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와 목적에 대하여
휴직을 하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남성으로서 휴직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만나 위안를 얻었고, 힘을 받았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라 고민의 형태도, 새롭게 시작하려는(퇴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가짐 또한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만난 휴직자 중 인상 적인 한 분이 있었다. 그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아침에 가장 먼저 출근했고, 저녁엔 가장 늦게 퇴근했다. 외국계 회사라 해외에 있는 본사에서 저녁에 자료를 요청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언제 어디에서든 회사에서 요청한 일은 당일에 처리했다. 야근은 필수였다. 회사 업무가 우선이었기에 가족들에게 쌀쌀하게 대하는 것은 덤이었다. 업무 시간 중 집에서 전화가 오면, 바쁘다는 이유로 빨리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했다. 그의 목표는 "임원"이었다. 회사에서 누구보다 빨리 그리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었다.
열심히 일하던 그에게 번아웃(Burn out)이 찾아왔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시점부터 힘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편하게 직장을 다니는데, 왜 자기만 고생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됐다. 우울증까지 겹쳐왔다. 옥상에 올라가면 자꾸 아래만 쳐다보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안되겠다 싶었고 아내와 상의를 한 끝에 휴직을 결정했다.
휴직을 하고 경제적으로 쪼들린 삶을 살고 있지만, 다행히 그는 심신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가족에게도 먼저 다가갔고, 그간에 회사에만 열심이던 자신에 대해 진심을 다해 아내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지금은 긍정의 에너지를 전파하는 사람이 되었다. 조만간 복직을 앞둔 그는 더이상 임원이 되겠다는 꿈을 갖지 않게 되었다. 복직을 하게 되도 예전처럼 열심히 일하겠지만, 자리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 그에게 어디까지 올라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자신의 회사 생활을 돌이켜볼 수 있었다. 그처럼 열심히 일하진 않았지만 나 또한 그처럼 "임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회사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경쟁을 좋아하는 나의 기질도 한 몫했다. 누군가와 싸워서 이겨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내게 임원의 자리는 승리자만이 쟁취할 수 있는 전리품이었다.
나름의 로망도 있었다. 누군가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여유있게 책을 읽고 태블릿 피씨를 보며 출근하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도 있었겠지?
임원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빨리 승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서 동기 형들에 비해 승진이 늦었다. 하지만 워낙 어린 나이에 들어온 터라 나와 동갑인 친구들에 비해 빠른 편이었다. 동기 중 스타트는 아니었지만 나이를 기준으로는 스타트를 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빨리 승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 더 버티면 3년 안에 승진의 기회가 다시 찾아올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일을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적당히 있으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라는 정글 속에서 생존을 하려면 이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빨리 치고 나가야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나의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겨우 차장이었기에 누구를 밟아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도, 윗사람에게 싸바싸바해서 올라가진 않아도 됐었다. 그래도 아직까진 자존심을 챙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임원의 자리가 그렇게 부럽지 않아 보였다.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비서가 스케쥴을 관리하는 삶은 "있어"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임원들을 보게 되면서 그들 또한 월급쟁이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편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 정도 자리에서는 누군가를 밟아야 하고, 윗사람에게 싸바싸바도 잘 해야 하는 것도 같았다.
언제부턴가 임원을 "안"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다행히 휴직을 하고 나서는 내가 임원을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왜 임원에 연연했을까 반성이 되었고 그것이 얼마나 부질 없는 생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목표와 목적이란 말이 있다. 비슷한 말인 듯 하면서도 다른 말이다. 사전의 정의를 보면 목적이 조금 더 큰 범주의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목표(目標)「명사」「1」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지향하는 실제적 대상으로 삼음. 또는 그 대상.
목적(目的)「명사」「1」실현하려고 하는 일이나 나아가는 방향.
<참고.국립국어연구원>
남충식 작가가 쓴 <기획은 2형식이다>를 보면 목표와 목적의 차이에 대해서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책에서는 쇼프로그램 "나가수"를 예로 들며 목표와 목적에 대해 설명한다.
