 차갑게 살아가면

그때 걸리는 게 감기인가 봐, 하던 말

사랑하는 사람이 떨어져 나갔어도

감기는 떨어질 줄 모른다

약 먹을 시간,

전자렌지에 식은 밥을 돌린다

장롱 속 이불을 꺼낸다

보일러 온도를 올려야겠다



사진: Pixabay(Steve Buissinne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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