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지러운 줄 알았더니!?
잘 풀리지 않는 업무 때문에 한국과 전화로 씨름을 하던 중 갑작스레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이때까지는 어지럼증이 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급하게 끊고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내 어지럼증이 아니라 주위가 웅-웅-, 끄어억 하는 소리로 가득 차면서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고층 빌딩들이 그야말로 춤을 추고 있었다.
지진이다!
직원들에게 “모두 책상 아래로 숨어!”라고 말하는 동시에 충전 중이던 전화기를 뽑아 들고 한국에 다시 전화를 해 지진이 나서 대피하겠다고 짧게 전하고 그 사이 남편에게도 전화를 했다. 짧게 무사함을 확인한 뒤 흔들림이 멈추자 즉시 직원들에게 핸드폰만 챙겨서 당장 이곳을 빠져나갈 것을 지시했다. 직원들은 여전히 어리둥절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뉴스에서는 ‘방콕 대지진‘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진앙은 미얀마였다. 진앙으로부터 1,000km도 더 떨어진 방콕이 왜 공포에 휩싸인 것인지 서울에서는 여전히 의뭉스러워했다.
사톤대로 주변은 길을 따라 고층 빌딩이 줄지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 빌딩들 전체가 여러 방향으로 흔들거렸다. 흔들리는 모습이 흡사 위태로운 도미노로 이루어진 숲이 이리저리 몸을 흔들어 대는 것 같았다. 하나가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일이었다. 그 순간 이곳에서부터 가능한 멀리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장재가 떨어졌고 벽이 갈라졌다. 그리고 짜뚜짝 시장 근처에 있던 건물이 무너지는 영상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퍼져나갔다. 수백여 명이 건물잔해 속에 꼼짝없이 갇혀 다치고 죽는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다.
우리들은 한 번도 열어본 적 없는 비상구 문을 열고 건물을 빠져나가려 끝도 없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겨우 건물에서 빠져나왔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저 고층 건물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걸었다.
그 사이 짜뚜짝 건물 붕괴영상은 한국에 까지 전해져 사태의 심각성을 나를 대신해 확인시켜 주었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모든 대중교통이 멈추었다는 공지와 놀라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속에 다시 회사로 가서 차를 가지고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정신이 아니었음이 분명했다.
여진의 가능성을 누구도 알 수 없는 데 다시 빌딩숲으로 돌아가다니!!! 게다가 회사 건물이 안전한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데!
그럼에도 나는 건물이 폐쇄되어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것보다 빠르게 차를 꺼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건물 앞에서 주차장으로 가도 될지를 살피는 중에 아직 통제되지 않는 어수선함을 무기로 이를 악물고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5층. 내가 주차한 곳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숨이 턱 막혀왔지만 언제 여진이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온 힘을 다해 차를 가지고 빠르게 건물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뛰어오느라 힘들었던 직원들을 차에 태우고 도로 위로 튀어 나가듯 내려갔다. 도로에 나오자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도로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고 회사에서 어떤 지시가 내려지지 않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 무리로 가득했다.
설상가상으로 데이터 송수신도 원활치 않아 잠시동안이었지만 가족과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그래도 직원들을 차례로 집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짧은 거리를 도로로 쏟아져 나온 차들 틈에 4시간이 넘도록 운전을 하며 겨우 집에 도착했다.
가족과 상봉하고서야 몸이 긴장 속에 있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혹시 모를 더 큰 여진 때문에 남편이 아이와 피난을 위해 짐을 꾸려둔 상태였는데 내 귀가가 늦어지니 많이 답답했을 것 같아 미안했다.
한동안 만나는 사람들 마다 안부를 묻고 어떻게 피난을 했는지 에피소드로 이야기 꽃이 무르익었는데 고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기도 했고 식사 중이기도 해 저마다 지진과 관련된 기억을 더듬고 공유하며 살아있음에 감사와 안도를 했다.
가끔 이때를 곱씹으며 다시 이런 재난을 만나면 나는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이 옳은 가를 생각해 본다.
집에 갈 방법이 막막한 직원을 집까지 데려다준 것은 나의 과도한 책임감이었을까, 인류애 측면에서 당연히 했어야 할 행동인가? 그렇다면 가족은 누가 지키나!?
그때 내가 틀렸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조금 더 철저해야 했음을 반성한다. 길은 어디에나 있지만 늘 내가 플레이어가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족과 회사를 책임지는 것 중에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저울질을 계속하게 되는 것은 안타깝지만 재난상황에서는 무조건 가족을 먼저 챙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함을 다시 다짐한다.
이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분들께 위로를 전하며 부디 따스히 치유되기를 바란다.
*사진 설명:직원을 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가는 길에 찍은 사진, 전진은 어려웠지만 한국에서 걱정해 주시는 많은 분들 덕에 힘을 얻어 집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