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는 어떻게 선택하고 보내야 할까
태국에 가기로 결정하고 나서 남편과 나는 아이 학교 선택이 고민이었다. 어느 학교로 어떻게 보내면 되는지에 대한 정보도 많지 않았고, 이 고민을 하던 때에는 내가 태국으로 갈 수 있을지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없는 때였기 때문에 쉽사리 학교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 행여나 못 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으로 밤 잠을 설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불안 때문에 학교 선택을 망설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영국계 국제학교는 8월에 신학기를 시작하는데 회사 내규상 7월에나 나올 인사명령을 기다렸다가 학교를 가려면 어디든 받아주는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되는 대로 어디든 가야 하는 것은 9살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
이것만은 피하고자 미리 준비를 시작했는데 한동안 지긋지긋했던 코로나가 나를 도왔는지 학교에 따라 신규 입학생 유치를 위해서 입학금을 면제해 주는 곳이 있어서-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입학금, 학비가 별도인 경우가 많다-경제적인 부분에서 조금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은 아이의 교육과 관련해서는 그의 관심사 밖이라 아무것도 몰랐다. 홀로 한글을 깨치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언어발달이 좋으니 적기 교육으로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나에게 과하다며 핀잔 아닌 핀잔이었는데 그는 아이의 태국학교 선택부터는 무척 고무되어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유학원을 통하지 않고 학교와 직접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테스트 날짜를 정하는 것 모두 남편이 자처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시내에 있으면서 통학거리가 썩 멀지 않을 학교를 알아봤는데 몇 곳 없어서 그중에서 선택하기로 했다. 아이의 입학 테스트와 관련된 준비나 학교와 연락하는 것은 모두 남편이 맡아주었다(웬 떡인가 싶었다).
바쁘게 출장이며 업무로 하루하루가 금같이 지나던 어느 날이었다. 광안대교를 향해 운전하던 중이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른편으로 시원하게 해운대가 열리며 아이의 학교 입학 승인 소식을 들었다.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미래가 하나씩 실현되고 있어 실감 나지 않았지만, 영어로 의사소통은 언감생심 흔히 말하는 파닉스도 안 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기에 국제학교 입학 승인은 더욱 실감 나지 않았다.
아빠와 몇 주간 특훈으로 아이는 생애 첫 입학시험을 치렀고 학교에서 입학 가능을 알려왔다. 아이는 학교 입학을 무사히 통과했는데 엄마가 멈춰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태국을 향한 나의 진짜 여정이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인사명령이 아직 나오기도 전에 자녀 학교 입학 통지가 먼저 오다니! 기쁘고 대견했고 어쨌거나 우리는 태국으로 가야 했다.
이렇게 시간이 극적으로 흐를 수 있을까. 태국에 도착한 날로부터 2주 차에 이사까지 모두 끝내고 가족을 맞이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아이의 등교 날짜가 다가왔다.
국제학교는 대부분 교복을 입고 다니는데 학교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 해서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할 겸 토요일 아침 아이와 함께 학교로 갔다. 설렘 가득한 아이의 눈빛이 학교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학교는 생각보다 출입부터 쉽지 않았다.
출입카드 없이는 아예 학교 입장 자체가 불가능했다. 새로 온 학생임을 보안팀에 설명하고 나서 안내를 받아 행정실로 갔다. 출입카드용 사진을 찍고 시끌한 강당으로 갔다. 과학 선생님이라고 밝힌 남자 선생님의 발표로 학교 전반에 대한 이야기와 학교 운영 관련 어플 설명을 들었는데 어플로 자녀의 등하교 시간, 현재 학교에 머무르고 있는지 여부, 학비나 수업신청 여부 등을 한 번에 알 수 있어서 편리해 보였다.
간략히 설명을 듣고 교복을 고르러 갔는데 교복으로 입을 스커트와 셔츠, 체육복, 매주 있는 수영수업에 입을 수영복은 물론 영국계 학교라 그런지 하우스 티셔츠도 골라야 했다. 옷은 그래도 입어보고 사야 하는 것인지라 한편에 마련된 텐트형 피팅룸에서 아이와 나는 더위와 사투를 벌이며 여러 벌의 유니폼을 입고 벗기를 반복했다.
평소 옷을 사기 위해 입고 벗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는 아이였지만 이날만은 달랐다. 한가득 교복으로 꽉 찬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드디어 등교하는 첫날이 밝았다.
아직 시차적응을 못한 탓에 온 가족이 6시 전에 일어났다. 간단하게 우유, 달걀프라이, 빵, 과일, 오이로 아침을 차렸지만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셋이서 아침 운동으로 국민체조를 했다. 우습지만 시작이 좋았다.
가방에 물병을 챙겨 넣고 교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을지 샌들을 신을지 잠시 고민했다가 양말에 운동화로 골랐다. 아뿔싸, 모자도 챙겨 다녀야 하는데 깜빡하고 두고 나왔다. 학교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가 집 근처 쇼핑몰에서 정차하기에 설레는 발걸음을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옮겼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대기하고 있었고 두 번째 차량에 탑승했다. 큰 도로에 들어서자마자 교통체증이 시작되었는데 어라 셔틀버스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간다. 아이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꺄륵 웃었다. 내가 집을 꽤 잘 고른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집 앞을 지나는 셔틀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어 세우고 바로 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학교로 가는 길 내내 긴장감과 호기심이 교차하는지 아이는 꼭 잡은 내 손을 놓지 않아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학교에 도착하고 아이들이 우르르 내렸다. 아이는 설렘에서 원망 가득한 얼굴로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학교에 가야 하다니, 한국은 여전히 방학인데 얼마나 억울한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을까.
학교에 가기 싫지만 가야 하는 걸 너무나 잘 알아 수긍하고 꿋꿋하게 앞선 아이들을 따라가는 아이를 보니 나도 눈물이 솟구쳐 올랐지만 꾹꾹 눌러 담고 학교 출입용 아이디카드를 받아 들었다. 잠시 어디로 가야 할지 찾느라 통로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런 모습에 익숙한지 키가 큰 선생님이 자연스레 우리를 안내해 주어 출입증을 찍고 학교로 들어서니 수영수업을 하는 수영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이들이 손수 키운다는 정원과 학교를 가로지르는 꽤 큰 연못이 나왔다. 그리고 곧 더 이상 내가 함께 들어갈 수 없는 곳까지 다 달았다. 분명하게 부모님은 여기까지라고 쓰여있었다.
눈물이 빼곡히 차올랐지만 굳은 의지를 다졌는지 아이는 하품을 했다고 너스레를 떨며 눈물을 훔쳤다. 툭 내 손을 놓았을 때 마침 나타난 선생님 손을 잡고는 총총히 가버렸다.
“나 갔다 올게.”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스스로 오롯이 서야만 하는 세상으로 가버렸다. 순식간에 나는 혼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