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국제학교 선택기준
아이가 학교에 가는 이 당연한 일이 무슨 대수인가 싶지만, 영어로 이루어진 세상을 처음 마주한 데다, 다른 학교에 비해 한국인도 적어 알파벳만 겨우 아는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무척 걱정이었다.
식당에서 물 달라는 말도 못 하는 부끄럼쟁이가 밥은 잘 챙겨 먹었을지,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하루를 보냈을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론 첫날 학교 이야기를 들을 생각에 기대도 되었다.
14시 40분 하교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나오지를 않는다. 이쪽에서 올지 저쪽에서 올지 몰라 두리번거리느라 내 목이 한 폭정도 늘어날 때쯤 돼서야 저 멀리서 쫄랑쫄랑 걸어오는 아이의 가벼운 발걸음을 보니 그제야 마음이 솜사탕처럼 가벼워졌다가 아이를 한번 안아보고서야 뜨거운 볕에 녹아내린 솜사탕이 되어 찐득하게 아이에게 들러붙어버렸다.
“오늘 어땠어? 밥은 먹었어? 물은 부족하지 않았고?”
한꺼번에 쏟아낸 내 질문에 아이는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급식도 맛있었고, 다 즐거웠는데 무슨 말인지는 잘 못 알아들었어”라고 했다.
내 첫 출근 보다 아이의 첫 등교가 더 짜릿했다. 아이에게 상을 주듯, 오후 나머지 시간은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수영장에서 보냈다. 한참을 놀다가 아이가 과제가 있다며 노트를 가져왔는데 이름이 이상하게 쓰여있었다. 그제야 ‘아이에게 이름도 제대로 안 가르치고 학교에 보냈구나’ 싶어 깔깔 웃었다. 두렵고 불안했던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피곤했는지 모두 일찍 잠들었다. 이튿날 아침. 아이는 코피가 뚝뚝 흘렀다. 우리는 당황하지 않고 코피를 닦고 조금 진정한 뒤 학교로 갔다.
학교를 선택하지 못해 고민하던 시간, 아이가 잘 적응해 줄까 걱정하던 순간들이 무색하게도, 아이의 방콕 국제학교 생활은 어느덧 일곱 번째 학기에 접어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처음과 같은 영국계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고 방콕 시내에서 통학 가능한 곳이지만 같은 학년에 한국인 학생은 한두 명으로 많지 않다.
10월이 되면 한국에서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코로나로 경험해보지 못했던 핼러윈을 즐기고,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공연도 참여해 아이의 어린 시절이 점점 풍성해지고 있어 이 학교로 선택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잦은 코스튬 행사에 조금 피곤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한 학기에 한 가지 주제를 다양한 방향으로 토론하고 생각해 보는 수업은 무척 인상적이다.
각 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한 학기 동안 공부한 주제로 친구들과 협동하여 작품을 만들고, 엑스포를 열어 부모님을 초대한다. 이렇게 아이들이 한 가지 프로젝트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보는 경험을 가지는 것도 매력적이다. 다시 학교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해도, 나는 주저 없이 이 학교를 선택하지 않을까.
학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 많지만, 비용면을 제외하면 인가 학교 법인 여부, 접근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태국에는 인가국제학교와 비인가 국제학교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를 선택할 때는 ‘인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비인가 국제학교에 보냈다가 한국에서 학력 인정을 받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인데 교육 목표나 개별 프로그램이 좋아도 비인가 국제학교를 선택할 때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다음 접근성이다. 태국도 다른 아세안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교통정체가 심각하다. 그래서 학교와 집이 가까우면 좋은데 이런 이유 때문인지 한국인 사이에서는 NIST(니스트)의 명성이 꽤 높다. 아속(Asok) 지역에 위치해 있고 명문대 진학률이 높다는 강점이 있다.
시내에 위치한 학교 중에는 Bangkok Prep(프랩), The American School of Bangkok(ASB), St.Andrews International School Bangkok(STA) 등이 인지도가 있다. 또, Bangkok Patana(파타나)는 방나, ISB는 논타부리에 있어 학교 규모는 크지만 시내와 다소 거리가 있다. 물론, 내가 언급한 학교들 외에도 훨씬 더 많은 국제학교가 있다.
