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을 모르고 먼훗날만 기약했다.
매년 11월이 되면 회사에서 무료로 다음해 달력을 나눠줬다. 다음해 달력이 나오면 나는 부랴 부랴 내년 일정을 확인했다. 업무상 일정이 아니라 휴가 일정이었다. 연휴는 없는지, 징검다리 휴일은 없는지 체크해서 최상의 휴가일을 조합했다. 그리고 그 날을 우리 가족의 휴가일로 정했다.
열심히 휴가를 챙겼다. 직장인에게 있어 휴가만큼 달콤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남들이 다 일하고 있는데 나 혼자 회사를 등지고 떠나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팀내에서 팀원들과 불문률을 만들기도 했다. 서로의 휴가를 온전히 인정해주기 위해서 휴가 중에는 절대로 연락하지 말자고 했다. 그래서 휴가 전에 일이 상당히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좋았다. 휴가 중에 회사 생각은 1도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휴가의 목적지는 항상 비행기를 타고가는 곳으로 정했다. 하다못해 제주도라도 갔다. 돈이 남아 돌아서라기보다는, SNS에서 자랑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이 좋았다. 휴대전화를 비행기모드로 바꾸고, 비행기가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나는 회사와 완벽하게 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낯선 곳에 나를 데려다 놓음으로써 그동안의 스트레스도 잊을 수 있었다. 물론 돌아올 때 귀신같이 다시 찾아오는 스트레스이긴 하지만 말이다.
휴가가 끝나면 헛헛한 마음이 컸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다음 휴가를 기약했다. 그리고 연말을 기다렸다. 연말이 지나면 새로운 해에 새로운 휴가가 생기니까. 게다가 연말에는 이런 저런 수당들도 나와서 지갑도 두둑해지니 마음도 좋았다. 그렇게 나는 매년 휴가를 기다리고, 연말을 기다렸다.
나는 정년 퇴직도 기다렸다. 정년 퇴직이 몇 세인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적당한 시기에 퇴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 말하는 퇴직은 다른 회사로의 이직을 말하거나 새로운 형태의 직업을 만들어 내는 창직 또는 창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퇴직, 즉 노동의 종말을 의미했다. 빨리 일을 그만두고 띵가띵가하면서 놀고 싶었다.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둘째가 성인이 되고 나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그때부터 최소한의 노동으로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하며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때쯤이면 회사를 그만두고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5세쯤되면 자유로워지려나?
그래서 빨리 연말이 지나가고 휴가가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빨리 빨리 지나가서 내가 가진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먹고 나서부터는 나이 먹는 게 슬프지 않았다. 마흔이 온다는 게 크게 우울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빨리 늙어가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빨리 빨리 그냥 현실이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 뿐이었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이 죽음과 가까워가는 것이란 사실도 잊은채 말이다.
얼마 전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을 소개 받았다. 물론 아직 읽진 못했지만 누구에게나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책일 듯 싶어 조만간 읽어볼 계획이다.
신경외과 의사로서 치명적인 뇌 손상 환자들을 치료하며 죽음과 싸우다가 자신도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죽음을 마주하게 된 서른여섯 젊은 의사 폴 칼라니티의 마지막 2년의 기록. <교보문고 책 소개 참조>
서른 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마주하게 된 죽음, 하지만 책의 작가는 죽어가는 대신 끝까지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2년 동안 이야기를 정리해가며 다가오는 죽음에 대비했다. 아내와 오랜 상의 끝에 인공수정을 통해 딸도 얻었다. 죽기전까지 그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쓴 듯 보였다. 죽음 앞에서 필사적으로 쓴 책이었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고, 결국은 그의 아내가 마무리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슬프기도 했다. 마무리 짓고 싶은 작가의 마음을 하늘이 외면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많이 부끄러웠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항상 먼 훗날을 기약하며 오늘 하루 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던 것이 안타까웠고 스스로 한심해 보였다. 지금 현실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었던 말도 생각났다.
"내가 헛되게 보낸 하루가 어제 죽은이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이다."
현재를 제대로 즐기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Carpe Diem이란 말이 생각났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나와 유명해진 이 말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봤다.
사실 나는 이 말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었다. 현재를 즐기라는 말이 최근들어 소비적인 문구로 변질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금 제대로 놀아보자, 즐겨보자 이런 의미로 Carpe Diem을 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숨결이 바람 될 때> 이야기를 들으며 현재를 즐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현재를 즐긴다는 것은 현재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순히 "즐긴다"라는 것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지금의 순간이 과거와 어떻게 연결되고 앞으로의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맥락을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래의 "경제적 자유"를 위해서 지금 각박하게 살아가는 것도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현재를 즐기는 삶이 될 수 있다. 각박하게 살아간 과거 때문에 잠시 쉬어가는 것도 의미를 따지고 보면 충분히 즐기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휴직하기 전 직장에서 나는 직장에서의 생활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크게 고민하지 못했었다. 그냥 힘들다, 스트레스 받는다고 생각하는 게 전부였던 것 같다. 와중에 일이 잘되면 우쭐해 하며 즐거워 한 게 고작이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다. 휴가도 마찬가지였다. 휴가를 단순히 도피로 생각했기 때문에 노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가치로 남았었다.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려 하지 않았다.
진정한 의미의 Carpe Diem이 되지 못한 듯 싶었다.
대학생이 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학 때 아주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빨리 직장인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빨리 직장인이 되면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직장인이 되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즐겁지 못했다. 돈은 공짜로 버는 게 아니었다. 돈을 버는 만큼 의무와 책임이 따랐다.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진짜 퇴직을 하게 되는 시점이 와도 비슷할 것이다. 그때 또 그때 나름의 고민을 갖고, 삶의 무게에 허덕이며 살고 있을지도 모를 것이다.
휴직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되돌아보니, 힘들 때 그리고 힘든 것을 극복하거나 좌절할 때 삶은 나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단순히 힘들고 짜증났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그 때 그런 힘든 일들이 나에게는 각기 다른 의미로 나의 나이테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그것을 더 빨리 알았더라면 더 선명한 나이테가 생겨났을 것 같은데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휴직을 하고 다행히 지금은 현재를 즐기고 있다. 물론 때로는 몸이 힘들기도 하고, 잘하고 있는 건가 회의감이 들 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휴직하기 전의 삶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느끼고 있는 듯 싶다. 삶이 던져주는 "의미"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고민을 하게 해 주는 지금 이 시간이 고맙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필요할 듯 싶다.
그냥 먼 미래를 그리며 살기 보다는 현재의 의미도 따져가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