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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Jul 11. 2019

[휴직일기] 캐나다에 왔습니다.

아이들과 9주간 지낼 예정입니다.

구독하신 독자분들께 진심을 담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동안 브런치에 글을 못 올렸다. 매주 세 편 이상의 글을 올리려 했는데 이런 저런 핑계로 글을 쓰지 못했다. 매주 게재했던 휴직일기도 쓰지 못했다.


그 사이 브런치가 추천하는 작가에 내가 소개 되었다. 브런치에 떡하니 내 프로필 사진이 뜨니 좋기도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덕분에 구독자가 많이 들었다. 나름 브런치의 광고 효과를 톡톡히 누린 셈이다. 그런데, 글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구독자만 늘어나니 글쓰는 일이 더욱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어깨에 힘을 빼야 글을 자주 쓸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는데, 가장 어깨에 힘이 들어간 사람이 나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부담 없이 글을 써야 하는데 자꾸 부담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독자가 늘어나는 건 즐거운 일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만큼 보람있는 일은 없을테니 말이다. 물론 그만큼의  책임을 느끼는 중이다. 좀 더 솔직하게 나의 이야기를 풀어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싶어졌다. 조금 더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는 것은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과 별개로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우선은 긍정적인 신호라 생각한다.


긍정적인 신호를 갖게 해준, 찾아와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들만 데리고 캐나다에 왔습니다.


사실 1주일 이상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바로 아이들과 캐나다에 왔기 때문이었다. 와서 정리하고 아이들 보살피다보니 글을 쓰기 어려웠다. 물론 핑계긴 하지만...


휴직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 방학을 의미있게 보낼까 고민하다 캐나다에 오는 것을 계획하게 되었다. 다행히 누나네가 캐나다에 살고 있어 부담도 없었다. 누나가 살고 있는 위니펙에서 두 달간 머무르면서 아이들은 이곳 대학에서 주관하는 캠프에 다니고, 나는 아이들을 돌보며 글을 쓰는 일에 집중해볼 예정이다. 캠프 사이 사이 아이들과 캐나다 여행도 하면서 잊지 못할 2019년의 추억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참고로 아내는 서울에서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있다. 이번 캐나다 일정에서는 내가 아이들을 독점한다


위니펙에 대하여


위니펙은 캐나다 매니토바 주의 주도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동네다. 나도 어릴적 "밀의 집산지"(지금은 아니란다)라고 외운 것 말고는 아는 게 없는 동네다.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서부의 밴쿠버, 캘거리, 동부의 토론토, 몬트리올 등의 중간인 중부에 위치해있다. 미국과도 그리 멀지 않다. 노스 다코다 주와 경계를 하고 있는데, 노스 다코다나 위니펙이나 볼 게 없는 건 매한가지 동네라 국경을 같이 한다 해도 크게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관광객에게는 말이다.


누나는 6년 전 이곳에 투자 이민 형태로 와서 살고 있다. 처음 정착하는 데 애를 먹었다.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겨울 추위였다고 한다. 첫 해에는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한파로 고생을 했다고 한다. 올 초에도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날들이 자주 있었다. 눈도 많이 와서 겨울에 고생이 심하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여름은 살기 편하다. 우선 더위가 덜하다. 물론 이곳도 30도까지 올라가는 날도 있어 더울 땐 덥다고 한다. 하지만 더워도 습하지 않아 견딜만 하다. 한국에 비하면 선선한 날씨다. 여름에 이곳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https://tcim.ca/library/winnipeg-manitoba/ 자료 참조


왜 이곳까지 왔을까?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휴직을 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게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에게 당당한 아빠가 되고 싶었고,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구체화된 것은 버킷리스트 100개를 만들고 나서였다. 올 초 하고 싶은 일 100가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아이들 방학을 이용해 길게 아이들과 해외에서 살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휴직이 아니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정을 계획해 보게 되었다. 게다가 엄마 없이 아빠와만 지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회사에 나가는 엄마를 빼고 세명의 남자들끼리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물론 즐거운 추억이 될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괴로운 추억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굳이 해외를 선택한 것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어떤 공부보다 가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글로벌한 세상에서 잠시나마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만나서 생활하면 아이들의 시야를 넓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2달 동안 영어 공부를 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방학 때 잠깐 공부한다고 영어가 늘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영어 공부에 집중하면 현지인들과 놀면서 현지 문화를 접할 것 같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현지인들과 놀면서 스스로 영어 공부를 하고 싶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현지에서 운영하는 캠프 프로그램이었다.


매니토바 대학교의 Mini U 프로그램


위니펙에는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캠프가 운영되고 있었다. 영어 공부를 하는 캠프가 아니라, 그냥 노는 캠프였다. 우리는 이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매니토바 대학의 Mini U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나름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수강신청이 시작되는 3월에 신청한 프로그램이었다.


https://umanitoba.ca/faculties/kinrec/bsal/miniu/


Mini U 프로그램은 총 9주로 운영되는데, 주별로 신청이 가능했다. 우리는 초반에 3주, 그리고 후반에 2주 총 5주를 신청했다. 중간에 여행을 위해 한 주의 쉬는 시간도 마련해 두었다. 프로그램 신청은 온라인으로 할 수 있었다.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큰 애는 본인이 하고 싶다는 것들을 중심으로 신청했고,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둘째는 운동 위주로 신청했다. 둘 다 즐기면서 캠프를 다녔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참고로 가격은 프로그램별로 상이했다. 주당 CAD 기준으로 300불이 넘는 과정도 있었고, 200불이 채 안되는 과정도 있었다. 총 5주간 두 명이서 CAD 기준으로 2100불이 조금 넘게 나왔고, 당시(3월) 카드사에서 나온 대금 명세서 기준으로 180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비싸다면 비싼 금액이었고, 저렴하다 생각하면 저렴한 수준이었다.