<나는 가수다>는 시청률 목표를 이루지 못해서 결국 폐지되었지요. 그렇다면 <나가수>는 실패한 기획일까요? '목표'라는 잣대에는 실패가 맞지만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성공한 기획입니다.
작가는 목표와 목적의 차이에 대해 "나가수"의 연출자인 김영희 PD의 이야기로 부연설명한다.
<나가수> 기획당시 목표(목적)한 바가 있었다. 사람들이 더 행복한 꿈을 꾸며 잘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가수>를 보고 시청자들이 열광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목표(목적)를 이뤘고 행복하다. 국민들에게 <나가수>는 행복을, 가수들의 노래는 감동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목표 옆에 목적이라고 괄호로 표기했던 것은 김영희 PD가 이야기 한 목표가 목적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
시청률이 목표라면 행복과 감동을 주는 것이 목적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낮은 시청률이었어도(시청률이 낮았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프로그램이 국민들에게 행복과 감동을 주었으므로 <나가수>는 충분히 성공한 기획이었다.
목적과 목표에 대한 어렴풋한 개념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목적은 why를 담고 있어야 한다.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목적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본질적인 이유를 담고 있어야 한다. 반면에 목표는 what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무엇을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와야 한다. 나가수의 시청률이나 임원이 되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목적보다는 목표에 가까운 것이다.
목적은 목표보다 본질적이고 상위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목표는 목적을 기반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왜(why)라는 의문을 품지 않은 채 무엇(what)에 집착하면 언제든 고난이 다가오면 쉽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동기를 얻기가 쉽지 않다. <기획의 정석>에서는 목표와 목적의 관계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기도 한다.
'목적'을 추구하다보면 '목표'는 결과로 따라오니까요.
'인간의 의식은 분명한 목적을 갖기 전에는 목표 달성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회사에서 나는 임원이 되겠다는 목표는 있었지만 뚜렷한 목적의식은 없었다. 왜 내가 임원이 되고 싶은지에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냥 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임원을 바라는 게 회사원이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했지 그것을 통해 내가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조차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저 동경의 대상으로만 여겼을런지도 모르겠다.
휴직 후 자기계발서를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리"만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느끼고 있다. "돈"만 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게 "자리"를 탐하고 "돈"만 추구하다 보면 우리가 평소에 손가락질하던 "정치인", "재벌"과 다른 삶을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권력도 돈도 없이 말이다.
다행히 나는 이제 임원의 꿈을 놓게 되었다. 어차피 임원이 되기에는 힘들 것 같기도 하다. 휴직까지 한 마당에 임원을 하겠다는 게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다행인 것은 임원이 안되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내 인생에 임원을 하느냐 마느냐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내게 절실한 것은 아니었다.
대신 나는 새로운 인생의 목적을 만들고 있다. 휴직 이후 몇 달동안 고민했던 나의 강점과 나의 기질을 바탕으로 새롭게 만들어 보았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도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잡은 나의 목적이다.
"어제의 나와 경쟁하여 스스로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그 매력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하는 삶을 살고 싶다."
태생적으로 나는 경쟁을 좋아한다. 물론 나는 나의 이런 성향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하지만 경쟁 대상을 남이 아닌 나 자신으로 삼으면 충분히 긍정적인 기질로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어제의 나와 매일 매일 싸워서 승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적을 잡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스스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른 누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나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느끼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의 강점과 매력이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가진 것이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의 인생의 목적이다.
이런 목적을 바탕으로 목표를 하나씩 잡아보려고 한다. 책을 내는 것도 목표일 수도 있고, 강의를 하는 것도 목표일 수도 있다. 사람들과 꾸준한 루틴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직은 구체적인 목표를 잡진 않으려고 한다. 좀 더 이것 저것 해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목적이 섰으니 목표는 알아서 따라오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있고.
이제라도 임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꿈을 놓을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더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