학교를 선택하고 나서 확인해야 할 부분은 학교마다 학생 모집시기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만약 입국날짜는 다가오는데 아직 학교를 정하지 못했다면, 연중 수시로 학생을 모집하는 학교를 찾는 것이 더 빠른 방법일 수 있다.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아속(Asok) 지역을 중심으로 보면 니스트(NIST)에 자녀를 보내고 싶어 하는 학부모가 많지만 모집시기가 맞지 않거나 자리가 없는 경우가 흔하다. 이럴 경우, ASB나, AISB 등 근처에 있는 가까운 학교에 자리가 있는지 먼저 확인해 보고, 우선 이 학교에 다니다가 나중에 마음에 드는 학교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니스트(NIST)가 정답은 아니지만, 명성이 높다 보니 많은 학부모들이 이렇게라도 자녀를 보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반면에, 내 경우를 자세하게 쓰자면 2023년 8월에 태국으로 이사했지만, 학교는 2022년도 연말부터 연락을 취했다. 당시는 코로나로 입학금이 면제되는 특별한 기간이었기 때문에, 테스트만 통과하면 무조건 입학시키겠다는 마음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계획적으로 일이 잘 풀린 것 같지만 나의 추진력보다는 아이의 힘이 컸다.
지난 여섯 학기 동안, 아이는 모국어만큼이나 영어도 늘었다. 국제학교에 보내면 자연스럽게 내 아이의 영어가 늘 것이라 기대하는 부모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선배 엄마들로부터 자주 들었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국제학교 가성비 떨어진다” 는 것이었는데, 그 숨은 의미는 이렇다.
‘문법이 틀리더라도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되지만, 한국 입시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영어 실력을 기르려면 따로 공부를 더 시켜야 한다 ‘는 이야기였다.
아이는 소위 ‘영어 나머지 반’이라고 불리는 EAL 프로그램을 두 학기 만에 졸업했다. 보통은 1년 또는 1년 6개월을 꼬박 채우는 경우가 많고, 이수 기간은 선생님의 평가에 따른다.
지금은 영어 실력이 점점 더 자연스럽게 향상되고 있지만, 반대로 한국어는 뜻을 모르는 단어가 점점 늘고 있어서 두 언어 간의 적절한 전환이나 대응이 원활하지 않은 수준이 되고 있다. 한국어에 적합한 단어를 그때그때 떠올리지 못하게 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한국 교과과정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래서, 한글책 독서도 결코 소홀해서는 안된다.
처음 국제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이의 영어 실력은 객관적으로 평가를 받은 적이 없어 흔히 말하는 리딩 점수나 스피킹 점수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다만, 파닉스도 엉망이라 단어를 읽는 데 어려워했고, 일상적인 대화는 아예 불가능했다. 주변에서는 방과 후에 영어 선생님과 추가 수업을 통해 아이의 영어실력을 끌어올리려 열을 냈지만, 우리 집은 조금 달랐다. 집으로 선생님을 부르거나 학원에 보내는 대신, 매일 아이의 수준에 맞는 영어책 읽기와 영어 말하기 프로그램을 활용했으며 화상 영어 수업도 병행했다.
첫 학기가 끝나고 짧은 방학 뒤, 2학기 첫날. 아이가 밝은 얼굴로 집에 돌아와 “선생님 말씀이 이제 좀 들려”라고 말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수준에 맞는 영어 책 읽기를 조금 더 강화하고 중등 수준의 영어단어도 함께 시작했다.
잘 적응해 주고 있는 아이에게 가장 칭찬하고 싶은 점은, 매일 한 페이지씩이지만 꾸준히 공부를 이어가는 끈기를 발휘해 주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학교 수업 내용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당황해했지만, 조금씩이지만 매일 영어 책을 읽고, 단어를 외우고, 화상 영어 수업에도 성실히 참여했다.
그 덕분에 이제는 선생님이나 친구들과도 한결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게 되었고, EAL도 졸업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긴 듯하다.
요즘엔 식당에서 영어로 주문하거나 문제 해결을 요청하는 모습도 제법 능숙해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의 영어가 내 영어를 능가한 지 꽤 됐다. 나도 비즈니스 영어를 다시 공부할 때가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매우 슬프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방콕에서 손꼽히는 유명 국제학교는 아니지만, 단지 학교에만 보낸다고 해서 국제학교 교육의 ‘효능감’을 기대하긴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 역시 함께 공부하고, 아이의 말에 끝없이 귀 기울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전부터 해오던 생각이지만, 나는 여전히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