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는 선배가 될 수 있기를...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있다. 90년대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그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에서, 이 책은 사람들의 시선을 확 잡았다. 80년대생 작가가 분석한 90년대생에 대한 자세한 설명 덕분에 이 책은 사람들에게 인기 또한 높았다. 나 또한 책이 나온 순간부터 이 책에 대해 궁금해 했고, 서평도 많이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이 책을 다 읽진 못했지만 중간 중간 읽어가면서 90년대생들이 81년생인 나와 확실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자라 온 환경도 달랐고 받아 온 교육도 달라서였는지 텍스트를 읽어가며 확실한 세대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작년, 일을 하면서 90년대생을 처음 만났다. 나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다른 계열사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내가 생각했던 90년대생의 모습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유연했다.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았으며, 선배들이 지시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잘 따랐다. 싹싹하고 예의바른 모습을 보면서 90년대생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 달라진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 90년대생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지금 자기가 열심히 하는 것이 결국 자기와 함께 일하는 상사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 아니냐며, 솔직하게 업무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였다. 집단 성과가 곧 나의 성과라고 생각했던 나의 문제였을까? 그의 솔직한 이야기가 어쩐지 나에게는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성과"에 대한 주제에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모습이 조금은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성과”라는 것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 한참 생각했다.
90년대생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나의 선배들 또한 어릴적 나를 바라볼 때도 비슷한 느낌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70년대생 선배들에게는 80년대생인 내가 당차보이기도 하고 나의 생각을 확실히 이야기 하는 게 어이없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90년대생, 80년대생 이런 시대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선배와 후배 간의 온도차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태고적부터 세대간의 갈등은 있었다고 하던데 세대 간의 생각과 행동의 차이는 당연한 것은 아닐까?
90년대생 후배를 들먹이며 선배, 후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직장에서 떨어져 나와 휴직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선배답게 행동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후배들에게 선배답지 못하게 행동한 나 자신에 다해 반성이 됐다. 집안에서도 막내, 회사에서도 막내를 주로 차지했던 것이라 핑계를 대긴 했지만 분명 아쉬운 대목이긴 했다.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맨 처음 선배 역할을 하게 되었던 시절이었다. 29살이 되던 해 은행에서 일하던 시절, 후배 한 명이 내 밑으로 들어왔다. 소위 말하는 “부사수”였다. 나는 그 친구에게 하나씩 내가 하던 일을 가르쳤다.
그 친구는 참 얌전했다. 내가 이야기 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친절하지 않은 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잘 따라왔다. 혼자서 검색을 해가며 척척 해가는 친구였다. 하지만 나는 그때 선배가 되기 위한 자질이 없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도 못한다고 내가 후배였을 때 선배들에게 하나 하나 친절하게 가르침을 받았던 것과 달리 나는 후배에게 하나 하나 친절하게 가르쳐 주기 보다는 그냥 빨리 나처럼 해주기만을 바라기만 했었다. 그래서였는지 친절한 가르침보다 호된 꾸짖음이 잦았다. 때로는 감정적으로 그 친구를 대하기도 했었다. 후배라는 사실 자체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기도 했도, 나와 성향이 달라 싹싹하지 못한 모습이 답답하기도 했다. 제대로 따라오지 못해서 내가 뭔가 손을 써서 그의 일을 수정해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짜증을 내기 일쑤였고 그 친구는 결국 나의 눈치를 보느라 애를 써야만 했었다.
다행히 나는 그 친구와 만난 지 1년만에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나의 호된 선배노릇 덕분에 나 없이도 일을 잘 처리하게 되었고 나름 그 부서의 에이스로 거듭나 사람들 사이에도 인정받게 되었다. 나를 좋아하는 선배들은 나의 호된 가르침이 없었다면 그 친구가 오늘날의 모습으로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나를 추켜세우기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얼마나 그 친구에게 내가 폭력적이었는지 반성이 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 많았다.
그 친구 이후에 나는 특별히 내 밑에서 일하는 "부사수"라는 군대적인 용어를 가진 후배를 만난적이 없었다. 회사에서 대부분의 일들은 "팀원-팀장" 체계에서 일을 했고 나 또한 팀원이었기에 각자 독립적인 역할을 하는 후배들이 있었을 뿐이지 내가 누구를 가르치는 그런 선배가 되지는 않았었다. 그러다보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하나 하나 가르쳐야 했던 그 친구에 대해 후회와 미련이 많이 남기는 한다. 그때 내가 좀 더 "사람이 되었더라면" 좀 더 인간적인 선후배가 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기회가 되면 그 때, 내가 갈궜던 그 후배에게 미안했다라고 진심을 다해 사죄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서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나의 관점이 아닌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만약 성공의 비결이 존재한다면 그 비결은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고 자신의 관점 뿐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으로 상황을 보는 능력이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주장하면 독선이 되고 아집이 되지만, 상대방의 관점에서 시작하면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된다. 인간관계 모든 것에 이 말이 유효하다. 그리고 선후배 사이에서도 더더욱 이 말이 중요하다. 특히 상대적으로 우위의 입장에 있는 선배는 후배의 관점에서 후배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왜 후배는 그런 생각을 하려고 하는지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선배고, 후배이기 때문에 선배의 말을 후배가 따라야 한다는 생각 자체는 오히려 불신만을 조장할 뿐이다.
휴직이 끝나고 복직을 하게 된다면, 후배의 말을 잘 듣는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하지만 동시에 회사에서 선배 노릇을 할 수 있을런지 회의감이 들때도 있다. 제대로 하려면 일로써 엮인 팀장-팀원 관계의 후배를 만나야 할텐데 팀장이 될 수 있을지 애매하기 때문이다. 이미 휴직을 한 상태라서 승진에 대해 큰 뜻이 없기에 어쩌면 그 자리에 못 오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도 가끔씩 한다. 잘하면 회사에서 후배들을 데리고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혹시라도 운이 좋아 팀장이 되어서 후배들을 내 팀원으로 챙기는 자리에 오른다면, 꼭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끼고 가르칠 후배들을 만난다면, 나를 중심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보고 싶다. 나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 보다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아내가 부부싸움을 하면서 내게 했던 말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이 말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을 만나면 꼭 이 말을 하는 선배가 되고 싶다. 내가 가진 생각이 분명 맞다고 생각하겠지만, 후배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선배가 되고 싶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위해서는 진심을 담아 상대방의 이야기를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렇기에 좋은 선배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해야 할 말이 이것이 아닐까 싶다.
90년 생이 아닌, 2000년대생이 온다 하더라도 나 또한 런 마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