수요일 저녁에 도착하고, 주말까지 보낸 후 월요일부터 캠프에 참여했다. 참여한 첫날 아이들은 다소 경직된 모습이었다. 말도 잘 못하는 상황에서 어찌 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걱정도 많이 됐는데, 다행히도 아이들은 첫 날 너무 재미있었다며 즐겁게 캠프를 마무리 했다. 영어로 이야기 하는 게 조금 힘들어 보이긴 했지만 눈치코치껏 알아서 잘 듣는 듯 싶었다. 대충 선생님의 이야기를 이해하면서 즐겁게 노는 것 같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부모 욕심에 무리하게 캠프에 집어 넣은 건 아닌가 걱정되었는데, 아이들에게 언어의 장벽이 그리 크진 않은 듯 싶었다.

둘째는 첫 날 친구를 사귀었다고 자랑도 했다. 중국출신의 아이였는데 영어도 잘하는 아이었다. 나나 큰 아들이나 영어를 못하는 둘째가 어떻게 친구를 사귀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둘째의 대답은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야기 안하고 놀아, 그냥 놀아.


굳이 친구를 사귀는 데 대화가 필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둘째가 가르쳐줬다.



나는 무엇을 할까?


나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즐겁게 생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의 활동 계획 또한 아이들 케어에 집중되어 있다. 가장 큰 활동은 역시 요리이다. 아침 저녁으로 밥을 해 먹이고, 점심 도시락을 싸는 것도 나의 몫이다. 누나네에 온 것이지만, 일하는 누나나 매형을 대신해서 주방을 책임져볼 생각이다.


물론, 생각보다 요리하는 게 힘들다. 한국에서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게 아쉽기도 하다. 이날을 위해서 좀 더 연습을 했었어야 하는데 말이다. 아침이면 정신이 한 개도 없다. 아이들 도시락 싸고, 아침 밥 먹이고, 준비를 시키면 두 시간이 후다닥 지나간다.

그렇다고 엄청난 열의를 갖고 요리를 하는 건 아니다. 말 그대로 "대충대충" 만들고 있다. 한국에서 아내와 장모님으로부터 들은 것에 집중해서 요리를 하는 중이다. 요리를 하기 위해 인터넷에 레시피를 찾아보는 부지런함까지는 장착하지 못했다. 심심하다 싶으면 반찬에 케챱을 뿌려서 먹으면 되고, 국이 조금 싱겁다 싶으면 더 오래 끓여서 간을 맞추는 중이다. 다행히 아이들이 "아직까지는" 잘 먹어 주고 있다. 끝까지 잘 해야 할텐데...


한국에서부터 계속 쌓아온 나만의 루틴은 지킬 예정이다. 아이들 케어와 별도로 매일 달리고,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예정이다. 아이들이 캠프에 간 사이에 집중해서 해보려고 한다. 한국에서 하지 못했던 생각도 좀 더 많이 해보려고 한다. 서울에서 나름 바쁘게 지냈던 6개월 간의 휴직기간을 돌아보면서 쉬엄쉬엄 할 것들을 정리하며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그동안 미뤄뒀던 책쓰기도 좀 더 진행하고!


지금의 마음은?


위니펙 시간으로 수요일 저녁 6시에 도착했으니, 이곳에 온 지 벌써 1주일이 다 되어 간다. 목,금,토,일 나흘간은 아이들을 끼고 있으며 밥도 차려주고 동네 구경도 다녀왔다. 다행히 지금까지 아이들은 이곳 캐나다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내가 차려준 음식들도 좋아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 오기 전, 나는 두려운 감정이 컸다. 이래저래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앞서 맛보는 두려움이었다. 과연 아이들은 이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나는 아이들을 잘 보살필 수 있을까? 캠프에서 아이들이 의기소침하면 어떻게 하지? 내가 한 밥이 맛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구본형 선생님께서 그의 저서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에서 두려움은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으로만 증폭된다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딱 그런 꼴이었다. 계속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두려운 감정이 커졌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감정으로 인해 두려움은 자가증식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하나 하나 하다보니 두려움이 서서히 잦아 들었다. 밴쿠버 공항에 도착해 무거운 짐을 끌고 아이들과 위니펙 가는 비행기를 잘 탈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짜증도 안내며 잘 따라왔다. 아이들에게 해주는 요리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몸은 고되지만 내 새끼들이 먹는다는 생각을 하니 나름 의미있는 작업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게다가 아이들은 초반이긴 하지만 캠프 생활을 즐거워 했다. 오기 전 두려워만 했던 것들이 닥쳐보니 생각보다 별 거 아니라고 느끼고 있는 중이다.


물론 두려운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이번 캐나다 일정이 끝나는 9월 초까지 계속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듯 싶다. 물론 내 성격 탓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계획하고 있는 빡신 여행도 두렵기도 하고, 아이들이 끝까지 잘 지낼지도 두렵기도 하다. 나 스스로에게도 유의미한 생활이 될런지도 여전히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오기전처럼 막연히 두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미 한 발짝 내딛은 상황이라 그런지 두 발, 세 발 내딛는 게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또한 공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든든한 두 아들이 있지 않은가?




휴직기간 동안 좋은 기회를 얻은 것 같다. 나도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다시 오지 않을 좋은 시간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준 사랑하는 아내에게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만드는 9주간의 기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번 캐나다 일정이 아쉬움으로 가득했으면, 그래서 또 오고 싶은 날들로 기록되면 좋을 듯 싶다.


내가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나? 그게 아니더라도 끝까지 서로 건강하게 잘 지내기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잘 지내보자 아들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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