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Swallowtail Butterfly, 2005)
모든 탈피가 비행을 위한 건 아니다. 세월을 건너 외형을 탈바꿈하는 일을 꼭 진화의 과정으로 여길 필요도 없다. 때로 사람은, 혹은 자연은 후행하기도 한다. 전과 후를 따져 묻는 것도 결국 편의를 구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삶의 타래는 돌고 돌아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다 어느 순간부터 엑셀과 브레이크의 사용법을 구별하지 않는다. 그때, 벼락처럼 계시가 떨어진다. 선택의 순간이다. 멈춰 서거나 나아가거나. 글리코와 아게하는 나름의 방식으로 전진했다. 저마다의 불행으로 복잡 다난한 도시에서 선명하지 않은 삶은 죽음과 다름없다. 또 하나 생존의 법칙이 있다면 무욕이다. 언어로 사람을 분간 짓고 위계의 벽을 세운 다운타운 골목 사이에서 삶을 태우는 과정에 돈은 필요 없다.
돈에게는 이름이 없고 얼굴이 없고 그림자가 없다. 선명하게 타오르기 위해서는 허욕을 버려야 한다. 그건 결국 차오르는 삶을 끊임없이 비워내라는 하나의 가르침이다. 알고는 쉽게 택할 수 없는 길, 아게하는 본의 아니게 연대를 택했다. 페이 홍에 대한 사랑은 아게하에게 있어 한 세상을 사랑하는 일과 다름없었다. 하나의 관계, 혹은 사람, 혹은 기억, 그 외 등등, 자기 바깥에서 그 무엇이라도 치열하게 구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일부를 사랑하다 세상을 구하게 되는 것이 인생사의 낮고 깊은 깨달음이다. 그렇게 지옥 위에 세워진 천국, 엔타운. 어쩌면 썩 괜찮은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나 자신에게만은 배반 당하지는 않는 삶일 테니.
린다 린다 린다 (Linda Linda Linda, 2006)
삶의 파란은 가볍고 재빠르다. 남의 것으로 남아 있을 때는.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즐거움은 대부분 몰두의 영역에 위치해있다. 머무름은 한 세월, 혹은 타고난 특별한 재능이다. 나는 한사코 그 재능을 부러워하며 살아왔다. 지루함의 시간은 빠르고, 언제나 애정은 예정 시간을 넘어 종착역에 도착하곤 했다. 지루함의 시간을 늦추는 건 오로지 새로움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뭐든 어렵고 낯설었던 시절에 대한 향수는, 콘텐츠 소재로써 일종의 반칙과 다름 없다. 늦여름, 불꽃 놀이로 수놓인 하늘 아래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했다. 풋사과를 깨물듯 참신하고 독창적인 실루엣이 여전히 생생하다. 까놓고 보면 클리셰에 불과할지라도 그 장르, 나름의 멋이 풍겨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